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용서받지 못한 자

by 온새결

“하하하,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이따 시간 되면 뵐게요! 수고하세요!”


여전히 건설 현장에서 작업반장으로 일하고 있는 박기영은 끝까지 웃는 얼굴을 보이며 인사를 하곤 우진과 멀어졌다.

그런데 상담소에서 몇 걸음 떨어지자, 그의 얼굴에서 미소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늘 차우진 신부를 마주친 것은 예상 밖의 일.

그의 목적은 엄연히 다른 곳에 있었다.

오늘, 그는 반드시 ‘그’를 만나야 했다.

고해성사에서의 고백은 기영에게 잠깐의 위안을 주었을 뿐, 가슴에 단단히 박힌 죄책감을 없애주지는 못했다.

신의 용서가 아니라, 자신이 외면했던 그 아이의 용서가 필요했다.


기영의 손에 들린 쇼핑백 손잡이가 땀으로 축축해졌다.

동네에서 가장 용하다는 한의원에서 오늘 아침 받아온 한약이었다.

이것이 속죄가 될 리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빈손으로 찾아갈 용기는 더더욱 없었다.

박기영은 상담소 쪽을 애써 외면하며, 수호그룹 50주년 기념행사 준비로 분주한 로비와 광장 주변을 샅샅이 훑기 시작했다.

그의 눈은 오직 한 사람, 몇 주 전 스치듯 보았던 그 걸음걸이의 주인을 찾고 있었다.


‘어디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광장 한편 거대한 조형물이 설치되고 있는 현장이었다.

작업복 차림의 직원들 틈에서, 마침내 그의 시선이 멈췄다.

익숙한 뒷모습.

그리고 한쪽 발을 디딜 때마다 기우는 몸의 중심.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는 숨을 가다듬고 천천히 다가갔다.

그리고 마침내, 자재를 정리하고 돌아서는 청년의 얼굴이 정확히 눈에 들어왔다.

앳되지만 고통과 분노가 서려 있는 얼굴.

3년이라는 세월의 먼지가 쌓였지만, 틀림없는 선우였다.

목이 뜨겁게 메어왔다.

박기영은 저도 모르게, 갈라지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선우야!”


그 순간, 선우는 깜짝 놀랐다.

이곳에서 자신을 그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은 없었기에…….

지선우는 주변의 모든 소음이 순간 멎는 듯했다.

그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말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린 선우가 남들은 모르는 자신의 본명을 부른 남자를 확인했다.

선우의 심장이 요동쳤다.

예상치 못한 인물.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과거의 망령.

그의 얼굴에 스치는 것은 분노가 아닌, 깊은 당혹감과 날 선 경계심이었다.


‘왜… 이 사람이 여기에?’


선우는 반사적으로 주변을 훑었다.

자신의 정체가 탄로 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그는 박기영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따라오세요.”


-


수호타워 인근 한적한 카페.

박기영과 지선우가 마주 앉았다.

박기영이 지선우의 작업복에 달려 있는 명찰을 보고 먼저 어렵게 입을 열었다.


“김민수… 개명을… 한 거니?”


지선우는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뭐예요?”

“선우야… 내가 오늘 너 꼭 만나려고…….”

“왜 날 찾아왔어요!”


선우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그는 사죄의 말을 전했다.

지난 3년간 품고 있던 죄책감을 가득 담아…….

하지만 선우의 눈빛은 한없이 차가웠다.


“이제 와서요?”

“선우야… 내가 그때는…….”

“됐습니다. 그 사과, 저한테 아무 의미 없습니다.”


선우의 한마디가 박기영의 심장을 찔렀다.


“선우야…….”


박기영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러면서 그는 한 망자의 이름을 꺼냈다.


“그날 이후로 하루도 잊은 적이 없어……. 주환이도… 너도…….”


‘주환이’.


그 이름이 나오자 선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선우의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그리고 그 너머로 3년 전 그날의 풍경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


아찔한 높이의 15층 외벽.

살을 에는 바람이 뺨을 스쳤다.

낡은 안전벨트 고리가 쇳소리를 내며 삐걱거렸다.


“야! 이거 끝나고 국밥에 소주 한잔하자. 내가 쏜다!”


매달려 있던 선우가 옆에 함께 매달려 있던 주환에게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그 모습에 선우도 피식 웃었다.


“안 돼, 인마! 나 오늘 일찍 들어가기로 했어. 엄마랑 동생 기다려!”

“하, 자식! 너 뭐 효녀 심청이야, 뭐야?”

“야 인마 심청이는 여자잖아!”


아래쪽에서 작업 전반을 살피던 박 반장은 그저 불안한 얼굴이었다.


“야, 야! 수다 떨지 말고 빨리빨리 끝내고 마무리하자!”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끼이이익- 툭!


주환의 몸을 지탱하던 벨트가 힘없이 끊어졌다.


“어……?”


짧은 소리와 함께 주환의 몸이 옆에서 사라졌다.


“주환아!”


선우가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그 역시 균형을 잃고 함께 추락했다.

지상에 부딪히기 직전, 그의 다리가 H빔에 부딪혔다.

끔찍한 충격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그 이후로 계란으로 바위 치기나 다름없는 긴 싸움이 이어졌다.

그러나 언제나 박기영은 그의 눈을 피했다.

원청의 압박을 이기지 못한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들려왔을 때도…….


-


선우의 시선이 다시 현재로 돌아왔다.

그의 눈에는 이제 어떤 감정도 남아있지 않은 듯했다.


“반장님은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으시네요.”

“뭐…?”


박기영이 당황해서 되물었다.


“그때는 수호건설 앞에서 아무 말 못 하시더니, 이제 와서 자기 마음 편하자고 저를 찾아와요?”


선우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번 다시 이렇게 찾아오지 마십쇼.”


선우는 기영에게 싸늘한 눈빛을 보내며 말했다.


“서, 선우야……!”


기영이 따라 일어나 선우의 팔을 붙잡았다.

그러자 선우가 화가 난 표정으로 기영의 멱살을 잡고 말했다.


“이런다고 죽은 주환이가 돌아와, 내 다리가 멀쩡해져! 당신 죄책감이나 조금 덜겠지. 끝까지 이기적인 X끼……. 돌아가신 사장님한테 부끄럽지도 않냐?”


그는 절뚝이는 다리로 망설임 없이 카페 문을 나섰다.

홀로 남은 박기영은 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테이블 위, 끝내 건네지 못한 쇼핑백만이 그의 죄책감처럼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그는 끝내 용서받지 못한 채, 더 무거운 무게에 짓눌렸다.



27화 끝.

작가의 이전글26화. 각자의 자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