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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r Pang Jul 21. 2021

))인터뷰))PaAp People 06. ㅈㅎㅅ

당신을 알기 전에 묻고 싶은 것

2020년 5월 8일

한남동에서 만나다. 


a로 불리는 사나이. PaAp는 이메일 주소로 알파벳을 사용한다. 이를테면 i@paap.kr, n@paap.kr... 하는 식. a라 불리는 이는 파아프를 시작한, 파아프의 대표다. 필연적으로 맨 앞에 서 있는 Man from A. (공동대표는 z를 사용하고 있다. 재미있는 하모니다.) 파아프의 이름으로 템페를 소개한 이후 정말 많은 인터뷰를 했고, 때문에 a가 지나온 삶의 궤적은  꽤 잘 알려져 있다. 나(팡) 역시도 그 여정의 중간에서 a를 만났고, i가 되어 여기 같이 있으므로. 이 글은 다른 인터뷰에서는 아마도 묻지 않았을, 그러므로 처음 꺼내놓는 이야기, 순간적으로 생겨난 말들을 담았다. 시간이 흘러 그것이 변했고, a는 이미 다른 곳으로 갔을 지라도, 여기에 있었다.



Part 1. 초성을 통해 떠오른 것들ㅎㅅ


'형상, 항상, 향상'


이 세 단어를 떠올려 보았다. 

먼저 형상은 현상보다 추상적인 것, 명확하기보다는 상상에 더 가까운 무엇인 것 같다. 

어찌 보면 내 성향과도 비슷한 것 같은데, 좀 더 열려있다는 점이 그렇다.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점도 닮았다. 

말할 수 없는 것, 이미지든 단어들이든. 

나에게 어울리는 단어다.


항상 그런 것 같다. 

내 삶을 살아오는 데 있어서 항상 그런 태도였다. 

예술(안무가와 무용수로 활동했다)을 했던, 사업 이전의 내 삶은 보다 지금이 좀 더 명확하긴 하다.

그러나 항상 그 간극을 생각하면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항상 노력하는 과정, 달려가는 과정. 이 사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하나의 동력이다. 


향상은 사업을 하면서 더 많이 생각하게 된 단어다.

예술 활동을 하면서는 향상에 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작업이 향상될 수 있는 건가? 란 생각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사업에서는 그게 가능하고, 그렇게 생각해야 하더라. 더 위로, 한 단계 더 위로.



Part 2. 단어를 들으며 떠오른 사랑재수 없다, 자아(ego)


'재수 없다'


좋아하는 단어도, 잘 사용하는 단어는 아니다.

누가한테 ‘재수 없다’고 말하는 건 그 자체로 자격지심인 것 같다. 

생각해보면, 누군가에게 ‘재수 없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 행동해왔다. 타자의 시선과 밀접하게 연결된 태도다. 사람이 많은 곳에서 나를 칭찬받거나 하는 상황이 항상 불편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다. ‘재수 없다’는 단어로부터 좀 더 해방이 되었다. 

그래도 역시나 아직 어색하다.

칭찬을 받을 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무용수로 활동했을 당시에 세 명의 출연자 중에 안무자가 유달리 나만 칭찬을 했다. 

나머지 두 무용수는 소중한 나의 친구이자 동료였는데, 괜히 거리감이 느껴지고 민망해졌다.

그게 너무 싫고 눈치 보게 됐다. 

그런 미묘한 상황들이 나는 힘들다. 

의외겠지만 주목받는 걸 안 좋아한다.

기회가 생기든, 뭐가 됐든 그런 상황은 너무 피곤하다.

무대는 이상하게 편하다. 무대와 일상의 괴리감.

무대는 그냥 표현을 위한 장치니까, 오히려 편하게 느낀다.


'사랑'


설영, 지유, 부모님이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설영 하고 있을 땐 참 감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 여성과 결혼을 했다는 것이.

너무 좋으니까, 나는 참 행운아다.

사랑을 어떤 크기로 이야기하기란 어렵다. 그만큼 자연스러운 거란 생각이 든다.

주고받는 개념이 아니라 존재함으로써 사랑이 생긴다고 생각한다.

설영과는 이제 미래를 함께 하는 사이가 됐고, 그게 행복으로 연결된다. 


지유에 대한 사랑은 조건이 없다. 존재 자체가 사랑이다.

처음 만났을 때는 낯설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마음이 컸다.

