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늙어서도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이유는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던가. 나는 지금 성장하고 있는 것일까? 퇴직을 빌미로 어느 특정 시점에 멈추어 있는 건 아닐까? 아직도 소년의 꿈을 꾸고 있는 걸까? 혹시 수면모드로 동결되어 있는 건 아닐까? 고목에 핀 싱그런 꽃을 보니 여러 생각들이 흙물처럼 피어난다.
그래 아직 난 살아 있는 생물이다. 꿈을 품은 숙주가 해야 할 일은 과거보다 나은 쪽으로 방향을 설정하는 일. 지나버린 꿈의 궤도를 꾸준히 수정하여 성장을 꾀하는 것이다. 때로는 혼자 있는 시간이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혼자 아파하고 혼자 힘들어하는 시간은 성장하고 있다는 뜻이다. 성장은 언제나 통증을 수반하니까. 아마 성장통이라 했던가. 이 세상에 수월하게 피는 꽃은 어디에도 없었다. 나이 들어 여기저기가 아프다면, 성장하고 있는 거라 생각하자.
칠리 데이비슨은 '나이가 드는 것은 강제적이다. 하지만 성장하는 것은 선택적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 나이 들었다고 다 성장한 것은 아닐 것이다. 나이 먹었다고 다 어른은 아니듯이. 어떤 버섯은 6시간이면 자라고, 호박은 6개월이면 다 자란다. 하지만 참나무는 자라는데 6년이 걸리고, 어른다운 자태를 드러내려면 100년이 걸린다고 한다. 나도 나무처럼 느리지만 꾸준하게, 평생 동안 자랐으면 좋겠다. 오래도록 성장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