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문을 거칠게 밀치고 나온 선우는 절뚝이는 다리로 빠르게 수호타워를 향해 걸었다.
최근 이렇게까지 마음이 동요한 적은 없었다.
‘이제 와서 한다는 말이 고작… 미안?’
선우는 기영의 입에서 주환이의 이름이 나온 것을 참을 수 없었다.
‘염치없는 X끼……!’
선우의 머릿속은 다시 한번 그날의 기억과 배신감으로 가득 찼다.
“서, 선우야! 잠깐만!”
그때 등 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박기영이었다.
그는 숨을 헐떡이며 선우의 뒤를 따라왔다.
그의 손에는 아까 그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선우야… 이거라도 받아줘. 응?”
박기영은 거의 애원하듯 쇼핑백을 선우의 손에 억지로 쥐여주었다.
그 절박한 몸짓에서 죄책감이 느껴졌지만, 선우는 그것마저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놔요!”
선우는 신경질적으로 쇼핑백을 뿌리쳤다.
툭
쇼핑백이 바닥에 떨어지며 묵직한 소리를 냈다.
기영은 차마 떨어진 쇼핑백을 다시 줍지 못하고 망연히 선우를 바라봤다.
“다신… 다신 찾아오지 마세요.”
선우는 차갑게 말을 내뱉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절뚝이며 사람들 사이로 사라졌다.
기영은 그런 선우를 보며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
조금 떨어진 횡단보도 앞에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
다름 아닌 우진.
우진은 커피를 사 들고 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낯이 익은 두 사람이 실랑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아까 자신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넸던 그 진영동성당의 신자와, 며칠 전 상담소에 찾아와 날 선 말을 뱉었던 김민수라는 직원.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이상한 분위기.
박기영의 절박한 몸짓과 애원하는 듯한 표정.
선물을 거칠게 뿌리치는 차가운 김민수 얼굴.
바닥에 나뒹구는 쇼핑백과 한약들.
순간, 우진의 머릿속에서 흩어져 있던 퍼즐 조각들이 섬광처럼 맞춰졌다.
박주환 군 어머니의 말과 고해성사에서 들은 그 남자의 말.
“그 애들이 떨어졌어요. 벨트가 끊어져서……. 한 친구는 그 자리에서 죽었습니다. 다른 친구는 간신히 살았는데 추락하면서 다리를…….”
“15층 외벽 작업이었더라고요. 안전벨트 하나만 차고 했다는데 그게 끊어져서…….”
“주환이 친구도 현장에 있었는데, 그 친구는 그때 다리를 크게 다쳤어요. 그 뒤로 영구적인 장애를 갖게 되었다고 들었는데……. ‘지선우’라는 친구였어요.”
“오늘 그 친구를 봤어요. 수호타워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고요. 다리를 절면서…….”
“끝까지 그 친구를 도와주지 못했어요. 그 친구 다친 몸으로 회사랑 싸우고 있었는데도요…….”
‘김민수 저 사람이 고해성사 때 들은 사건의 당사자가 맞구나. 그럼 지선우와 김민수… 비슷한 사건이 여러 번 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우진의 시선이 ‘그’의 시선과 마주쳤다.
기영의 선물을 뿌리치고 성난 얼굴로 수호타워로 돌아가던 선우와.
-
그 시각 『주간시사』 편집국장실.
여전히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다.
오 국장과 하나와 태수가 회의 테이블에 앉아 있다.
테이블 위에는 하나의 취재 자료가 수북히 쌓여 있다.
“그럼 수호테크 쪽을 통해 취재 정보가 수호그룹으로 흘러들어 갔다고 봐야겠군.”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수호타워에서도 잠입해 있다가 걸린 적이 있긴 한데, 거기선 제가 뭘 하기도 전에 쫓겨났으니까요…….”
“그런데 수호타워에는 왜 잠입해 있던 거야?”
태수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아, 그건… 부실 시공 문제 취재하려고 하다가…….”
하나는 당황했지만 비전에서 본 내용과 기둥들에 남겨진 흔적 관련된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
“수호타워는 지어진 지 1년밖에 안 됐잖아?”
“그, 그래도… 뭔가 힌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그때 오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밖을 보며 말했다.
“어쨌든 그쪽에서 이미 경계 태세에 들어간 건 확실해. 그러니까 앞으로 더 신중하게, 더 치밀하게 움직여.”
“네.”
하나와 태수가 대답했다.
오 국장이 다시 둘을 보며 말했다.
“이제 투 트랙으로 간다.”
하나와 태수가 집중했다.
“수호건설 부실시공 관련해서는 박태수가 맡아. 하자 소송, 민원 기록 전부 파봐. 보도된 내용 말고도 커뮤니티에 도는 작은 정보 전부 긁어모으고, 직접 현장 취재해. 시공 문제는 입주자들한테 민감한 사안인 만큼 협조 구하는 것도 쉽진 않을 거야. 그러니까 최대한 조심히, 은밀하게 움직여.”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하나.”
“예.”
“수호그룹 관련 산재 사건은 네가 책임 지고 전부 조사한다. 우선 노조나 시민단체 쪽에 협력 요청해서 수호그룹 산재 관련 소송 정보 전부 긁어 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쳐 왔다면, 강준호 군 아버님 같은 분들이 더 있을 거야.”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오 국장은 잠시 서류를 뒤적이다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했다.
“음, 여깄군. 이 추락 사고 생존자 지선우 씨도 한번 수소문해 보고.”
“네. 찾아보겠습니다.”
‘지선우…….’
하나는 그 이름을 되뇌었다.
태수와 하나는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자신들만의 싸움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28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