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는데 남학생 무리가 기다렸다는 듯 다가오더니 그중 한 학생이 제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선생님! 저희 1반에 핑크펭귄 된다는 사람 있어요?"
"아니! 아직 없는데... 왜?"
"저희가 핑크 펭귄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오 ~ 그래? 너희 팀은 '교과서와 자기 재능 연결하기' 활동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데?"
"연극이요. 잘하면 오늘까지 찍어서 동영상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안되면 이번 주말까지 해볼게요."
"와아 , 정말? 그럼 이왕이면 내일 3반 수업 때도 보여줄 수 있도록 오늘까지 해서 주면 안 될까?"
"한번 노력해 볼게요."
"그래 알았어. 기대할게."
제가 가르치고 있는 출판사의 중3 영어 교과서 3단원에서는 나라 사랑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아마도 5월 말 즈음에 진도를 나가도록 하고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할 때 국가에 대해, 그리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희생하신 분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갖고 애국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도록 교과서 단원을 구성한 것 같습니다.
핑크 펭귄은 제가 빌 비숍이 쓴 마케팅 방법을 위한 비법서인 <핑크 펭귄>을 읽은 후 제 수업에 도입하여 학생들에게 독창적으로 쓰고 있는 말입니다. 한 마디로 남들보다 빠르고 독창적으로 활동을 수행하여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교과서와 재능을 연결한 수업 사례를 앞으로도 더 쓸 것이므로 그 이야기는 차차 상세하게 하기로 하고 핑크 펭귄에 대한 설명은 이쯤에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나누고자 하는 교과서와 재능의 연결 수업 사례와 결과물은 약 한 달간 코로나 기간 중에 실시했던 프로젝트 수업입니다. 이 단원의 읽기 학습 코너에서는 일제 치하에서 파락호로 가장하여 만주에 있는 독립운동가를 돕느라 일생을 바친 김용환 씨의 실화를 딸의 입장에서 서술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파락호(破落戶)란 재산이나 권력이 있는 집안의 자손으로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털어먹는 난봉꾼을 말한다고 합니다. 일제 치하 때 아마도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독립운동에 가담하기 위해 일부러 파락호 행세를 했던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피해가 가지 않고 독립투사들에게 안전하게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해 주기 위해 비밀로 할 수밖에 없었던 김용환 씨는 갖은 오해와 멸시를 받는 파락호로 살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낯선 사람 즉, 아버지의 친구가 딸의 집에 찾아와 아버지의 실체를 말해주는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이라고는 없고 오히려 나쁜 기억만 가지고 아버지를 미워하고 수치스럽고 용서 못할 존재로 여겼던 딸에게 아버지 친구의 방문은 딸나라에 대해 생각하며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지만 가족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하는 단원이기도 합니다.
코로나19 기간 중인 2021년에 저는 이 단원을 가르칠 때 학생들과 함께 우리 고장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업적을 조사하여 세상에 알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었습니다. 줌 수업과 오프라인 수업을 번갈아가며 하느라 힘들긴 했지만 인터넷 검색도 많이 필요하고 에듀테크도 많이 사용해야 하는 프로젝트여서 코로나로 인해 대한민국 교육이 전면적으로 온라인 수업을 도입한 틈을 타서 한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원의 쓰기 파트에서 단순히 간단한 전기문을 작성해 보고 넘어가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모둠별로 독립투사 한 명씩 맡아서 그분들의 행적을 조사하여 전기문 형식에 맞게 영어와 한글버전으로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다섯 개 학급에 각각 8개의 모둠으로 편성하여 총 40명의 독립운동가를 인물이 겹치지 않게 담당하도록 하였습니다. 문제는 잘 알려지지 않은 분들이 많고 전기문에 실을 수 있을 만큼의 역사적인 기록도 별로 없을뿐더러 간혹 가다 검색되는 자료가 믿을만한 것인지도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처음에는 위키피디아나 네이버 또는 구글 등을 검색하다가 이런 사이트에 있는 자료들의 출처가 보훈원인 것을 알고 보훈원에 직접 전화해서 프로젝트 수업 취지를 설명드렸더니 자료를 찾을 수 있는 곳을 상세히 알려주셨습니다. 인물 배분을 어찌할까 고민이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잘 알려지고 역사적 기록이 많으면 전기문 작성도 수월할 것이기에 원하는 사람에 대해 조사하라고 하면 너도나도 유명한 사람을 원할 것이기에 고민하다가 온라인 회전 추첨판인 Wheel of Names로 추첨을 실시하였습니다. 추첨판에 40명의 독립운동가의 한글이름과 한자 이름을 적어놓고 교실 TV모니텅[ 띄워 회전시킨 후 당첨된 이름을 모둠에 알려준 후 배분된 이름은 빠지고 나머지 사람들을 돌리기를 반복하는 형식으로 진행했습니다.
