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화. 전환점

by 온새결

다음 날 오전 10시 『주간시사』 편집국.

사무실의 분위기는 여전히 싸늘하고 불안했다.

하나는 자리에 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화면의 글자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제 국장실에서 있었던 일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다.


‘나 때문에… 광고 수익이 반토막이 났어. 나 때문에 회사가…….’


죄책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10년, 15년씩 이 회사에 청춘을 바친 동료들.

그들의 생계가 자신 때문에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숨이 막혔다.


탁.


누군가 그녀의 책상 위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고개를 들어보니 태수였다.


“이하나.”


태수의 목소리가 평소와 달리 무거웠다.


“따라와.”


하나는 의자에서 일어났다.

사무실을 나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동료들이 흘끔흘끔 쳐다봤다.


-


『주간시사』 사무실이 있는 건물 옥상.

문을 열고 나가자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때렸다.

태수는 난간에 기대어 서서 멀리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나가 다가가 그의 옆에 섰다.

침묵하던 태수가 입을 열었다.


“지금부터 수호그룹 취재 건, 정식으로 모든 절차 보고하면서 진행해.”


하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태수를 봤다.


“네? 선배님 그게 무슨…….”


태수가 그녀의 말을 자른다.


“어젯밤에 국장님한테 전화 받았어.”

“국장님이… 뭐라고 하셨는데요?”


태수가 하나를 돌아봤다.

그의 눈빛이 평소와 달랐다.

뭔가 비장한 느낌이 돌았다.


“진행하라고.”

“왜…….”

“어쨌든 이제 회사 차원에서 백업 들어간다. 아주 제대로 된 특집 기사로 준비해 봐. 메인은 네 거다.”

하나는 할 말을 잃었다.

어제만 해도 회사가 발칵 뒤집어졌는데, 하루 만에 이런 결정이 났다니…….


“하지만 선배님, 그렇게 하면 회사가… 회사가 망할 수도 있잖아요.”


하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태수가 그녀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런 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하지만…….”

“이하나.”


태수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네 몫은 딱 하나야.”


바람이 더 세게 불었다.

하나의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대표님 국장님이 이 회사를 걸고서라도 내보내고 싶어 하는 기사를 쓰는 거.”


태수의 목소리가 바람 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오직 그게 네가 할 일이고, 네가 해야 할 일이야. 알았으면 준비 잘해.”


그렇게 말한 태수가 옥상 문 쪽으로 걸어갔다.

하나는 그런 태수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태수가 옥상 문을 열면서 뒤돌아보며 말했다.


“안 들어가? 시간 없어, 인마.”


-


같은 시각, 『주간시사』 대회의실.

긴 테이블에 『주간시사』의 간부들이 모여 있었다.

모두의 표정이 무거웠다.

특히 김정수 실장은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어제의 분노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듯했다.

대표석에 앉은 한정혁 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직원들을 둘러봤다.

20여 년 전 이 회사를 창립했을 때와는 모두들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이 자리에 모인 이유는 다들 아실 겁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어제 우리 주요 광고주들이 거래를 끊었습니다. 제가 직접 조사해 본 결과 수호그룹 측의 압력이 있던 것으로 확인되었어요.”


김 실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오 국장도 무거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도 추가로 두 곳이 더 연락을 해왔습니다. 제일화재, 한성물산.”


회의실이 웅성거렸다.

잠시 후 한 대표가 담담하게,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힘든 상황이에요. 그럼에도 우리는… 수호그룹의 비윤리적 경영 실태와 산재 은폐 의혹에 대한 심층 탐사 보도를 준비할 것입니다.”

“대표님!”


놀란 김 실장이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제 제가 말씀드린 저희 상황… 제대로 검토하신 뒤에 말씀하시는 거예요?”

“다 검토했네.”


한 대표의 대답은 짧고 명확했다.


“대표님, 이건… 이건 자살행위예요! 수호그룹이 본격적으로 압박하면… 피해가 더 커질 거라고요.”

김 실장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정면 승부 하다간… 우리 회사 1년도 못 버틸 수 있습니다. 아니, 6개월도 장담 못 해요!”


다른 임원들도 불안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알고 있네. 다 알아.”


한 대표는 언성을 높이는 김 실장을 바라보며 차분하게 말했다.


“그래서, 앞으로 김 실장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네.”

“네?”


김 실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 우리 『주간시사』가…….”


한 대표는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광고주들로부터 자유롭게 경영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구상해 오게. 자네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회사에서도 전력으로 도울 거니까.”

“새로운… 모델이요?”

“이번 사태는 명백한 위기야. 하지만 난…….”


한 대표가 직원들을 쭉 둘러보더니 말했다.


“동시에 우리 『주간시사』가 자본의 압력에서 벗어나 진정한 언론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이려 하네.”


회의실이 또 한 번 술렁였다.

김실장이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


그날 저녁 8시 수호타워 앞.

하루 종일 수호그룹 자료를 정리하던 하나는 복잡한 마음으로 수호타워 앞에 섰다.

42층 건물이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을 내며 우뚝 솟아 있다.

하나는 건물을 올려다봤다.


‘타워 붕괴를 막겠다고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와버렸어. 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잘하고 있는 걸까……?’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때였다.

갑자기 시야가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한 감각이었다. 비전이 시작되는 신호.


‘뭐, 뭐야 또……?’


- 두 번째 비전 -


수호타워 1층 로비.

들려오는 아이들의 노랫소리.

“♪ You raise me up~ so I can stand on mountains ♪”

감동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동영상을 찍는 사람들.

그런데 그때.

쾅!

귀청을 찢는 폭발음.

건물이 흔들린다.

사람들의 비명소리.

그리고 몇 주 전 하나가 수호타워에 처음 방문했을 때 봤던 비전 속 장면이 그대로 이어진다.


-


“허억!”


하나는 숨을 몰아쉬며 현실로 돌아왔다.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괜찮으세요?”


지나가던 행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네… 네, 괜찮아요.”


하나는 간신히 대답하고는 건물 벽에 기대어 섰다.

지난번에 봤던 것보다 더 생생한 비전이었다.

똑같은 수호타워에서의 큰 붕괴 사고.


‘역시 막지 못한다는 것인가…….’


하나는 황급히 차로 돌아가며 문자를 보냈다.


“신부님, 지금 성당에 계세요?”



2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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