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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Nov 29. 2020

셔터음이 사라진 공간에서

1.

어지러운 한 해였습니다. 삶의 궤적 위에 있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사진도 그러했습니다. 부끄러운 한 해입니다. 겨우 발걸음을 뗀 새 프로젝트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그마저도 떠밀리듯 시작한 작업입니다. 어쩌면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닐 겁니다. 작년부턴가 나는 무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제 안에 시작된 고통이 눈을 가려버린 것처럼. 질문을 던지는 대신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카메라를 든 손이 갈길을 잃어갔습니다. 한참을 걸어보고, 머리를 속속 뒤져봐도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삶에서 셔터음은 줄고 줄어 고요만 남았습니다.


2.

처음은 아닙니다. 2년 2개월을 몸담았던 회사를 나올 때도 같은 기분이었거든요. 매달 새로운 아이템을 찾아 헤맨 시간들이었습니다. 모든 게 비었다고 생각한 순간에도 스스로를 쥐어짜던 시간들이었습니다. 퇴근하는 사람들로 빼곡하던 9호선 급행열차에서 몇 번이고 정신을 잃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한계가 왔다는 것을요. 고작 2년 만에 한계라니, 몇십 년을 거뜬한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꽤 긴 시간 스스로를 채우기 위해 노력했는데, 벌써 창고는 텅 비었습니다.


3.

다시 텅 빈 창고가 되었습니다. 텅 빈 창고에는 그네들의 말소리로 가득합니다. '너무 개인적이야', '공감하기 어려워', '다음에 다시 지원해주시기 바랍니다', '정확히 어떤 의도인지 모르겠네요', '정말 집요한 사람이네요'. '특이한 작업이야', '흥미로운데', '함께 발전시켜보자', '이 공간에 어울릴 것 같아' 같은 말들이 허공을 맴돕니다. 요 며칠은 그 창고에 털썩 앉아 허공을 맴도는 말로 숨을 쉬어보았습니다. 어떤 말은 숨이 되고, 어떤 말은 가시가 되었습니다.


4.

타인의 말로 채워지지 않는 숨을 쉬기 위해 또 다른 타인을 찾아 나섭니다. 유튜브에 떠도는 타로 점, 신점을 괜스레 찾아봅니다. 전화 상담은 얼마, 대기 일은 얼마. 무뎌진 눈이 향하는 곳은 결국 운명이었습니다. 무엇을 묻고 싶은지 스스로 질문조차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 예약을 문의합니다. 복사 붙여 넣기를 한 듯한 답변, 나는 정확히 내년 11월 자정쯤에나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묻고 싶은지 1년이나 더 생각할 시간이 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5.

망설이다가 터놓은 말입니다. 사진을 찍는 것이 너무 어려워졌다고, 이 길이 정말 맞는 길인지 모르겠다고. 그래서 목소리만 들어도 나를 알 수 있다는 사람에게 예약을 하려 한다고요. 당신이 웃으며 말합니다. '그 7만원 나한테 주면 말해줄게.'라고, 그 사람이 이 길이 아니라고 한다면 정말 그만둘 셈이냐고요. 그 말에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을 계속해도 되겠냐는 나의 물음에 하고 싶다는 마음이, 대답이 들어있는 셈이었습니다. 7만원이면 차라리 맛있는 것을 사 먹으라는 잔소리와 함께, 당신의 무료 상담이 끝났습니다.


6.

놓고 도망가기엔 아직 사진이 좋습니다. 어떤 사진이든 조금이라도 찍었으면 좋겠다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언젠가 한 번은 이럴 수 있다고, 그게 바로 슬럼프라고 무뎌진 시선과 텅 빈 창고에 명패를 달아줍니다. 시간을 들여 창고를 다시 채우고, 마음을 써서 무딘 날을 갈아보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실패에도 거뜬한 것이 완성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비워낸 곳엔 먼지 같은 말들을 쫓아내 보려고 합니다. 운명을 묻지 않은 오늘은 어떻게 회상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결과가 어떻든 운명에 탓하지는 않게 될 겁니다.


7.

'다시 사진을 찍어줬으면 좋겠어'

내 어떤 사진에도 무심한 것 같던 당신의 그 말 한마디가 고요를 깹니다. 한 장, 두 장 사진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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