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房車泊 2화 > 승차정원변경
어느 봄날의 카크닉
열린 트렁크 차문으로 불어오는 눈부신 개나리꽃바람이 향기롭다. 옛날의 영화를 아직 재건하지 못한 천년고찰 터에 주차를 하고. 우전 찻잎 따러 간 이를 기다리며 차리는 왕후장상의 밥상. 라면 두 그릇이면 어떤가. 소박하고 정갈하게 차렸으면 그만이지. 옆에서 직박구리 소란스러워도, 떠나오길 잘했다 참 잘했다.
바쁘고 나쁘고 아프고 싫은 것들이 상심케 하거든 주저 없이 그곳을 떠나라. 참고 견딘다고 상처가 아물지 않는다. 음식이 상하면 버리듯, 마음도 상하면 버려야 하는 거다. 망설임 없이 욕심들 내려놓고 거기를 떠나야 하는 것이 맞다. 덜 익은 라면이 다소 맵더라도 먹는 내내 행복하다고 느끼면, 이런 것이 바로 여행의 맛일 것이니.
떠남에 최적화된 우리의 차방(車房)에서 나그네처럼 떠돌면, 방랑이면 어떻고 유랑이면 어떤가. 게으름, 느림, 버림, 미룸 등과 같이, 'ㄹ'과 'ㅁ'의 조합으로 끝나는 단어를 떠올리며 웃음 짓는 야생의 오후. 바쁜 나를 떠나 게으른 나를 찾아 여행을 떠나보자. 어쩌면 인생은 이런 소소한 나들이로 이루어진 큰 여행인지 모르니.
만들고 싶은 방
'운전석 열만 남기고 의자란 의자는 다 없앨까?'
그러고 싶었다. 오롯이 내 방을 누리려면 운전석만 남겨두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승용자동차는 반드시 2개의 열이 존재해야 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안 되는 걸 알았으면 칼로 베듯이 포기해야 한다. 주저하면 혹 다른 사정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생기니.
물론 캠핑카로 구조변경을 하면 가능하긴 했다. 캠핑카나 업무용자동차는 1열만 있어도 되니까. 그런데 캠핑카로 하게 되면, 번거로운 게 많다. 개조비용에 대한 세금도 내야 하고. 부가가치세와 개별소비세 또 교육세와 취득세 등 여러 세금을 내야 한다. 아 자동차보험도 캠핑카 전용 보험으로 바꿔야 한다. 내가 원한 건 거창한 캠핑카가 아니었다. 그냥 나만의 방이 필요했을 뿐이다. 혼자 고개를 끄덕인다.
'내가 만들고 싶은 방이 어떤 거지? 방에서 뭘 하고 싶은 거지?'
어떤 방을 만들 것인지 구체적인 이미지를 먼저 그려야 했다. 바탕그림이나 설계 도면이 있어야 공사를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다. 그 방에서 어떻게 지낼 것인지, 무얼 하며 시간을 보낼 것인지 나에게 물었다.
데굴데굴 이리저리 뒹굴며 사색할 수 있는 <방바닥>이 필요하고, 멍하니 허리 기대고 앉아서 온전히 TV 리모컨을 소유하는 <소파>도 있어야 하고, 태아처럼 웅크린 자세로 공중에 매달려 흔들흔들 요람 같은 <해먹>도 가능해야 한다고 내가 대답했다.
'방바닥 모드, 소파 모드, 해먹 모드라... 음'
밑그림 그리기
내가 구입한 차는 카니발 3세대, 올 뉴 카니발이다. 2015년식 7인승 모델이다. 경쟁모델로 스타렉스가 있다. 반듯한 네모 상자 형태의 스타렉스가 공간감이 좋고 작업하기 용이해서 캠핑카나 차박카로 많이 개조되는 편이다. 반면에 카니발은 '국민 아빠차'로 불리며 널찍한 공간감에 승차감과 편의장치까지 좋지만, 형태가 포탄 모양의 타원형이라 작업하기 까다로운 차에 속한다. 방의 모양으로 보자면 스타렉스는 터널에 가깝고, 카니발은 동굴에 더 가깝다.
