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각자의 자리에서

by 온새결

겨울의 문턱, 찬바람이 불어오는 진영동 성당.

하나는 무거운 발걸음으로 성당 로비로 가는 계단을 올랐다.

어제부터 시작된 압박과 고민 때문에 그녀의 얼굴엔 피로가 가득하다.

로비로 들어서니 우진이 서 있다.

하나를 기다리고 있던 우진.

그의 표정도 조금 지쳐 있다.

그런데도 하나는 어쩐지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느낌을 받는다.


“신부님.”

“오셨어요.”

“이야기해 드릴 게 있어요.”

“네, 저도요.”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이 미묘하게 닮아 있다.

사무실로 자리를 옮긴 두 사람.

우진이 각자의 잔에 따뜻한 차를 따랐다.

먼저 입을 연 것은 하나였다.


“회사가… 전면전을 선언했어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하나는 수호그룹의 압박으로 광고주가 절반이나 떨어져 나간 일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내린 결정을, 떨리는 목소리로 설명했다.


“이제 저는 양지에서도 움직여야 해요. 수호그룹과의 전면전을… 준비해야 해요. 이제는 회사의 명운도 걸렸으니까…….”


우진은 조용히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수호타워에서 일어날 사고를 조사하려고 했던 건데… 어쩌다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네요. 하하…….”

“그러게요.”

“어쨌든, 타워 내부 조사는 이제 신부님께 맡길 수밖에 없어요.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수호타워에 찍힌 상태이기도 해서요…….”

“알겠습니다.”


우진은 짧게 대답했다.

그러곤 자신의 말을 시작했다.


“진영동성당 어린이 성가대가 수호그룹 50주년 기념행사 오프닝 공연에 초청됐습니다.”

“네?!”


하나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교구 쪽 통해서 섭외가 들어왔는데, 제가 거부한다고 될 일이 아닌지라…….”

“신부님… 사실, 성당 오기 전에 수호타워에 잠깐 들렀는데, 그때 추가 비전을 한 번 더 봤어요.”

“추가 비전이요?”

“네. 수호타워가 무너지는 그 순간의 비전이요.”

“그런데요?”

“거기서… 거기서 노랫소리를 들었어요. 아이들이 노래를 하는 소리를요. 〈You Raise Me Up〉이었던가…….”

“아아…….”


하나의 말을 듣던 우진의 몸에 힘이 빠졌다.

하나는 이번에도 자신이 우려하고 있는 일을 그대로 말해버렸다.


“그것 또한 보셨군요…….”

“네……. 신부님 얘기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아무튼, 그래서 저도 준비를 하려 합니다.”

“어떤 준비요?”

“우리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실패했을 때라면…….”

“아무래도 저희가 수호타워 사고를 막지 못했을 경우를 고려해서, 그날 그 자리에 있을 사람들을 최소화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행사를 취소시키거나, 연기시키거나… 어떤 방법으로든.”

“그게 가능할까요? 수호그룹의 50주년 행사를…….”

“어렵겠죠.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우진의 눈빛이 결연하다.

하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좋은 방법이 떠오르면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아, 참.”

우진이 무언가 기억났다는 듯 말을 덧붙였다.

“어제 그 다리를 절던 남자가 저를 찾아왔어요. 김민수라는 이름표를 달고 있던…….”

“그 직원분이요? 왜요?”

“글쎄요. 그저 이상한 말을 하고 갔습니다.”

“이상한 말?”

“네. 일전에 왜 자신에게 차를 줬냐고 하더니, 갑자기 신은 없다고 말하면서 저한테 상담소 그만두라고…….”

“네?”

“혹시 수호그룹 조사하시게 되면 ‘김민수’라는 사람도 알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네… 그렇게 할게요. 조금 이상한 분이긴 하네요.”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이제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싸워야 할 때가 되었음을.


-


다음 날 오후, 수호타워 1층.

우진은 ‘쉼표 상담소’를 시작하며 로비를 둘러봤다.

자꾸만 그 남자가 신경 쓰였다.


‘김민수’.


그때였다.


“어! 신부님!”


갑작스러운 인사에 우진이 고개를 돌린다.

50대로 보이는 한 남성이 환한 얼굴로 다가온다.

다부진 체격에 선량해 보이는 인상.

어쩐지 낯이 익은 느낌이었지만, 우진은 그를 떠올리지 못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우진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자 남자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 저 진영동성당 신자입니다.”

“아이고 그러셨군요. 죄송해요, 몰라봬서.”

“에이, 무슨요. 따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으니까요.”


우진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사과를 했다.

그런데 어떤 기시감이 들었다.

그 남자의 목소리가 유난히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 목소리…….’


남자는 상담소를 한번 쭉 둘러보더니 말했다.


“와, 이런 좋은 일도 하시는군요. 역시 신부님은 다르시네요.”


그제야 우진은 떠올렸다.

어둡고 비좁은 고해소.

칸막이 너머에서 들려오던 떨리는 목소리.


‘그분이야…….’


건설 현장에서 사고를 당한 후배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는 자책과 괴로움을 고백하던 그 남자였다.

“여기에서 일하시나요?”


우진이 상냥한 어투로 물었다.


“아, 그건 아니에요. 그냥… 누구를 좀 만나러 왔어요.”


남자의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아, 그러시구나.”

“혹시 시간 되시면 이따 차 한잔 하러 와도 돼요?”


남자가 밝은 얼굴로 물었다.


“아이고 그럼요 당연하죠. 요즘 손님도 없어서, 하하.”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시간 되면 뵐게요! 수고하세요!”


그렇게 남자는 끝까지 웃는 얼굴을 보이며 인사를 하곤 멀어졌다.

그런데 우진은 어찌 된 영문인지 조금 불안하고 자꾸만 마음 한편이 찜찜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2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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