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씀 Jul 18. 2024

허공의 무게


가지가 휘어지도록 열매를 달았던 사과나무, 열매를 다 내려놓고 난 뒤에도 그 휘어진 빈 가지는 펴지지 않는다. 아직 짊어질 게 남았다는 듯 그에겐 허공이, 열매의 자리마다 비어 있는 허공이, 열매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나희덕, '사과밭을 지나며' 중)



그래, 그럴 것이다.


비어 있는 허공이 열매보다 더 무거울 것이다. 애지중지 눈물로 길러낸 열매들, 익을 대로 익어 각자 살 길 찾아 떠나고. 그 결실이 있던 허공에는 이제 오래된 시간들이 들어찬다. 자식 다 커서 나가버린 노년이 이제는 홀가분할 법도 하건만. 아직도 굽은 허리 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평생 짊어지고 있었던, 그 짐이 있던 자리를 아직도 어떤 짐들이 무겁게 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다 못했다는, 더 해주지 못했다는, 조금 더 업어주지 못했다는 안타까운 후회가 허공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기 때문이다. 헛헛한 공허가 열매의 빈자리를 메우는 까닭이다. 


물길은 늙은 송어가 잘 알고, 흙길은 늙은 말이 잘 알고, 인생길은 허리 굽은 노인이 제일 잘 안다고 했던가. 노인의 허리가 굽는 것은 그들이 짊어진 허공의 무게 때문일 것이다. 그 허공을 가득 채운 시간의 무게 탓일 것이다. 세상에서 시간만큼 무거운 것은 없다 했으니. 나는 그리 믿는다.


삶에는 내가 질 수 있는 만큼의 무게가 있는 것이다. 내가 질 수 없는 무게를 억지로 떠맡지 않을 것이다. 질 수 있는 무게인데 회피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져야 할 무게를 남이 지는데 모른 체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내가 질 수 있는 만큼의 무게를 지며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싫고 그 이하도 싫기 때문이다. 그것뿐이다.






익을 대로 다 익었는데도 아직 노모의 등에 업혀 사는 열매들이 많다고 들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