7인승 카니발은 '2 - 2 - 3'의 3 열이다. 2열 시트가 끝까지 젖혀지고 착좌감 극강이라고 호평받는다. 연예인들이 많이 타고 다니는 것도 그 이유라 한다. 이동 중에 충분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특이한 점은 3열은 싱킹시트이다. 3열 좌석이 차바닥 트렁크 공간 안으로 수납된다는 것이다. 2열이 있는 상태에서 3열에 사람이 앉기에는 불편한 것이 사실이다.
방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고 또 그려 보았다. 지우고 또 그리고, 줄 긋고 다시 그리고. 내가 원하는 세 가지 모드, 방바닥과 소파와 해먹 모드를 구현할 수 있는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았다.
하는 일이 무엇이든 간에 그 일을 잘 해내야 한다.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잘해야 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자기보다 그 일을 더 잘하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만약 하는 일이 거리를 청소하는 일이라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 셰익스피어가 글을 쓰듯, 베토벤이 작곡을 하듯 거리를 쓸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늘의 천사들과 땅 위의 사람들이 거리를 지나가다 이렇게 말하도록.
"여기 위대한 청소부가 살다 갔구나. 그는 자기 일을 정말 잘했구나."
예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생각났다. 나도 정말 잘하고 싶었다. 위대한 청소부처럼 내 간절한 소망을 반드시 이루고 싶었다.
구조 변경(승차정원변경)
결국 7인승을 5인승으로 '인승변경'하였다. 2열을 탈거하는 승차장치 구조변경을 진행하고, 한국교통공단 자동차 검사소에서 튜닝검사에 합격을 받았다. 사실 자동차 튜닝(구조변경)은 내가 직접 한 건 아니다. 물론 내 손으로 시트 탈거 정도는 할 수 있지만, 법규상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먼저, 한국교통공단 홈페이지에 튜닝승인신청을 한 뒤, 승인이 나면 정식으로 등록된 자동차정비업체에서 튜닝작업을 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업체에서 구조변경 작업이 끝나면 튜닝검사를 신청하고 검사에 합격하면 자동차등록증에 그 사실을 기재해 주는 것이다. 대략적인 진행은 이런 식이다.
튜닝승인신청(한국교통공단)→튜닝승인(승인신청일로부터 10일 이내)→튜닝작업의뢰(자동차정비사업자)→정비업체 튜닝작업 내용 전산입력→튜닝검사 신청(승인일로부터 45일 이내)[한국교통안전공단 자동차 검사소]→튜닝검사(합격 후 등록증에 내용 기재)
이제 나의 자동차는 2열을 덜어내고 5인승이 되었다. <2 - 2 - 3>에서 <2 - 0 - 3>이 된 것이다. '시트 탈거'라는 기초 작업만으로 광활한 공간이 만들어졌다. 가로 2.3미터 세로 1.7미터의 엄청난 '방 만들 공간'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이참에 자동차 번호판도 신형으로 교체하였다. 앞자리가 두 자리인 구형 번호의 경우, 앞자리 세 자리 번호로 변경하면 아예 새로운 번호를 부여받게 된다. 시청으로 몰고 가 전광석화처럼 진행하였다. 담당자가 건넨 5개의 후보 번호 중에서 끝자리를 '8'이 좋다는 아내의 의견을 따랐다. 마음에 든다.
새 번호에 맞는 자동차등록증이 신규 발급되었다. 이제 중고차의 흔적이 사라진 것이다. 출생신고를 마치고 출생등록 증명서를 확인하는 기분이었다. 사람도 살다가 다시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 다시 태어났음을 신고하고 증명서를 발급해 주면 어떨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