사랑을 느끼기보다는 생명체로써 바라보게 됐다.

부모가 되어가는 시간이 필요하지만, 지유도 부모를 인식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아빠라는 단어나 역할이 스며든다고 할까, 여러 겹의 그러데이션처럼 스윽.

지유를 낳아서인지 부모님 생각이 자주 나는 요즘이다. 

일을 같이 하게 되니까 애증이 생겼다.

서로 너무 위해서도 안 되고, 안 위해서도 안 된다.

언젠가는 나와 분리되어서 부모님 두 사람만 잘 살면 좋겠다.


'Ego'


예술가의 삶을 살았을 때 에고는 나에게 뿌리 같은 거였다.

뭔가 포기하거나 무너지게 될 때도 에고로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에고가 더 강해졌다고 할까. 

그렇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에고가 한 번에 무너졌고, 연기를 그만두었다.

후유증이 1년 정도 지속됐는데, 그 시기에 움직임을 만났다. 

무용을 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이 너무 좋았고, 만남을 통해 성향과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여자 동료, 동기들을 통해 남자들의 무리에서 으레 있는 농담, 행동, 노는 방식이 나에게 참 안 맞았고, 그것들이 날 힘들게 했었단 걸 깨달았다. 


결혼을 하면서 자아가 많이 바뀌었다. 가족이라는 개념 때문에 다른 줄기가 뻗어지는 자아가 생긴 것이다.

안정감이라고 말하긴 좀 그런데…. 두 다리가 땅에 안착한 느낌, 잘 서있는 느낌. 그러면서 쓸데없는 에고가 떨어져 나갔다. 내 안에서 가지치기가 됐다. 쓸데없는 것들을 치면서 새로운 자아가 나오고 있다.


Part 3. 단어를 이으며 생각난 것들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 크기 / 하염없이 + 돌아가기


“만약 그러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떤 크기로 있었을까?”


모든 선택의 순간에 포함되는 단어다. 

결혼, 사업, 아이.. 선택의 단락들 사이에서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떤 크기로 있었을까? 

<미스터 초밥왕>을 보지 않았더라면 어떤 크기의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 

연극을 보지 않았더라면, 봤더라도 선택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크기로 있었을까? 

설영 하고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금 어떤 크기로 있었을까? 

그때 그걸 안 했더라면 ‘만약에’의 마법! 아쉬움은 하나도 없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지만 내 길이 아니라 포기했고,

군대에 가서 연극을 보고는 연극영화과에 갔고 졸업 후 활동을 하다 그만뒀고, 그러다 무용을 만났다. 

후회했던 적은 없다. 다만 포기를 하면서 후회한 적은 있다. 

연기 생활의 경우가 그렇다. 

배우로 뭔가 이루고 싶었던 부분이 있는데 내 의지와는 다르게 상황 때문에 포기하게 됐기 때문이다.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건 ‘현재’. 

설영과 지유를 보며, 설영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어떤 크기일까? 

결혼을 하지 않았더라면 지유도 없고, 사업을 안 했으면 예술작업을 했을 텐데 … 그럼 행복했을까? 



“하염없이 그곳으로 돌아가기”


자본이라는 것을 다루기 시작했고 자본을 벌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자본을 어떻게 잘 사용할지에 대한 고민을 하지만 사업을 하다 보면 돈 한 푼 두 푼에 흔들릴 때가 많지 않나. 그럴 때마다 돌아가야 하는 돌아가서 다시 생각해야 하는 한 장소가 내 몸이다.

생각하고 있는 내 몸으로 돌아가서 다시 생각한다.

거기로 가면 일시 정지되고, 그곳으로 인해서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는 곳 말이다.

이런 장치가 없으면 아주 힘들 것 같다. 


예술 작업을 하면서는 취미가 따로 없었다.

이미 작업 안에서 지적 호기심을 채웠고 그것으로 만족을 얻었기 때문이다.

굳이 취미활동을 찾아 창조적인 것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지금이 와서 나를 보면 너무 취미가 없다.

뭘 좀 해볼까 싶어도 사람들과 잘 못 섞인다 은근히.

외로움, 상실감, 어쩌면 나는 여전히 즐겁게 놀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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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홍석이고 파아프에서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당신은 이 활동을 통해서 무엇을 꿈꿉니까?”라는 질문을 다음 사람에게 던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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