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퍼즐 조각

by 온새결

다시 수호타워 앞.

선우가 기영의 선물을 뿌리치고 떠나간 그 자리.

우진은 그 자리에 잠시 굳어 있었다.

그 남자는 성난 얼굴로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는 수호타워 쪽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길가에 홀로 남아 망연자실 서 있는 박기영.

우진의 시선은 이내 박기영에게 향했다.

박기영은 땅바닥에 떨어진 찌그러진 쇼핑백과 흩어진 한약 파우치들을 허망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우진은 망설였다.

지금 저 사람에게 다가가 말을 거는 것이 옳은 일일까.

그러나 이내 발걸음이 그를 향했다.

박기영이 떨리는 손으로 바닥의 물건들을 주섬주섬 줍고 있을 때였다.


“저… 선생님, 괜찮으십니까?”


우진은 조심스럽게 물으며 바닥의 물건들을 함께 주웠다.

갑작스러운 우진의 등장에 박기영이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기영은 당혹감과 수치심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그는 우진의 시선을 피하며 황급히 쇼핑백을 챙겨 들었다.


“아… 아닙니다. 신부님 아무 일 아니니까 얼른 가세요…….”

“네…….”


기영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거의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우진은 절박하고 불안해 보이는 기영의 뒷모습과, ‘그’가 사라진 방향을 번갈아 보았다.

어쩐지 의문과 불안감이 더욱 커져만 갔다.


-


그날 늦은 오후 종로의 어느 낡은 건물 안.

하나는 어떤 시민단체 사무실 앞에 서 있다.

강준호 군 사건을 조사하는 데 있어 자문을 구하러 온 것이었다.


「함께서는사람들」


작고 소박한 간판이 달려 있었다.


똑똑.


하나는 조심스레 노크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갔다.

통화를 하고 서류 더미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활동가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떻게 오셨어요?”


그중 꽤 젊은 남성 활동가가 하나에게 물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까 연락드렸던 『주간시사』 이하나 기자입니다.”

“아, 벌써 오셨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그는 하나를 회의실로 안내하고는, 잠시 기다려달라는 말을 남기고 나갔다.

쌀쌀한 날씨였는데, 어쩐지 열기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잠시 후 어딘지 모르게 친근한 느낌이 들면서도 눈빛이 날카로운 40대 여성 활동가가 들어왔다.


“『주간시사』 이하나 기자님? 반갑습니다. ‘함께서는사람들’ 윤소영 팀장입니다.”


그녀는 명함을 건네며 악수를 청했다.

하나는 벌떡 일어나 악수를 하고는 그녀에게 자신의 명함을 건넸다.


“안녕하세요! 『주간시사』 이하나입니다!”


둘은 간단히 인사를 한 후 자리에 앉았다.

하나는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정리한 강준호 군 사건 자료를 테이블 위에 펼쳐놓으며 이 사고에 대한 전문가 자문을 구하고 싶다고 말했다.

윤 팀장은 익숙하다는 듯 서류를 꼼꼼히 검토하기 시작했다.


“수호… 또 수호군요.”


그녀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그러더니 그녀가 혀를 차며 말했다.


“이 사람들 수법은 아주 교과서적이죠.”

“교과서적이라는 건…….”

“네. 악랄한 회사들의 교과서가 될 법해요.”

“악랄하다고요?”

“악랄하다마다요. 사고 나면 우선 개인 부주의로 몰아가다가, 사측의 문제가 명백히 드러나면 어떻게든 하청업체로 떠넘기죠. 소송까지 잘 가지도 않아요. 회유하는 스킬이 어찌나 뛰어난지 공상 처리로 덮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말이 회유지 사실상 협박입니다.”


소영의 말에 하나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더 자세히 살펴봐야 하겠지만, 어쩐지… 이번 건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래요? 이 사건, 어떻게 보이시는데요?”


하나는 자세히 물었다.

하나의 질문에 소영은 강준호 군이 사용했던 기계 장비와 안전 센서 모델, 그리고 ‘이상 없음’으로 처리된 점검표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설명했다.


“이 기계에 달린 안전 센서 말이에요. 생산성 떨어진다고 관리자 지시로 아예 꺼놓거나 민감도를 확 낮춰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런데 보세요. 3개월 전에 같은 라인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가 있었죠? 근데도 점검 결과는 언제나 ‘이상 없음’이에요. 은폐 정황이에요. 어쩌면 강준호 군도 작동하지 않는 센서를 믿고 작업하다 변을 당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소영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하나가 소영에게 물었다.


“그렇다는건… 역시 단순 불의의 사고가 아니라, 회사가 방치하고 조장한 예견된 비극이라는 거네요.”

“그렇게 해석할 여지가 큽니다.”


그녀의 답변에 하나의 얼굴이 굳어졌다.

막연한 의심이 확신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하나는 후속 취재를 위해 수호그룹의 다른 산재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를 요청했다.


“혹시, 수호그룹 산재 피해자들에 대한 정보를 더 얻을 수 있을까요? 말씀드렸듯이 이번에 저희가 수호그룹 관련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는데, 한 분 한 분 이야기를 모으면 그 파급력이 더 커질 거예요.”

“물론이죠. 수호그룹 자료는 차고 넘칩니다. 다만 기자님께서 사고 당사자분들께 직접 내용 보도 허락을 받으셔야 할 거예요. 대부분 흔쾌히 허락해 주시긴 하겠지만… 자신의 얘기가 보도되는 것을 꺼리시는 분도 많으니까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요.”


소영은 잠시 회의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잠시 후, 엄청난 양의 서류를 들고 회의실로 돌아왔다.


쿵!


자료들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니 꽤 큰 소리가 났다.


“헉! 이렇게나 많아요?”

“이것도 일부예요.”


소영은 자료를 천천히 펼쳤다.


“수호그룹… 수호그룹…….”


그러고선 수호그룹 관련된 자료를 찾았다.

옆에서 하나도 도왔다.


“아 참! 팀장님 혹시 ‘지선우’라는 분의 자료도 여기 있을까요? 수호건설 현장 추락 사고 피해자분이신데…….”

“아, 선우 씨요?”


소영이 잘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하나는 놀라며 소영에게 물었다.


“어? 아세요?”

“그럼요! 지선우 씨. 저희도 1년 넘게 도왔어요. 정말 독하게 싸우던 분이었는데… 상대가 너무 거대했죠. 청축건설 사장님 돌아가신 후로는… 저희 연락도 피하고 그냥 사라져 버렸어요. 안 그래도 내내 마음에 걸렸던 친구입니다.”

“‘청축건설’이라면……?”

“지선우 씨 당시 회사 이름이에요.”


하나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아, 여기 있네요!”


소영은 파일 속에서 다소 빛바랜 사진 한 장을 꺼내 하나에게 건넸다.

아직 앳된 티가 남아 있지만, 세상 착한 눈으로 웃 가진 청년.

지선우의 얼굴이었다.

하나는 그 순간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일전에 보았던 ‘그 사람’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수호타워 1층에서 우진이 차를 건네자 매몰차게 갔던 그 남자, ‘김민수’와.



2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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