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압력

by 온새결

다음 날 오전 10시, 『주간시사』 편집국.

편집국장 오정환의 사무실은 언제나처럼 정돈되어 있었다.

창을 통해 스며드는 햇살이 책상 위를 비스듬히 가로지르는 평화로운 풍경 속에, 그는 책상 위 교정지에 붉은 펜으로 다음 호 국장 칼럼의 문장을 다듬고 있었다.


‘이런 시대일수록 언론의 사명은 ‘진실’에 있을 수밖에 없다. 그 진실이…….’


편집국 특유의 소음이 유리벽 너머로 은은하게 들려왔다.

키보드 타자 소리, 간간이 울리는 전화벨.

바쁘지만 그 자체로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적어도… 벌컥 하고 문이 열리기 전까지는 그랬다.


벌컥!


문이 거칠게 열렸다.

노크는 없었다.

오 국장이 놀라 고개를 들었다.

평소 편집국에 얼씬도 하지 않는 경영기획실장 김정수였다.

그는 넥타이가 비스듬히 틀어져 있었고, 상기된 얼굴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니 실장님! 갑자기 왜… 무슨 일 있으세요?”


오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오 국장!”


김 실장이 언성을 높이며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에요!”

“무슨 일이신데요, 실장님?”

“무슨 일? 몰라서 묻는 거예요?”


김 실장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오 국장으로선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내가 지금 YN전자, 오성자동차, 대한은행 세 곳에서 전화받고 오는 길이에요!”

“아니… 다 우리 주요 광고주들이잖아요. 갑자기 왜……?”

“‘왜?’”


김 실장이 비웃듯 말했다.


“‘왜’ 소리가 나와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에요! 왜! 왜! 대체 왜 저희 오랜 광고주들이 하나같이 광고 끊겠다고 하는 겁니까!”

“네, 네? 뭐, 뭐라고요!”


오 국장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지금 말한 세 곳은 『주간시사』 전체 광고 수익의 40%를 맡고 있는 말 그대로 ‘큰손’들이었다.


“참 나, 자세한 설명도 안 해줍디다! 그저 편집국에 물어보라는 말만 하더군요. 대체 무슨 일이에요, 이게!”


탁!


김 실장이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리쳤다.

펜이 데구르르 굴러가다 책상에서 떨어졌다.

작게 들려오던 편집국의 모든 소음이 거짓말처럼 멎었다.

마치 누군가 음소거 버튼을 누른 것처럼.

편집국의 기자들이 하나둘 국장실 앞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우리 파트에서 수년간 얼마나 많은 사람을 만나고 얼마나 많은 술을 마셨는지 알기나 합니까!”


김 실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그런데 지금 당신들 그 고고한 기사 때문에 우리 노력이 다 물거품이 되게 생겼어요!”

“실장님, 저희가 무슨 문제가 되는 기사를 썼다고 그러세요. 일단 진정하시고…….”

“진정?”


김 실장이 코웃음을 쳤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요? 당신들 월급은 땅 파서 나오는 줄 알아요!”


그의 목소리는 이제 편집국 전체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일단… 저도 지금 어떻게 된 상황인지 파악을 해봐야…….”


오 국장이 간신히 말했다.


“하, 당장 원인 파악 제대로 해서 대책까지 마련하세요! 안 그러면…….”


김 실장이 오 국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이랑 편집국 전체가 책임지게 될 겁니다. 명심하세요!”


쾅!


김 실장은 문을 거칠게 닫고 나갔다.

유리창이 덜컹거렸다.

오 국장은 한숨을 내쉬며 의자에 앉았다.

손이 떨렸다.

오 국장은 내선 전화를 들었다.


“팀장 이상 전원, 지금 바로 내 방으로 들어오세요.”


-


오후 2시, 『주간시사』 편집국.

사무실의 분위기가 살얼음판이었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모두가 굳은 얼굴로 모니터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국장실 안에서 오 국장이 통화하는 소리만 드문드문 작게 들려왔다.


“네, 네… 아이고, 그럴 리가요. 예, 오해이실 겁니다. 예, 예…….”


자세히 들리진 않았지만 절박한 목소리였다.

바로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고 하나가 들어왔다.

그녀는 다음 호에 실릴 「주간사람」의 기사를 위해, 최근 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와 인터뷰를 하고 들어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어쩐지 분위기가 이상했다.

