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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Apr 26. 2024

난방

車房車泊 4화 > 바닥 난방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 흰 보라 수수꽃 눈 시린 유리창마다 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 그믐처럼 몇은 졸고 몇은 감기에 쿨럭이고, 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 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던져주었다. 내면 깊숙이 할 말들은 가득해도 청색의 손바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산다는 것이 때론 술에 취한 듯 한 두름의 굴비 한 광주리의 사과를 만지작거리며 귀향하는 기분으로 침묵해야 한다는 것을 모두들 알고 있었다. 오래 앓은 기침소리와 쓴 약 같은 입술담배 연기 속에서 싸륵싸륵 눈꽃은 쌓이고, 그래 지금은 모두들 눈꽃의 화음에 귀를 적신다. 자정 넘으면 낯설음도 뼈아픔도 다 설원인데, 단풍잎 같은 몇 잎의 차창을 달고 밤열차는 또 어디로 흘러가는지, 그리웠던 순간들을 호명하며 나는 한 줌의 눈물을 불빛 속에 던져 주었다. 


(곽재구,  '沙評驛에서', 창작과 비평사, 1983)




처음 본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결같이 좋기만 한 아름다운 시. 번을 읽어도 여전음률로 감동을 주는 레코드판 같은 문장들. 사평역이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으나 그런 역은 어디에도 없었다. 여기 남도에 내려와 순천 가는 길에 화순군 사평면을 지나게 되었으나, 거기에는 기차역은커녕 철로조차 지나지 않는 곳이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곽재구 시인이 사평역의 모델로 삼은 곳은 지금은 폐역이 된 남광주역이라고 했다. 실재하지 않으면 어떤가 싶었다. 실제보다 실재하면 된 것이다.





전기를 덜 먹는 미니 전기보일러(800W)
차방에 설치해야 할 전기보일러, 전자레인지(플랫형), 인산철배터리(560A), 인버터(3Kw)



방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일은 <난방> 일 것이다. '난방'이란 '실내의 온도를 높여 따뜻하게 하는 일' 또는 '불을 피워 따뜻하게 된 방'을 말한다. 문제는 차방을 어떻게 따뜻하게 것인가였다.


대부분의 캠핑카는 무시동히터를 사용한다. 경유든 휘발유든 해당 자동차의 연료를 이용하여 시동을 상태에서 히터를 가동하는 것이다. 히터로 데워진 공기를 자동차 실내로 토출 하여 난방하는 방식이다. 단, 일산화탄소 경보기 설치는 필수다. 심심찮게 뉴스에 나오는 캠핑 사고의 대부분이 바로 일산화탄소 중독사고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무시동히터 기기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잘못된 설치 때문이다. 배기가스의 차량 내 유입으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다. 차량 내 무시동히터를 설치하고 배기구를 외부로 빼긴 하지만, 차량 바닥으로 빠진 배기가스가 흩어지지 않고 바닥에서 맴돌다 내부로 유입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기온차 때문일 수도 있고 소용돌이 때문일 수도 있다. 무시동히터의 숨은 위험성이다. 그래서 안전을 위해 무시동히터 본체를 차량 외부에 거치하는 방식으로 쓰는 캠퍼들도 있다. 데워진 공기만 실내로 집어넣는 것인데, 부피가 크고 매번 탈부착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해야 한다.


간혹 차량 내에서 화목난로를 피우기도 하지만, 난방용이라기보다는 감성용에 가깝다. 미니 화목난로를 설치하고, 차창 밖으로 연통을 빼낸 뒤 실내에서 불멍을 하는 모습보면, 나도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긴다. 어떤 이는 연통 없이 미니 난로만 설치하고 고체연료나 알코올을 태워 실내 불멍을 하기도 한다. 모니터로 불을 때는 디지털 불멍보단 더 진한 감성을 느낄 수 있겠다. 


