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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ar Pang Aug 24. 2021

돌아온 팡세이) 미래를 찾아서

울산과학기술대학교(unist) '과일집' 방문기

ㅇ찾았다! 내 운명ㅇ


기획팀 메신저로 뉴스 링크가 전달되었다. '똥으로 에너지를 만든다? 비비변기 시스템...' 스브스 뉴스의 한 토막이었다. 날씬한 체격, 멋지게 희끗한 머리, 굵은 뿔테 안경. 만화에 나올 법한 '박사님'같은 진짜 '박사님'이 비비변기와 똥 에너지 생산에 관해 인터뷰하고 계셨다.


그런데 왜 낯이 익죠? 곰팡둥절.

조재원 교수가 그의 발명품인 '비비'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AZCOIN NEWS

떠올랐다! 책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를 지난봄 함께 읽었다. 뉴스 속 박사님은 이 책의 저자다. 책은 비비변기와 그 시스템의 기본 원리를 다루고 있다. 우리 팀은 '순환 가능한 자체 에너지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자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여러 방법에 늘 관심이 있다.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를 읽은 것도 그 이유다. 

교수님의 책, 여기에 싸인도 받았다! (야호)

음식물 쓰레기, 가축의 분뇨, 인간의 똥. 살아있는 존재이기에 필수 불가결하게 '생산'할 수밖에 없는 것들을 쓰레기로 지구에 축적하는 대신 최소한 제로를 만드는 방법, 나아가 제로에서 다시 플러스로 에너지화할 수 있다면 세상의 얼마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까. 


허나 우리의 이상과 목표는 먼 곳을 향해있지만, 현실은 땅 위에 있다. 걸음걸이 한 폭, 팔을 뻗어 닿을 수 있는 거리의 일들을 고민하고, 행동하는 것이 우리의 최소한이자 최대한이다. 최소 최대의 움직임으로 '바이오가스'를 직접 만들어보기로 했다. 음식물쓰레기와 퇴비를 섞어서 발효(일종의 부패의 과정)를 통해 가스를 생산하고, 그것을 압축시켜 일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내는 것이 첫 번째 과제. 물론 그 양은 매우 미미하겠지만. 


준비할 것은 많았다. 우선 바이오가스를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장비를 구입했다. 중국을 통해 구입했는데 과정이 만만치 않아서 일단 1차 지침, 약 한 달에 걸쳐 배송된 물건에 하자가 많아 2차 난감, 막상 조립하다 보니 너무 멋대로 만들어진 구조 탓에 3차 ㅃ..빡..ㅊ.. 피로. 그럼에도 뭔가를 몸으로 통과해내는 과정은 크고 작은 깨달음을 준다. 해결할 수 있는 것과 도움이 필요한 것들을 가려내게 되고, 향후의 계획을 세워가던 중에 다시 마주치게 된 '비비시스템'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ㅇ울산으로ㅇ


안녕하세요. 박사님! 저는 '템페'라는 식자재를 생산하는 회사 PaAp Tempeh(파아프 템페)의 일원인 곰팡이라고 합니다. 최근 SBS 뉴스 인터뷰에 나오신 모습을 보고, '아! 일단 만나 뵙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박사님께서 말씀하신 '똥의 에너지화, 그럼으로써 순환하고 환경에 기여하는 소중한 생명체로써의 인간'이라는 뜻에 깊이 공감합니다. 하여, 용기 내어 메일 드려봅니다. 8월 중, 파아프 팀원들이 박사님의 실험실을 견학하고, 박사님을 만나 뵙는 것이 가능할까요? 


냅다 메일을 썼다. 학교 홈페이지에서 박사님의 연락처를 쉽게 구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왠지 연락해주실 것 같은' 기분이 들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느낌이었고. 차분히 기다려보려는 마음이었다. 웬걸,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답장이 왔다. 


이렇게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템페를 몰랐었는데 의미 있는 사업을 하시는군요! 더욱 반갑습니다. 모자란 책을 읽고 스터디까지 하셨다니 더욱 감사한 마음입니다. 코로나로 학교의 여러 지침들이 있기는 하지만, “과일집” 방문 가능합니다. 8월 중 원하시는 방문 일정을 몇 개 주시면 내부 연구원들과 협의해서 정할 수 있습니다.


네, 갑니다. 가겠습니다! 바로 갈게요! (차표를 예약하는 곰팡...)



ㅇ과일집 - 과학이 일상에 스며드는 집ㅇ

과일집 앞에서 파아프 팀원들과 연구소 식구들

땡볕 아래 캠퍼스를 네 사람이 걷는다. 백팩을 챙겨 메고, 카메라를 가슴과 배꼽 사이에, 왼손엔 아이스박스. 아이스박스 안에는? 서울에서 챙겨간 템페가 감사의 선물로 꽝꽝 얼어있다. 과일집에 방문하니 박사님 뿐 아니라 연구원 선생님 두 분께서 함께 우리를 맞이해주셨다. 


두 분의 연구원께서 아티스트 레지던시로 운영하는 과일집 내부와 비비시스템에서 시작하여 바이오가스로 변환되는 설비실 소개를 해주셨다. 각 30분 이상이 되는 시간을 들여, 꼼꼼하고 친절하게 알려주셨고 전문지식이 미비한 우리의 거친 질문들도 신중하게 해결해주셨다. 투어를 마치고 둘러앉은 긴 식탁에서 박사님과의 대화를 시작한다. 

