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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하 Jan 22. 2024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소년, 브라이언

 

청소광으로 제 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는 브라이언이 요즘 유튜브에 많이 보인다.

급 고백하건데 한 때 나는 민규부인이었다. (브라이언의 한국 이름은 주민규이다)

뭐든 깊게 빠지지 못 하는 성향 덕분에 연예인 덕질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런 나에게도 10대 소녀 시절은 예외였다.

이메일 주소는 mingyubuinXXXX@hanmail.net 이었고

온라인에서 사용하던 닉네임은 상큼민규, 민규바라기, 민규뷘 같은 것들이었다.ㅋㅋ

그 시절 내가 좋아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최애돌이 브라이언이었다.








2000년 초반 여고생들은 2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신화창조'거나 '팬지오디'거나. (각 신화와 지오디 팬클럽 이름)

한 반 40명 중 35명 정도가 신화팬 아니면 지오디팬 둘 중 하나였다.

그 와중에 유일무이하게 '플라이투더스카이'라는 그룹을 좋아했던 나.

ㅋㅋㅋㅋㅋ


35명의 주류들을 제외한 나머지 5명 중 한 명은 클릭비 팬이었는데 나만큼이나 외로운 덕질을 해야했다.

전혀 가까워질 계기가 없던 그 아이와는 남은 잡지를 서로 나눔하다가 상대 가수의 안부를 물으며 친해졌다.

"야 클릭비가 잘 생긴 애들 젤 많잖아. 연석이랑 상혁이 귀엽던데 호석이가 얼굴로는 최고인 거 같다." 

"그래 야 연석이 얼마나 귀엽다고. 플라이도 잘 생겼잖아."

민규부인과 연석마눌은 상대 가수의 외모를 적당히 칭찬해주는 말, 그 이상의 도파민을 자극하는 깊은 대화로 이어지지 않는, 이어질 수 없는 상황이 안타깝기만 했다.

(당시라면 절대 상상하지 못 했을, 무려 1N여년 뒤 연남동에 갔다가 우연히 들어가게 밥집에서 

우연석이 바로  앞까지 다가와 서빙하는 광경을 목도하게 되는데...!

잘 지내니 그 시절 연석마눌 주영아. 

30대가 된 너의 연석오빠는 마포구 연남동에서 요식업계 종사자로 활동하고 계셨단다.)


함께 소리칠 팬이 없다는 건 생각보다 훨씬 쓸쓸한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리 고독해봤자 원픽은 결코 변하지 않는다.

누가 뭐래도 아무리 봐도 내 눈에 최고인 것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것은 취향을 넘어 일종의 개인적인 신념이자 철학이랄까.






요즘 아이돌은 포토카드라는 것이 필수템으로 불리지만 우리 때는 잡지가 대세였다.

파스텔, 뷰, 쥬니어, 토마토 등등 신화와 지오디 팬들이 본인 오빠들 분량 찢어내고 남은 부분에 있던

우리 오빠들 사진은 그냥 주기도 했다. 

덕분에 잡지 사는 돈이 많이 굳었다는 장점 하나는 있었다.ㅋㅋㅋ







전국의 소녀들이 하나가 되어 HOT를 외치던 시절을 지나

젝키 은지원에게 아주 잠깐 눈길이 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나만의 오빠를 만나지 못 해 방황하던 시간을 보내고

플라이투더스카이라는 그룹을 만난 뒤 느낄 수 있었던 벅참과 설렘이란.


SM인데 2명?

알앤비발라드라는 걸 부른다고?

이번엔 느낌이 달랐다. 세련됐고 하얗게 눈부셨다.

드디어 나타났다. 나의 아이돌.



생각해보면 어이없는 그저 유리 덩어리일 뿐인 '유리로 만든 마이크(?)'는

이수만 사장이 의도했다는 브라이언의 신비로운 이미지에 참 잘 어울렸다.


연예인 중에서도 아이돌은 철저히 개인의 취향이 반영된 소위 말하는 유사연애의 영역이 분명 존재한다.