고민할 것도 없이, 무시동히터의 극강의 효율성보다 안전을 택하기로 했다. 침묵의 살인자라 불리는 일산화탄소의 무서움을 알기 때문이다. 연탄가스에 중독되어 메스꺼움과 몽롱한 상태에서 사경을 헤맨 유년이 있기 때문이다. 차 안에서 따뜻하게 잠자려다 영원히 잠들 순 없는 것이다. 자려다 진짜 잠들면 큰일이니까.


그래서 선택한 난방 방식이 건식난방이었다. 주택의 방을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방바닥을 데우는 구들장 방식 말이다. 공기를 데우는 방식보다 바닥을 데우는 대류형 난방우리전통 방식이다. 바닥 표면만 데우는 간편한 전기패널 방식이 있으나 금방 달아오르고 금방 식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주택의 방처럼 바닥에 온수관을 깔고 전기보일러로 데운 물을 순환시켜 바닥을 덥히는 건식난방을 설치하기로 했다. 


차방을 찜질방으로 만들고 싶었다. 





게르마늄이 함유되었다는 온돌패널 하판
자르고 구멍 내어 바닥 면적을 모두 채우다
알리 직구한 자동차용 라디에이터, 회수열로 공기를 데운다
온돌패널에 온수호스를 촘촘하게 돌리다



요즘 바닥난방을 구현하는 일은 어렵지 않다. 건식난방이 발전해서 다양한 제품들이 즐비하니까. 가장 최근에 나온 제품을 선택했다. 그만큼 오류를 시정하고 보완하여, 발전되었으리라 생각하고. 농막에 건식난방설치해 경험이 있어 걱정은 되지 않았다. 가끔, 생각보다 용감하고 과감한 추진력에 자신도 깜짝깜짝 놀란다. 구상하고 공작하는 재능이 내 안숨어 있었다는 사실이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세상에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들이 많다. 해보지 않고 알 수 있는 것들이라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인생을 살면서 숱하게 해 보았던 작은 일들이 쌓여, 어떤 낯선 일을 할 때 '이렇게 하면 될 것 같은데?'라는 번뜩이는 생각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미미한 심리적 타격을 준 작은 실패들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어마무시하게 축적된 이러닝 학습 데이터를 가진 AI와 비슷하다.


OSB 합판으로 평탄화된 바닥에 온돌패널 하판을 깔았다. 하판은 20mm, 상판은 6mm다. 그 위에 깔 마루는 6mm, 도합 32mm의 높이를 염두에 둔다. 방바닥에서 천장까지 최대한 전고를 확보하려고 욕심을 낸다. 방바닥에 앉을 수 없다면 낭패니까. 하지만 차 밑바닥까지 내려간 덕에 마룻바닥에서 천장까지 1m 이상의 전고를 확보할 수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엉거주춤 서서 바지를 갈아입을 정도까지. 


온돌패널은 우수한 축열성으로 방바닥을 도는 뜨거운 물의 열을 머금는다. 게다가 원적외선을 방출하는 재질에 높은 강도와 뛰어난 내구성을 확보했다고 광고한다. 다른 건식난방 제품들에 비해 온수호스가 굵었다. PE-RT 16미리 온수호스는 내경이 12mm였다. 온돌패널은 단단하면서 나무처럼 재단이 용이했다. 디월트 전동직쏘로 톱질이 자유로웠다. 마음먹은 대로 자를 수 있어 좋았다. 덕분에 방바닥 면적 전체를 온돌패널로 테트리스할 수 있었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 아닐 때도 있는 모양이다. 부분의 작은 틈들이 모여 전체보다 많은 부분을 만들어 냈다. 방 사이즈에 딱 맞게 구입했음에도 온돌패널의 부분들이 꽤 남았다. 남은 것들은 버려지는 것이 아닐 것이다. 버려짐으로 쓰임을 하는 거라 말하지 않기로 했다. 온돌패널의 작은 조각들을 만지작거리다가 나도 이처럼 조각이었구나, 작은 조각으로 시작해서 제법 큰 조각이 되었다가 다시 작고 작은 조각으로 떠날 준비를 하는구나, 생각에 잠긴다. 


