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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randing Essay

"되어가는 것이 이미 된 것보다 낫다"

2023년 꿈, 2025년 현실이 되다-연구년 이야기

by Sunny Sea


2025년 12월 4일 목요일. 연구년의 공식적인 마지막 행사인 학술대회가 경기도교육청 남부청사 아레나홀에서 열렸다. 유튜브 라이브로도 송출되는 행사였다.


개인연구 파트 발표자로 서게 된 나는 다른 참여자들보다 1시간 정도 일찍 도착해 PPT 작동을 체크해야 했다. 새로 이전한 경기도교육청으로 이번에 처음 가는 것이라 네비게이션에 의지하며 일찍 출발했는데, 출근 시간이라 차가 엄청 막혔다. 게다가 도청, 주택공사 등 온갖 공공기관들이 한 곳에 모인 복합 건물에 주차장마저 넓고 복잡해서 예상보다 시간을 지체했다. 다행히 친절한 주택공사 직원분의 도움으로 무사히 찾아갈 수 있었다.


아레나홀, 마지막 점검


아레나홀은 지금까지 했던 워크숍 홀과 달리 청중이 사방에서 서로 마주 보는 계단식 구조였고, 커다란 스크린이 양쪽 측면 벽에 걸려 있었다.


혹시 모르니 최종본 PPT를 USB에 담아오라고 해서 담아갔는데, 엊그제 심사를 통과하여 출간된 『SEL 31 CHaT 루틴 사회정서학습 컬러링북』 전자책의 ISBN이 업데이트된 최종본이 아님을 발견했다. 얼른 USB에 담아간 PPT 파일을 진행자의 PC에 옮겨 담았다.


연구비 정산서 출력본을 제출하려니 페이지마다 서명을 해서 내라고 한다. 심리적으로 여유가 부족한 상황이었지만 44쪽이나 되는 모든 페이지에 얼른 서명을 해서 제출했다.



6번째 발표자


나의 발표는 오전에 하는 8명의 발표자 중 6번째였다. 순서가 다가올수록 떨렸다.


15분 동안 발표를 마쳐야 하는데 시간을 잘 지킬 수 있을지, 준비했던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역시나 우려했던 대로 약간의 시간 초과를 했다. 간단하게 넘어가야지 했던 부분에서, 선생님들이 집중해 주시는 것 같으니 나도 모르게 부연 설명을 더하는 버릇이 나왔다.


중간에 목이 타고 입안이 바짝바짝 말라서 물을 마시지 않고는 말을 이어갈 수 없는 순간이 두세 번 있었다. 물병을 가지고 나가길 잘했다. 전에는 그런 현상이 없었는데, 아마도 몇 주간 이어진 감기와 축농증으로 먹은 약 때문에 기관지에 영향이 간 것 같기도 하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렇게 여러 사람 앞에서, 그것도 유튜브 라이브로 송출되는 매우 공식적인 무대였기에 긴장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따뜻한 격려들


다행히 선생님들께서 호응을 잘해주셔서 마음이 조금은 푸근해지고 용기를 얻었다.


발표가 끝나고 자리로 돌아가는데 두 손으로 엄지척을 해주시는 선생님이 계셨다. "멋지다"고 말씀해주신 분들도 있었고, "내가 꼭 발표를 했으면 하고 기대하고 있었다"고 말씀해주신 분도 계셨다.


연구년 교사들 중 가장 경력이 높은 교사임에도 엄청난 열정과 에너지가 느껴져서 마음을 열어주신 까닭이기도 한 것 같다.


내가 최고 경력자라는 것은 지난 3월, 서로 모르고 서먹한 상태로 열린 연구년 첫 모임 때 게임 시간에 자연스럽게 밝혀졌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이


게임 진행자가 최고 경력자를 찾더니 이어령 교수님의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이'라는 시를 읽어달라고 부탁했다.


