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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Mar 20. 2024

나만의 방(房)

車房車泊 1화 > 프롤로그

옆으로 누우면 벽. 똑바로 누우면 천장. 엎드리면 바닥이었다. 눈을 감으면 더 좋았다. 가끔 햇빛이 집요하게 창문에 걸쳐 있다 돌아가곤 했다. (강성은, '방' 중)





"당신은 온전히 당신의 삶을 사셨나요?"


누가 당돌한 눈으로 묻는다면.


노벨평화상을 받은 홀로코스트 작가, 엘리 위젤이 그랬다. 우리가 죽어 하늘에 가면 신은 '너는 왜 이런저런 병의 치료법을 개발하지 못했느냐? 왜 너는 구세주가 되지 못했느냐?'라고 묻지 않는다고. 그 고귀한 순간에 우리가 받을 질문은 단 한 가지, '왜 너는 너 자신이 되지 못했느냐?'라는 거라고 했다.


아, 나는 그 질문에 자신 있게 답할 수 있을까? 나는 온전히 나 자신이 되어 '나의 삶'을 살았을까? 남들이 바라보고 기대하는 '타인의 삶'을 거부하고 '나'로서 살았노라고, 그렇게 후회 없이 잘 살다 왔노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없었다. 세상은 그렇게 사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으니까.   


'나는 나 자신이 되려고 '방'을 만드는 거다. 나만의 방을 만들면 그게 가능할 거란 생각이 들거든.'


뜬금없이 쌀쌀하던 날, 사연 많고 애지중지하던 플러그 인 하이브리드 수입차를 처분하고, 2015년식 올뉴카니발을 중고로 구입했다. 시트 다 뜯어내고 방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기 때문이다. 차에 방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은 진심이었다.


'언젠가 나도 내 방을 가질 거야, 기필코, 반드시, 꼭'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살면서 갖게 된 소원이었다. 그러다 동생이 태어나고 살림도 조금 나아져 방이 두 개가 되었지만, 부모 방과 자식들 방으로 이분화되었을 뿐, 그의 방은 없었다. 방이 세 개로 늘어나고 혼자 독방을 차지하던 형의 입대에도 기다렸던 내 방의 꿈은 현실이 되지 않았다. 남녀유별의 논리로 누나가 독립을 해냈고, 자식들 방이 이제 남자방과 여자방으로 갈라졌기 때문이다. 대학을 가고 하숙이 아니라 자취를 해야 할 상황이 되었음에도, 사글세 방값을 분담할 룸메이트를 수소문해야만 했다. 결국 내 방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남동생에게 혼자만의 방을 선물로 주고 군대를 갔다.


제대 후에도, 취업한 뒤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결혼을 하고 집을 장만하고 아이가 생겼으나 나의 방은 생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안방이 당신 방이잖아, 라고 말을 하지만 그렇지 않음을 안다. 안방은 엄연히 아내의 방이지, 나의 방은 아닌 것이다. 별도로 배려된 아이 방과 마찬가지로. 


그래, 공감이다. 내가 원하는 건 공감(共感), 감정의 공유다. 그 사람이 느끼듯 내가 느껴주고, 내가 느끼는 것을 그 사람이 느껴주는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듯 '느낌'이란 의식적으로 제어할 수 없는 신체반응이다. '그의 느낌을 나도 느껴야지'라고 아무리 의도해도 가능하지 않은 것이다. 공감을 하려면, 내 마음 한편을 비워 <느낌 공간>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세상에서 마주치는 느낌들을 수용할 공간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간에서 낯선 느낌들에 익숙해지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홀로 예행연습을 하는 것이다. 


내가 만들려는 '방'의 용도도 그러할 것이다. 사납고 무서운 느낌에 겁먹지 않고, 바닥으로 가라앉는 느낌에 좌절하지 않고, 번뜩이는 느낌들로 찬 관객석을 똑바로 응시하고 싶은 것이다. 방음패드와 단열시트로 외부를 차단한 차방(車房), 나만의 <느낌 공간>에서 불편을 주는 느낌들과 감정들에 온전히 공감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리하여 원래의 자신으로 돌아가고 싶은 걸 거다. 


자기답게 살기 위해서, 자기 자신이 되려고, 자기만의 '방'을 만들고 싶다는 나의 요청을 들어주기로 했다. 내가 보내는 구조신호를 나는 외면할 수 없었다.



"언제나 너다운 모습이길." 


독일 사람들이 자주 쓰는 인사말이라 한다. 주말 잘 보내세요, 건강하세요, 행복하세요, 이런 말이 아니라 너답게 살라는. 나다운 모습으로 산다는 것. 하긴 내가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 산다면 다른 사람과 구별이 되지 않겠지. 나는 나답게, 너는 너답게... 우리 모두가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야 알로록달로록 세상이 아름답겠지. 나는 엄마 친구의 아들도 아니고, 옆집 아저씨도 아니다. 나는 그냥 내 멋대로의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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