바닥난방은 방바닥을 데우는 방식이라 실내온도가 올라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린다. 바닥에서 올라간 열이 방의 공기를 훈훈하게 설득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기보일러에서 열선으로 가열한 물은 순환펌프의 도움을 받아 뜨거움을 품은 채 방바닥 구석구석을 여행한다. 1평 남짓 조그만 세상에서 자기의 뜨거움을 기쁜 마음으로 나누며 사는 것이다. 온돌패널은 오래도록 그 뜨거운 마음을 간직한다. 바닥을 찾게 될 누군가를 위해. 밑바닥 마저 차갑다면 그는 어떻게 어디서 온기를 느낄 것인가. 상층부는 차가워도 밑바닥은 차가우면 안 되는 것이다.





SPC 돌마루와 고무망치 그리고 투바이포 조각
3열 시트 고정홈 개폐용 멀바우 덮개
<방바닥 모드>에서 3열 시트를 펼치면 <소파 모드>가 된다



바닥을 데우는 방식을 보완하려 라디에이터를 설치했다. 자동차용 라디에이터를 알리에서 직구하여 조수석 시트 밑에 두었다. 임무를 다하고 복귀하는 난방수를 한번 더 돌려 공기를 데우고 가라고 붙잡은 것이다. 이러면 실내 공기가 조금이라도 빠르게 따뜻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닥에 마루를 깔았다. 3열(3인석) 싱킹시트가 펼쳐질 홈의 탈부착 마개도 재단하여 완성했다. 1인석 라인은 마루덮개로, 2인석은 멀바우 덮개로 만들었다. 별 차이는 없으나, 2인석 쪽만 펼치고 1인석 쪽은 항상 방바닥 상태로 있을 것을 전제했다.


내가 생각하는 방의 핵심은 온돌이고, 바닥의 핵심은 마룻바닥이었다. 그래서 온돌마루를 깔았다. 'SPC 마루'가 있었다. 바닥난방 위에 원목마루는 설치할 수 없지만, 원목나무 질감으로 돌가루를 압축하여 만든 마루였기에 가능했다. 마루 시공은 가장 많이 드나드는 곳, 즉 입구부터 하라고 했다. 가급적 온장으로 입구 쪽을 깔고 이후 라인부터 지그재그를 맞추는 것이다. 한 장의 마루판을 3등분 할 때도 있고 2등분 할 때도 있다. 나는 3등분 하여 벽돌담 무늬처럼 바닥을 덮어 나갔다. 마루의 4면이 물리도록 되어 있어 틈이 없게 된다. 빈틈없는 것이다. 무거운 가구를 놓아도 자국이 나지 않고, 물을 흘려도 스며들지 않는다. 마루시공에 고무망치와 투바이포 조각은 필수다. 손가락을 베여 피를 보긴 했지만 마루시공은 한 번의 퇴근 후 작업으로 끝이 났다.


이제 따뜻한 온돌방이 만들어졌다. 여름이라도 오는 날이면 굼불 지피고 아랫목에 누워 등지지면 좋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없이 아무 때나 보일러 틀고 따뜻한 방바닥에서 뒹굴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나도 따뜻한 사람이 되는 것인가장작을 때면 따뜻한 것은 그 속에 여름내 쟁여놓은 햇볕이 들어 있기 때문이라 했다. 햇볕을 많이 갖고 있어야 따뜻한 사람이고. 그래서 하루 중 반드시 햇볕을 보라고 하는 거겠지. 햇볕은 아니지만, 햇볕 같은 따뜻함을 품을 있게 되어 너무 좋다. 뜨겁게 데워진 물이 전해주는 밑바닥의 이야기를 읽으며, 바닥에서 일어나 다시 살러간 이들의 영상을 보며, 나도 다시 뜨거워지리라 용기를 낸다. 따뜻한 사람이 되면, 아무리 추운 시련 속에서도 훈훈하게 웃으며 살 수 있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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