소나무같은 나의 취향에 완벽히 부합했던 브라이언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쌍커풀 없는 눈에 오똑한 콧날과 조화를 잘 이루는 날렵한 브이라인 얼굴형,

그리고 두껍지 않으면서 예쁜 입매까지.

결정적으로 웃을 때 하트 모양이 돼버리는 입술에 반했다.

이목구비 어디 하나 빠짐없이 고스란히 내 취향으로 조합된 얼굴 그 자체였다.

노래를 부르는 목소리마저 소몰이가 아닌 미성이라 좋았다.








어릴 때 몇 년 반짝 좋아한 걸로 팬이라 할 수 있나 싶지만

짚어보니 브라이언에 대해 여전히 꽤 많은 걸 잊지 않고 있었다.


생일은 1월10일. 본명은 주진택(여전히 뜬금없게 느껴지는 이름ㅋㅋㅋㅋㅋ).

과거 실제로 성형외과 의사들이 뽑은 잘 생긴 얼굴 1위 연예인으로 선정된 적이 있다. (내 각막 참 각막

미국에서 제법 알아주는 명문대를 나올 만큼 공부도 곧잘 했고, 볼에 살이 없고 눈썹없는 게 컴플렉스라 했는데, 이후 내가 관심을 끊고 살았던 사이 진하게 눈썹 문신을 한 듯 했고, 최근에는 시술을 받았다고 굳이 또 털어놔 여전한 솔직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10년 넘게 연애를 안하고 있다 고백했지만 과거 한참 활동하던 시기에는 예능에 함께 출연했던 연예인과 열애설도 여러 번 있었고, 그 중 실제 사귄 한 사람은 팬들이 다 알고 있을 정도다.

최근 방송에서 애교부리는 여자를 안 좋아한다고 했던데, 본인 어릴 적에는 어디 나오기만 하면 애교 캐릭터로 애교를 그렇게 떨었었다.

통통한 검지로 볼따구 찌르며 윙크하던 얼굴을 절대 잊을 수 없다. 









돌이켜보면 우리 오빠는 참 한결같았다.

예능에 나오면 늘 망가지기를 자처했고 포장없이 솔직했다.

요즘 연예계를 떠올려보면 20년 넘게 사고 안치고 사라지지 않은 것만 해도 기특하다 싶은데 ㅋㅋㅋ

나이 들수록 오히려 더 자기관리에 열심인 모습을 보니 감개가 무량할 지경이다.

40대가 되고 미국 아저씨로 불리게 됐지만 내 눈엔 여전히 귀엽다.



타고난 귀여움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연애 예능에 나와 바닥에 드러눕더니 턱을 괴고 무릎 아래 다리를 앞뒤로 까딱까딱하며 꼬마신랑 애교를 시전하던 장면은 레전드로 남아 내 기억 창고에 여전히 생생히 살아있다.

그러나 20년이 흘러 후배에게 "요즘은 인기가 선배"라는 말을 들었다며

업계 인간들에 대한 환멸을 서슴없이 입 밖으로 내뱉는 오빠를 보니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레몬을 들고 어깨를 한껏 치켜올려 윙크를 마구 날리던, 한국말이 어설퍼 실수 많았던

뽀송하고 샤방했던 그 시절의 애기 브라이언은 이제 없다.

조금 슬펐지만, 40대가 돼도 이 정도로 귀여운 게 얼마냐며 스스로를 위로해본다.





스타와 팬은 닮는다고 했던가.

"아이 해잇 피플"을 외치며 인간을 극혐하게 된 점도 나와 똑닮아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는 심정이다.




높아진 인기만큼 볼거리가 많아지니 내 안에 잠들었던 민규부인의 세포가 깨어나는 기분이다.

청소광 새 에피소드가 올라오면 나도 모르게 광대가 치솟는다.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귀염둥이스러운 모습에 심장이 뛰고 입꼬리가 절로 올라간다.

이렇게 또 낼 모레 마흔을 앞두고 재입덕이란 걸 하게 되나 보다.




오늘도 알차게 오빠와 함께 헤잇 피플이다.

치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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