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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씀 May 08. 2024

어버이날이 공휴일이 아닌 이유

어버이날을 앞둔 지난 주말. 어린이날에는 어머니를 뵙고, 어린이날의 대체 공휴일에는 장모님을 뵈었습니다. 어머닌 카네이션 화분을 2만 원이나 주고 사 왔다며 역정을 내셨고, 장모님은 치매와병 중에도 사위를 알아보시는 듯했습니다. 구순을 바라보는 두 분 모습을 마음에 다시 새기며 돌아오는 길은 먹먹하기만 했습니다. 오늘, 어버이날이라 글을 써보려 했지만 잘 되지 않는군요. 대체 공휴일처럼 그냥 썼던 글로 대체합니다.




어버이날 이른 아침, 


제법 긴 통화 중 신호음이 끝나기를 기다려 들은 어머니의 들뜬 목소리. 오늘이 진짜 생일 같다. 니들 목소리 다 듣고, 편안타 편안타, 너도 편안치? 어머니께는 카네이션 한 다발 립 서비스해 드린 후, 추풍령 공원묘지에 계신 아버지께는 이승에서 찍은 카네이션 꽃 사진을 전송해 드렸다. 아버지, 거기도 편안하시죠?



어느 바쁜 아빠가,


모처럼 휴일을 맞아 식구들의 간청에 마지못해 함께 낚시를 갔답니다. 그날 밤 그의 일기장에는, "오늘은 아이들과 노느라고 소중한 하루를 낭비하고 말았다!"라고 적었답니다. 그러나 아들의 일기장에는, "오늘은 아빠와 함께 낚시를 했다. 내 일생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라고 썼더랍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가족들이 원하는 건 엄청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함께 있어 주는 것, 시간을 같이 나누는 것, 단지 그것뿐입니다. 그것을 알고 있으면서, 실행하지 못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일까요? 누구보다 가족사랑이 넘치니 그건 아닐 것 같습니다.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보다 더 가치 있는 시간이 무엇인지 냉철하게 따져 보아야겠습니다. 아이들은 같이 보낸 시간의 무게만큼 아빠를 기억합니다. 이제 그만 업무를 접고, 집으로 가 아이들과 신나게 한바탕 놀아주는 게 어떠하신지?



나름,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 노력했습니다. 아이들과 아내.... 저의 가족이니까요. 그런데 말입니다. 이제 우리 집에는 어린이가 없습니다. 그래서 공휴일로 지정된 어린이날을 쉬어도 되는 건지, 의문이 듭니다. 그리고 궁금해졌습니다. 근로자의 날은 근로자만 쉬게 하면서, 어린이날은 어린이가 없는 가정도 쉬게 하는 이유 말입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우리 집에 어린이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다 커버린 아이들 뒤로 어른에서 아이가 되어가는 가족이 있었습니다. 자식 뒷바라지에 젊음을 다 써버린 어른 아이 말입니다. 어린이날은 그분들을 찾아뵙고 함께 시간을 보내라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해마다 5월 연휴기간이면 고속도로가 미어터지는 이유를 짐작합니다. 오래된 만남이 마지막 만남이 되게 하지 않겠다는, 자식으로서 품고들 있는 어떤 결의 때문이란 것을 말입니다. 저도 그 미어터지는 도로를 따라 어머님과의 만남을 갱신하고 왔습니다.


멋진 풍경을 보여드리고, 맛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자식의 방식이라면, 고추장, 된장, 말린 나물 바리바리 싸 주며 흐뭇해하시는 것이 그분들의 방식입니다. 사랑에 대한 방식 말입니다. 제가 일기를 적는다면, 아마 이렇게 적었을 겁니다.


"오늘 도로 정체 때문에 5시간을 허비하며 시골집에 다녀왔다. 어머니를 모시고 직지사를 구경하고, 같이 저녁을 먹었다. 먹는 내내 마음 한 편으로 돌아갈 길이 걱정되었다."


그러나 어머니의 일기장에는... 아마 이렇게 적혀 있을 것입니다.


“오늘 아범이 다녀갔다. 아범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테레비에서 길이 엄청 밀린다고 했는데, 얼마나 고생했을까. 아범을 데리고 직지사에 왔던 날이 생각났다. 그때 사 주었던 음식을 아범이 사 주었다. 아범은 기억하고 있는 걸까? 오늘 하루 내 인생에 가장 기쁘고 행복한 날이었다.”


오늘이 어버이날이군요. 어린이날 때문에 공휴일에서 빠져 있는 바로 그날. 일 년 365일 모든 날을 어버이날처럼 하라고, 나라에서 공휴일로 지정하지 않은 그날.





아이들이 준 카네이션이 텃밭에 뿌리를 내렸다. 어머니 가슴에 뿌리내렸을 나의 카네이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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