줌 소회의실을 열어 모둠별로 의논하고 협업으로 자료를 모아 교과서에 나온 전기문 쓰기 방법을 원어민선생님을 통해 배운 후 자기 모둠이 맡은 인물에 대한 전기문을 작성하도록 했습니다. 영어뿐 아니라 한국사람들에게도 홍보가 되도록 한글로도 번역하도록 하였습니다. 일대기를 도식화하여 작성하게 하고 포스터도 그리게 하고 스크래치페이퍼에 그림도 그리고 독립투사들에게 편지도 쓰도록 했습니다.
전기문으로 작성한 것을 낭독에 소질 있는 학생들의 자원을 받아 각각 낭독 녹음하게 한 후 활동 소감 인터뷰까지 수집한 다음 모든 결과물을 유튜브 영상으로 만들어 홍보하였습니다. 실존 인물들에 대한 전기문이기에 혹시라도 잘못된 정보로 작성하여 본인과 유가족들에게 누가 될까 봐 국가보훈처 학예연구사님께서 영상자료를 두 차례 보내 자료정보 오류여부에 대한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우리 고장 경기 용인 출신 독립운동가 40명에 대해 조사하여 만든 결과물을 독립운동가 한 분 한 분을 개인별 영상으로도 올리고 모두 모아 합본 영상에 아이들의 활동 후 소감 인터뷰 내용까지 담아 유튜브에 공유하였습니다. 인터넷에서 '우리 고장 출신 독립운동가 전기문'이라고 검색하면 어마어마한 프로젝트 결과물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QR코드를 찍으면 바로 유튜브 영상으로 연결되니 한 번 감상해 보시길 권해드립니다. 영상 설명란을 들여다보면 영상으로는 공유할 수 없는 더 많은 작품들이 띵커벨이나 블로그 등에 업로드되어 있는 곳으로 안내되어 있을 것입니다.
영상 첫머리에는 이렇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순전히 학생과 제가 만든 영상으로 첫머리에는 해외유학생활 경험을 한 학생이 아나운서처럼 너무도 잘 읽어서 읽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이 영상은 대한민국 경기도 용인에 소재한 문정중학교 3학년 학생들이 내 고장 출신 독립운동가들에 대해 알아보고 그분들의 업적과 희생을 기리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자 제작한 영상입니다. 독립운동가 관련 내용을 다룬 비상교육 영어교과서 3단원의 주제를 확장하는 프로젝트수업을 실시하면서 학생들이 직접 영어 전기문을 작성하여 낭독하였으며 한글 버전으로도 정리해 낭독했습니다. 용인 출신으로 주로 구성된 경기도 출신의 총 40명의 독립투사들에 대해 40개의 학생모둠에서 각각 정리했으며 자료 정보는 국가보훈처 공훈전자사료관에서 제공받았습니다. 또한, 한국학중앙연구원(The Academy of Korean Studies)과 함께 제작하여 운영하는 디지털용인문화대전 웹사이트에서도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독립운동가에 대한 더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으신 분은 국가보훈처(the Ministry of Patriots and Veterans Affairs)/공훈전자사료관(mpva.go.kr)과 디지털용인문화대전(http://yongin.grandculture.net/yongin)에 방문하시기 바랍니다. 나라를 위해 헌신하시고 희생하신 모든 분들과 그 후손들 그리고 그분들의 업적과 노고를 기리고자 하는 모든 분께 이 영상을 바칩니다."
영상을 통해 학생들이 활동에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결과물과 그들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느껴보시고 나라를 위해 이름도 빛도 없이 일제와 싸우다 돌아가신 독립운동가들과 유가족분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하여 이 글을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