몇몇이 그녀를 흘끗 보고는 시선을 돌렸다.


‘뭐지? 왜 이렇게 분위기가…….’


하나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는데, 태수가 무거운 표정으로 다가왔다.


“이하나.”


평소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아니었다.


“따라와.”


태수가 돌아서서 걸어갔다.

하나는 영문을 모른 채 그를 따랐다.

지나가는 그녀의 등에 동료들의 시선이 꽂혔다.


편집국장실 앞.

태수가 노크했다.


“국장님, 박태수입니다.”

“하… 들어와.”


안에서 들려오는 오 국장의 목소리는 지쳐 있었다.


편집국장실 안.

하나와 태수가 오 국장 앞에 섰다.

하나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치를 살폈다.


탁!


오 국장이 서류 뭉치를 책상에 내리쳤다.


“보고도 없이 뭣들 하는 거야, 지금!”


분노에 찬 목소리였다.


“이 서류 좀 봐. 10년, 15년 넘게 거래한 광고주들이야. 그런데 오늘 오전에만 절반이 떨어져 나갔어!”

하나가 놀란 눈으로 국장을 봤다.


“이하나,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네?”


오 국장이 한숨을 쉬며 이마를 짚었다.


“태수한테 들었어. 너네 지금 수호그룹 뒤 캐고 다닌다며.”

“……!”


하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국장님, 그게…….”

“하…….”


오 국장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먹지 말고 상세히 보고해.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닌 거야.”

그래서 하나는 처음부터 설명을 시작했다.

수호건설의 부실시공 의심 사건과 건물에서 이상 징후를 발견한 것, 과거 산재 사고들을 조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고 공장에 취재 간 것까지.

태수가 옆에서 보충 설명을 했다.


“국장님, 수호그룹 산재 은폐 정황이 명백한 상황이에요.”


오 국장이 두 사람을 번갈아 봤다.


“하… 그러니까 너희들 얘기는, 수호그룹 부실시공 문제를 찾아보다가 산재 사고 취재에 들어갔다는 거네.”

“네… 죄송합니다. 미리 보고를 했어야 했는데…….”


태수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그러자 하나가 머뭇거리며 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까지 일이 커질 줄 몰랐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취재를 중단…….”


그런데 그때, 태수가 하나의 팔을 살짝 잡으며 제지했다.


“국장님.”


태수가 결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취재, 정식으로 허가해 주십시오.”

“뭐?”


오 국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태수를 봤다.

하나도 놀란 눈으로 태수를 봤다.


“선배님, 무슨…….”


태수가 하나를 보며 눈으로 가만있으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고는 오 국장을 똑바로 봤다.


“저희가 보고를 안 한 건 잘못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구체적인 물증을 잡고 나서 보고하려고 했어요. 막연한 의혹만으로는 국장님도 난처하실 것 같아서요.”

“지금이 그런 얘기할 때야? 광고주들이 줄줄이 떨어져 나가는데!”

“바로 그래서 그렇습니다.”


태수의 목소리가 단호했다.


“단순히 취재 조금 했다는 이유로 수호그룹이 저희 광고주들 쪽에 압박 넣은 거 아니에요. 이렇게 나온다는 건 뭔가 찔리는 게 있다는 거 아닙니까? 우리가… 우리가 결정적인 부분을 건드렸다는 뜻일 수도 있어요.”


오 국장이 침묵했다.


“저희가 광고주 눈치 본다고 이 건 묻으면 그냥 홍보 대행사 되는 겁니다.”

“야, 박태수!”

“국장님도 아시잖아요. 이런 압력이 처음도 아니었고요.”


태수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


“이하나 기자가 그동안 모은 자료들 한 번만 검토해 주세요. 그리고 판단해 주십시오. 만약 취재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시면, 그때 중단하겠습니다.”


오 국장은 한참을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일단 나가 있어.”


-


『주간시사』가 입주해 있는 건물 옥상.

오 국장이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그런 그의 한 손에 하나의 취재 자료가 들려 있다.

오 국장은 수심이 가득한 얼굴로 휴대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눌렀다.


“대표님, 저 오정환입니다. …네, 맞습니다. 수호그룹 때문입니다.”


담배 연기가 차가운 공기 속으로 흩어졌다.



2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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