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房車泊 3화 > 바닥 평탄화
괜찮아, 바닥을 보여줘도 괜찮아. 나도 그대에게 바닥을 보여줄게. 악수, 우린 그렇게 서로의 바닥을 위로하고 위로받았던가. 그대의 바닥과 나의 바닥, 손바닥.
(박성우, '바닥' 중)
방바닥, 땅바닥, 손바닥, 발바닥... 누구에게나 바닥은 숨기고 싶은 곳이다.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나의 바닥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바닥은 낮은 곳이다. 가장 무거운 것들이 정착하는 곳이며, 가장 가벼운 것들이 침착하는 곳이다. 아무리 보여주지 않으려 애를 써도 바닥은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결국은 드러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차방을 만들어 방바닥을 뒹굴고 싶다는 욕구는 드러나는 방바닥을 온몸으로 가리려는 방어기제 때문은 아닐까.
다음 작업은 2열 시트를 제거하고 만들어진 공간을 방으로 꾸미는 것이다. 바닥이 흔들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나 건축물이나 밑바닥이 흔들리면 붕괴를 가져오는 법이다. 시트를 붙잡고 있던 레일뭉치와 차바닥을 고정하던 고정나사를 이용하기로 했다. 고정나사를 풀기 위해 필요한 건 T55 별렌치다. 인터넷으로 구입해서 밀워키 임펙드라이버로 풀려고 했으나 워낙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어 쉽지 않았다. 어찌어찌 두 개는 풀었으나 나머지는 전동임펙드라이버의 힘으로 불가능했다. 기아오토큐를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고 고정나사 제거를 부탁했다. 앓던 이 빠지는 소리가 총성처럼 경쾌하게 들렸다. 속이 다 시원했다.
레일뭉치 고정나사를 이용해서 판재를 차바닥과 결합시켰다. 아 차가운 차바닥은 방음 및 단열 접착패드를 미리 붙였다. 판재는 농막을 만들고 남은 자재를 활용했다. 바닥에 쓰기에는 너무 고급 목재인 적삼목이다. 가볍고 물과 오염에도 강하며 향기도 좋아 내가 좋아하는 나무다. 차바닥과 결합한 판재 위에 합판을 고정하면, 흔들리지 않는 바닥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닥을 만들면서 염두에 둔 것은 지금 만들려는 '차방'이 세 가지 모드를 충족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방바닥 모드, 소파 모드, 해먹 모드를 생각하며 작업을 진행해야 했다. 3열 시트를 끄집어내면 소파모드가 되고, 집어넣으면 방바닥이 되는... 아울러 차방 안에서 해먹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했다.
물론 소파나 의자의 폐해를 모르는 건 아니다. 직립보행하지 않고 사람을 앉아 있도록 만드는 안락한 의자는 큰창자를 느슨하게 해서 문제를 일으킨다고 한다. 기름진 음식과 게으름은 안락한 의자가 제공한다는 것도. 그러나 의자 모드가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승용자동차는 2년마다 자동차 검사를 받는데, 2열 시트를 제거해서 승차인원 변경이 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육안 검사가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5인 승차가 가능한지를 체크한다는 것이다. 물론 필수 항목이 아니라 검사장에 따라 검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오류나 흠결을 용납 못하는 성격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또 다른 문제는 앉은 의자의 다리에 대한 처리였다. 눕히면 드러나는 방바닥의 구멍. 의자 다리와 차바닥을 고정하는 걸쇠구멍을 어떻게 열고 닫을 것인가. 여기에 대한 고민도 필요했다.
모든 바닥은 튼튼해야 한다. 꿀렁거리지 않아야 하고 단단해야 했다. OSB 합판 24T를 깔았다. 농막 바닥에 깔아본 터라 효용가치를 알고 있었고, 남아 있는 자재였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최대한 전고를 확보하면서 튼튼한 바닥을 확보해야 했다. 바닥에 앉았을 때 머리 높이에서 한 뼘 이상 여유가 있어야 좋을 것 같았다. 천장이 높으면 답답한 느낌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OSB 합판을 깔 때도 절단면이 서로 이어지도록, 절단선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쓰는 내 모습을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어차피 합판 위에 마루를 깔 텐데, 뭐 하러 그런 디테일까지 신경을 쓰는 건지. 피곤한 인생은 그만 살자고 다짐을 하지만 잘 안된다. 그래도 욕심을 버리고 빈 배처럼 살자고, 일과 사람에 대하여 너그러워지자고 나를 다독거린다. 이제는 생각을 줄이고, 마음보다 몸을 더 많이 쓰며 살아야 한다고.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고, 남보다 자기 자신을 좀 믿고 살라고. 그러라고 눈부신 햇살이 나의 바닥을 비추어 주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