떨리는 목소리였지만 감정을 실어 진심을 다해 읽었고, 큰 박수를 받았다.


당시 Poetry Class를 수강하며 '결과물 공개하기'의 일환으로 배운 영시를 낭송하고 녹음하여 유튜브에 올리는 미션을 스스로 정해 연습하고 있던 터라, 갑작스러운 부탁이었지만 평소 습관대로 낭송했다. 심지어 낭송 전에 휴대폰 녹음 앱을 열어 녹음하는 여유까지 부리며, 그 파일을 영상으로 만들어 유튜브에 바로 올리기도 했다.


그때 읽었던 시를 다시 들어본다. 참으로 감동적인 시다. 누가 낭송해도 멋지게 낭송했을 것 같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듯이

-이어령 (『천년을 만드는 엄마』 중에서) / 낭송: 이선

https://youtu.be/nvp767xlsfU?si=-i4p5WjaA5Q_C_nB



연구년, 회복과 성장


연구년 기간 중에 연구 주제에 대한 활동도 열심히 했지만, 분임 선생님들과의 대화와 관계 속에서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나 자신을 잊고 앞만 보고 달려가던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여러 방면에서 실험해볼 수 있었고, 나도 모르게 나 있던 상처들이 회복되기도 했다. 좀 더 단단해진 면도 있고, 오히려 말랑말랑해진 면도 있었다.


연구년 선생님들을 한 분 한 분 보며 '다 연구년 기회가 마땅히 주어질 만한 분들'이란 생각을 했다. 어디서 이런 좋은 분들을 한꺼번에 다 만날 수 있을까 싶어 행복감과 감사한 마음이 밀려왔다.


배우고 싶은 면들을 저마다 가지고 계셨고, 너무도 성실하고 치열하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며 살아오신 흔적들이 말하지 않아도 다 보였다.


그분들 앞에서 감히 내가 서서 뭔가를 발표한다는 것, 그건 그야말로 축복이었다. 교직 생활의 멋진 추억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했다.




첫눈 내리던 밤

학술대회가 끝나고 분임 선생님들과 고기리 유원지 산골 펜션에서 바비큐 파티를 했다.


첫눈이 내렸다. 제법 많이 내렸다.


멋진 저녁이었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갑작스레 제안된 1박은 시간과 여건이 되는 사람만 하기로 해서 8명 중 4명만 남았다. 눈발이 점점 세어지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선생님들의 안전운전이 걱정되어 더 쌓이기 전에 얼른 출발하셨다. 가시는 길에 고생을 좀 하신 듯하다.


자정 무렵까지 신나게 대화하다 잠자리에 들었다.



되돌아본 나의 발표

잠자리에서 이어폰을 꽂고 오늘 발표한 나의 목소리를 들어보려 유튜브 링크를 눌렀다.


발표를 잘했는지 궁금해하는 가족을 위해 행사 중에 가족 톡방에 유튜브 링크를 공유했더니 아들의 피드백이 올라왔다.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를 눈치챘는지 긴장했음을 말하며 "시간이 짧아서 좀 아쉬웠다"고 했다.


아쉬운 점도 있지만, 2023년 말 가슴에 품었던 간절한 꿈이 현실로 이루어진 날이었다. 내게는 역사적인 하루였다.


연구년 관련 보고서도 모두 제출하고 학술대회 발표의 영광도 누린 2025년 12월 4일 목요일. 펜션에서 맞는 첫눈이어서 더욱 멋진 하루였다.


이제 모드를 조금씩 돌아갈 학교 생활로 맞춰야 할 것 같다.


Carol Dweck 교수는 말했다.


"Becoming is better than being."

"되어가는 것이 이미 된 것보다 낫다."


37년 교직의 끝에서 나는 여전히 '되어가는 중'이다.



유튜브 링크 (1시간 57분 30초부터 발표 시작)

https://www.youtube.com/live/0vulIr_WfO8?si=TX74oTQF6xmR96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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