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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뒤셀도르퍼 Nov 15. 2021

13제곱미터, 방이거나 무덤이거나

나는 포기하기로 했다 1

눈을 뜬 나는 빈 천장을 본다. 그 천장에는 커다란 등이 하나 있었다. 먼지가 쌓이다가 결국 스며든 것 같은 회색 갓이 있고, 그 회색이 잘 보이지 않게 밝혀주는 노란 전구가 달렸다. 전선이 쑥 나온 곳은 집에 중심이 아니었는지, 회색 선이 천장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마침내 누군가 중심이라고 설정한 장소에 등이 있었다.


그 등은 사라졌다. 천장은 마침내 작은 점 하나만 남기고 짐을 덜어냈다. 그 점은 천장에 깊이 뿌리를 내린 쇠로 된 고리다. 쇠고리는 등을 지탱하고 있었고, 얼마나 단단히 고정이 되었는지 잡아 뜯어내듯 등을 빼내도 미동 하나 없었다. 등은 떠밀리듯 치워지고, 천장엔 가벼움과 어두움이 스몄다.


유독 케이블이 많다. 작년에는 HDMI 케이블만 다섯 개는 산 탓이다. 독일에서 세 개, 한국에서 두 개. 눈이 이상했던 것인지,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지 못한 뇌의 문제인지. 나는 자꾸만 잘못 샀다. 하나의 케이블을 사기 위해 네 개의 무의미한 케이블을 샀다. 그 무의미는 나에게, 현재, 이 노트북에만 해당하는 것일 텐데. 그런 이유로 버리고 싶지 않았다. 언젠가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의미가 될 것 같아서.


일이 없는 날이면 아침부터 천장을 바라보다가 울었다. 애인에게 무얼 하느냐고 문자를 보내다가도 울었다. 옆 방은 조용하고, 나도 조용하게 울었다. 울다가 코를 풀다가, 다시 울기 위해, 이유를 꺼내기 위해 나는 13제곱미터짜리 방을 둘러본다.


오래된 편지, 먹다 만 과자, 일주일째 쌓인 그릇, 이케아 가방에 쌓인 빨래, 하나도 팔리지 않은 엽서, 언젠가 걸려있던 액자,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 열어본 적 없는 책, 고장 난 4 테라 짜리 외장하드 그리고 서른세 살의 여자


하나하나가 다 이유가 되었다. 일주일째 설거지를 안 할 정도로 게을렀다. 너는 왜 이렇게 게으르냐고 다그치자 울었다. 나는 이렇게 게을러서 빨래도 안 했다. 나는 이렇게 게을러서 내 전시에 엽서를 팔지 못했다. 너무 게을러서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도 버리지 않았다. 얼마나 게으른지 책을 사놓고도 읽지 않았다. 그렇게 게으르게 서른셋이 되어버린 여자다.


그 모든 것은 원인이자 결과였다. 게을러서 이 모든 것을 못했고, 이 모든 것을 못해서 나는 운다. 울기만 하는 나는 게으른 사람이다. 내일도 이 방 안에서 울면서 하루를 보내야 할 것 같았다. 모레에는 일을 가야 하는데, 이렇게 하루 종일 울기만 하면 준비는 언제 할까. 역시 나는 게으르다. 그래서 준비를 못할 거다. 아니 코 앞에 다가와야 울면서 할 것이다. 그래서 바닥엔 휴지가 쌓일 것이다. 게으름의 결과가 쌓이고, 그 결과의 또 결과인 울음이 쌓이고, 울음의 결과인 휴지가 쌓일 것이다. 매일 또 매일, 바닥은 무겁고 천창은 가볍다. 가볍고 어두워서 그래서 내 방 같지 않은, 그 천장에 닿고 싶다.


목을 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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