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뒤셀도르퍼 Mar 11. 2021

쓸모를 찾는 여정

    어떤 플랫폼에서든 박수를 받는 이들이 있다면, 바로 성공의 방도를 알려주는 사람들일 거다. 이 시국에 변변한 알바 자리 구할 길이 없어, 부업을 찾는 검색어를 올리면 줄줄이 미끄러져 나오게 된다. 유튜브의 '00으로 월 100만 원 벌기'에는 개인 강의라던가, 독립 서적을 제작하라고 한다. 그 플랫폼에 가서 상위 랭크된 책과 강의를 보면, '00으로 성공하기'로 이어진다. 어쩌면 그 책과 강의를 접한 사람들이 재생산을 하고 있는 걸까. 성공하기 위해 성공을 팔아야 하는 세상이다. 브런치에도 성공과 노하우가 늘어났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한 2015년 즈음은 여러 무게의 글들이 많았는데, 어느샌가 성공이 스며들어 끊임없는 사랑을 받아 부상했다.


    처음엔 부풀려 볼 성공의 흔적은 없는지 삶을 뒤져보았다. 하지만 손에 남은 것은 내 것인 줄만 알았던 경력 두 줄이었다. 그마저도 모래 먼지를 털고 보니 사라져 있었다. 그렇게 성공해본 적도, 그 가능성도 희박해지는 서른 초반에 도착했다. 나의 쓸모를 적는 란은 여전히 공석이다. 어디 하나 특출 난 능력도, 내보일 성격도 없는 나는 그 공백에 반짝이는 커서가 가장 두렵다. 예순한 번 깜빡이면 1분이 지나간다. 31년 4개월 21일 22시 38분. 39분. 40분. 쓸모를 찾아가는 이 순간에도 쓸모를 찾을 가능성은 줄어든다.


    단어를 찾기로 했다. '사진, 글, 책, 소수자, 독일'을 쓰다가 지워버렸다. 그니까 검열하건대 내 삶엔 저런 단어들이 푹 박힌 적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카메라를 들고 배회하는 게 부끄러워졌고, 한 달에 한 번도 지켜내지 못한 브런치 페이지, 스스로를 소수자라고 말하기 싫어하는 소수자, 하루 종일 한국어를 쓰는 독일 거주자. 거창하게 붙어있던 단어를 떼 버리고 나니 비로소 책이 남았다. 그나마 잡식으로 이어가는 책 읽기 말이다. 뷔페를 좋아한다. 눈치 보지 않고, 주어진 것들로 양껏 배부를 수 있으니까. 사실 두 접시 정도면 위는 파업을 하는데, 그래도 뷔페를 선택한다.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리디북스 셀렉트를 시작한 지도 1년 반이 넘었다. 책맛도 까다롭지 않은 나는 이것저것 담아 자리로 가져온다. 한 달에 두 권으로도 배부른 날이 있으면서도 그런다.


    그러니까 쓸모를 찾긴 했다. 뷔페에서 당신이 꼭 맛볼 책은 바로 이것! 하는 그런 쓸모 말이다. 그런데 책맛이 까다롭지 않다는 건, 신뢰를 주기 어렵기도 하다는 말이다. 입맛 까다로운 사람을 쫓아간 곳에 맛집이 있을 텐데, 나에게 맛집은 기사식당 같은 거라. 추천 좀 해달라고 했더니, 100권쯤 쌓아놓고, "사실 추천할 거 100개 더 있어"하고 멍청한 소리나 해도 놀랄지 않을 거다. 그니까 그 쓸모는 나의 시간을 날려버리는데 유효하고, 다른 누군가는 '무쓸모'라고 못 박을지도 모른다. 그러면 다시 쓸모란은 텅 비겠다.


    생각해보면 나의 검색어는 성공에서 시작했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나를 브랜드화하는 것이 비결'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그 브랜드에 필요한 특징을 찾았다. 그 특징이 나의 쓸모였고, 난 쓸모가 없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그런데 만약 거꾸로 갔다면 어떨까. 나의 쓸모의 공란을 채우기 위해 먼저 펜을 들었다면, 주저 없이 적었을 거다. 애인을 웃게 하는 능력, 친구와 가족들에게 의지할 곳을 내어주는 능력, 잡다한 책을 읽어 거침없이 추천할 수 있는 능력, 사진에 관한 적당한 지식으로 누군가에게 장비 상담을 할 수 있는 능력, 작업을 보고 끊임없이 같이 상상할 수 있는 능력. 적으면서도 계속 생각할 것이다. 각 상황과 사람에게 나는 어떤 쓸모의 형태를 하고 있는지 말이다.


    불특정 다수에게 성공이라 전할 수 있는 쓸모가 없다. 없었고 없고 없을지도. 하지만 대상을 바꾸면 각각의 자리에서 나는 내 쓸모를 다하고 있다. 나를 둘러싼 이들에게 특정한 가치가 되기도 한다. 또 아마존의 호갱이 되기도 하고, 클래스의 가장 멍청한 학생이 되기도 하면서 나는 이 세상에 계속 존재해왔고, 존재해야 할 하위 몇 퍼센트의 쓸모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그런 소소한 쓸모를 발견하는 일이 나의 쓸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누군가는 회사의 직함을 달고 있으면서도, 한 가정에 우뚝 속해있으면서도 쓸모를 깊게 고민하는 것 같다. 꽤 멀리까지 걸으며 나의 쓸모를 찾아본 앞선 여행자로 전해줄 말은 딱 하나다. 우리의 쓸모는 쓸모의 대상을 바꾸는 순간 더 많이 보일 것이라고. 그 쓸모들은 정말 별거 없지만, 그 별거 아닌 것들로 누군가를 웃게 하기도 하고, 내가 웃기도 하는 것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쓸모들이 모여 당신을 성공의 길로 이끌 거라고 거창하게 끝맺음을 짓지 못하지만, 당신의 오늘 하루가 절망으로 끝나지 않길 바란다. 그래서 한 가지 쓸모를 배포한다. \이 글을 읽어준 당신은 기본적으로 나에게 가장 감사한 쓸모가 되었다.\

작가의 이전글 당신의 머리맡엔 어떤 풍경이 있나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