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꺼이 어깨를 내어주던 우리가 그립다.
옆 사람이 자꾸 고개를 내 어깨위로 떨군다. 짓눌리는 듯한 무게감에 슬쩍 어깨를 빼본다. 고개가 아래로 떨어지자 깜짝 놀라 잠에서 깬다. 30초가 채 지나기 전에 고개가 다시 내 어깨에 기대어 온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지하철에서 곤히 잠든 사람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출퇴근 시간 지하철에서 운좋게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십중팔구 모자란 잠을 청했다. 지하철에서 잠들게 되면 본의아니게 추한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내곤 했다. 침을 조금씩 흘리기도 하고 고개가 뒤로 젖혀지면서 치과 치료를 준비하는 것처럼 위쪽을 향해 입을 크게 벌린다. 나지막이 코골이 소리까지난다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졸음이 깊어지면 무의식중에 고개를 정면으로 숙였다가 드디어 옆 사람의 어깨에 기대게 된다. 지하철에서 옆 사람의 어깨에 기대어 잠들어 본적이 있는가? 그 편안함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우리는 이렇게 서로 어깨에 기대어 하루를 살아내었다. 그런데 요즈음의 내 생활을 찬찬히 뜯어보니 사람을 만나는 일도 줄어들고 누군가의 어깨에 기댈 일은 더더욱 발생하지 않는다. 지하철을 타면 모두가 스마트폰과 하나가 되어있다. 이제는 졸리지 않는 것일까? 스마트폰을 쳐다보느라 누가 앞에 서있는지, 건너편 자리에 어떤 사람이 앉아있는지 알지 못한다. 같은 공간에 있다는 최소한의 동질감도 느낄 수 없다. 더이상 어색한 눈맞춤은 없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이 요즘처럼 힘겨웠던 때가 있었을까? 사람을 만나는 것이 두려워지고 사람을 만나도 각자의 세계에서 좀처럼 빠져나오지 못한다. 함께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 가던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누군가 내게 말했다. 삶을 왜 사는지에 대한 답을 구하려 하지 말고 어떻게 살것인지만 생각하자고. 삶을 어떻게 살것인지 지금 답을 말해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내 주변 사람들과 많은 것을 공유하고 나누며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겠다고 답할 것이다. 스마트폰에 빠져 서로에 대한 마음의 거리가 멀어진 우리에게 코로나는 물리적 거리마저 멀어지게 했다.
지하철에서 서로의 어깨에 기대던 그 시절이 그립다. 떨어진 손수건을 주워주고 인연이 되어 결혼에 이르게 된 어느 커플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런 가슴 설레는 이야기는 이제 너무나 오래된 현실이다. 조금 더 낯설지만 내 곁을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어깨를 내어주지는 못하더라도 따뜻한 시선한번 건네면 어떨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온기가 그리운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