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첫째 아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날은 처음으로 아파트 청약 신청을 하러 가는 날이었다. 생리 날짜가 조금 미뤄지고 있다는 것, 며칠 전 부터 아랫배가 뭉글뭉글한 느낌이 들고, 괜시리 어지러움증이 나타나는 낌새만 느끼고 있었을 뿐이었다. 설마 임신이겠어... 하면서 궁금하지만 설마 하며 지내던 중에 집 근처 신축아파트 모델하우스를 지나던 길에 그날이 마침 자녀가 있는 신혼부부만 신청할 수 있다는 신혼특공의 마지막 날짜였던 것이다. 친정 엄마는 너희도 가능하지 않겠니라며 바람을 넣고 나는 이때가 기회인 것 같아 부랴부랴 산부인과에 갔다. 이럴 수가. 정말 임신이었다. 임신의 축하보다 더 급했던 것은 신혼특공 서류를 오늘 안에 준비해서 마감 시간인 오후 5시까지 접수해야 한다는 미션임파서블급 과제를 해내야하는 것이었다. 내가 임신인 것을 알게된 것은 오후 2시,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다짜고짜 회사에 당장 급한 일 때문에 반차를 내고 서류를 준비해야한다고 알렸다. 당황한 남편은 임신과 청약신청 두 마리 토끼를 눈 앞에 두고 허둥지둥 당황했다. 나는 그날 만큼은 임신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청약이라는 전장에 나가 남편과 싸워야 했다. 임신 소식보다 청약접수 서류를 준비해야한다는 황당한 미션에 남편은 혼이 쏙 나갔고, 여차저차 서류를 가지고 모델하우스에서 우리는 4시 30분에 만났다. 임신 소식을 알게되고 처음 만나는 우리였지만 급한 불을 꺼야하기에 나는 산부인과에서 받아 온 임신확인서를 남편이 준비해온 갖가지 서류들과 합쳐 우리는 청약 접수에 성공했다.
그제야 이제 우리는 임신이라는 사실을 서로 받아들이며 이야기를 해야하는데, 하루 종일 청약 접수로 진을 빼다 보니 서로 고생했다는 말도 못한 채 우리가 도대체 무얼 하고 있는 건지, 왜 이렇게 하루 종일 뛰어다녔는지 잠시 멍하니 바라보게 되었다. 가족들에게 임신 소식을 알리고서야 어안이 벙벙한 채 어떤 생명체가 생겨났구나 우리 둘로 하여금...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엄마가 폐암을 진단받은 날은 처음 사회복지시설에 취업하게 되어 건강검진결과서를 발급받기 위해 병원을 찾았던 날이었다. 엄마는 영어를 좋아했다. 늘상 결혼을 안했으면 영어선생님이 되었을 텐데, 친구는 교장 선생님이 되었다더라 라는 말을 종종 하던 엄마는 늘 영어 공부를 했고 우리가 어렸을 땐 학습지 영어선생님도 하며 잠시 일도 했었다. 하지만 아빠의 반대로 엄마는 육아만 할 수 밖에 없었고 세 딸이 모두 결혼을 한 뒤엔 자신도 다시 대학에 갔다. 사회복지학과에 편입해 졸업했고, 자격증 시험에도 도전했지만 아쉽게 탈락하며 마음 고생을 많이 한 엄마였다. 엄마는 계속 취업에 도전했고 집 근처 사회복지시설에 드디어 취업을 하게되었다. 엄마는 고등학생 때 폐렴을 앓은 적이 있었는데, 폐에 상처를 가지고 있었다. 암은 아니었지만, 이 상처가 암이 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좀 늦어서 림프관까지 전이되었다고. 엄마는 크게 낙심했다. 며칠 방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어두운 얼굴로 핸드폰에 폐암, 폐전이, 암, 식단, 유명한 의사 등...을 검색하며 한숨을 푹푹 쉬었다. 하지만 엄마는 울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의 폐암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계속 알고 싶어했다. 엄마는 조직검사를 받고, 병원을 다니며 치료 방법을 찾는 동안 점점 더 강인해졌다. 자신은 무조건 수술을 해 이 암덩어리를 떼어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딸들에게는 아이들이나 잘 돌보고 있으라고 말할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