문과는 웁니다...
똥을 에너지로 변환시키는 설비들

"발효는 삶과 죽음을 연결하는 움직임’이라 생각합니다. 자연스레 순환, 에너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박사님의 저서 <이것은 변기가 아닙니다>를 읽게 되었습니다. PaAp는 미래에 ‘자생적인 에너지로 움직이는 건물'을 짓고, 그곳을 실험실이자 생산공장으로 이용하고자 하는 꿈이 있습니다. 그러한 꿈을 꾸기에 ‘비비시스템'은 저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저희는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바이오에너지'를 생산하는 실험을 막 시작했습니다. 가정용 바이오가스 생산기를 중국으로부터 구입하여 조립하였고, 실내에서는 자유로운 실험이 불가능하다는 판단 하에 포천의 콩밭에서 실험을 준비 중입니다. 생활 쓰레기인 음식물을 퇴비로 변환하고, 그것으로부터 다시 에너지를 얻는 과정을 실험해보고자 하는데 이에 대한 자문도 구하고 싶어요."


박사님은 온화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는 분이셨다. 비비시스템 연구는 정부의 지원을 통해 2015년부터 시작했고, 내년 2월이면 지원이 끝난다. 사이에 특정한 건물이나 마을에 적용하거나,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거나, 기술 수출을 하는 등의 결과는 없었다. (결과라는 표현을 쓰고 싶진 않지만) 사람의 똥으로 에너지 실험을 하는 사례는 세계적으로 매우 드물다, 현실화하기 불가능한 기술도 아니다. 그런데 왜 상용화의 길은 어려울까? 


박사님은 '선택'의 문제라고 말씀하셨다. 지금의 하수처리장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굳이 새로운 시스템을, 세금 혹은 개인의 자본을 들여서 시도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생각이기 때문이다. 바이오에너지는 가장 믿을 수 있고 생태적인 에너지이지만, 보통의 시민의 입장에서 시도하기엔 어렵다. 때문에 사회적 차원에서 대규모의 인식전환과 투자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왜 나서는 지자체가 없지?

왜 투자하는 기업이 없지?

안타까움 속에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박사님이 이런 이야길 해주셨다. 


"비비시스템을 처음 생각한 건 비지니스 모델을 만들기 위함은 아니었어요. 내 나이가 되면, 부모님을 요양원에 많이 모시게 돼요. 자기 똥조차 자신이 가누지 못하는 시기가 누구에게나 올 수 있습니다. 인간에게 자기 똥을 치우지 못한다는 것은 비참함을 느끼게 합니다. 내가 눈 똥이 에너지가 되고 자원이 되어서 쓰일 수 있게 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관계가 있습니다. 언뜻 이상한 연결처럼 보이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출처: 유니스트 신문


책의 곳곳, 그리고 교수님의 인터뷰 사이사이, 찾아본 자료들에서 똥을 에너지화하려는 움직임이 철학적인 생각에 뿌리내리고 있다는 것은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소비할 수 있는 에너지로 만드는데 그치지 않고 그것으로 새로운 기호를 만들어내려는 움직임, 새로운 화폐 - 똥본위 화폐 - 를 만든 것. 굳어진 기존 질서에 하나의 가치를 더 하는 행위다. 똥으로 에너지를 만들어내겠다는 아이디어도 결국 '가치를 부여하고, 가치를 발굴'하겠단 의지다. 


똥본위화폐의 단위는 '꿀'이다. 넘 귀여워, 팡이도 꿀 좋아하는데.


학생은 학점이라는 기호로 평가된다. A, B, C...  A와 B 사이, B이기도 하고 C일 수는 없는 것이다. 교육의 기호가 바뀌지 않는 한, 새로운 학생의 발견은 없다. 비비시스템을 탑재한 과일집에서 똥본위화폐를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것도 경제성 외에 사회적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사회를 바라보는 다른 시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기술적 실험은 끝이 났다. 남은 것은 누가 나서서 도입하고 시도하느냐다. '보아야 변한다'라고 박사님은 말했다. 과일집의 옛 이름은 '사월당' 생각 너머를 보는 곳이다. 다 같이 생각의 너머를 보고, 시도하고, 공감할 수 있기까지, 얼마큼의 거리와 시간이 남은 걸까? 



ㅇ번외편) 기억할 꼭지들ㅇ


연결

"찾아와 주어 고맙습니다. 템페도 맛있게 잘 먹을게요. 비비시스템이 도입되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지만, 이를 계기로 여러분을 만나게 됐잖아요. 이런 작고 큰 연결을 통해 결국 변화가 시작될 거라 생각합니다." 


신기하게도 과일집 방문 소식을 인스타그램으로 전했더니, 과일집을 알고 있다는 사람, 가보고 싶었단 사람, 곧 갈 거란 사람들이 답글을 달아주었다. '연결'은 이미 시작되었다. 


미세먼지

"현재 우리나라가 제일 주목하는 환경문제는 뭐죠?" 질문했더니 "미세먼지"라고 답해주셨다. 환경 관련 예산의 90%가 미세먼지 연구와 해결을 위해 쓰인다. 나머지 분야의 문제들은 10%의 예산으로 아담하게 연구, 해결 중이라고. (머지않아 공기청정국가 기대해도 되는 건가?)


울산관광

"울산에 볼 거 없어요!" (*교수님 개인의 의견입니다.)

"교수님이 부산 출신이시라..." 


울산 방문이 처음인 파아프 팀원들이 물었더니, 교수님의 답변 그리고 이어지는 연구원님의 전언.

하하하. 정말 그런가요? 








언젠가 방문기 2편을 쓸 수도 있겠다. 방문기가 아닐지라도, 과일집 방문을 통해 배운 것과 느낀 것을 파아프의 프로젝트들에 실험하게 될 테니까. 그때까지 꾸준히 연결하고 발효해야지. 읽어줘서 고마워요, 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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