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충동

by 온새결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기 시작하는 시간.

상담소를 마치고 성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던 우진의 주머니 속에서 휴대폰이 짧게 진동했다.

액정을 확인한 그의 눈이 커졌다.

하나였다.


하나의 문자를 본 순간, 우진은 발걸음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머릿속에서 어지럽게 돌아다니던 조각이 하나의 그림으로 맞춰졌다.

우진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리고 뒤로 돌아 다시 수호타워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성가대 연습을 하며 까르르 웃던 아이들.


-


수호타워 광장 한편, 거대한 조형물 설치 현장.

선우는 마지막 남은 자재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박기영과의 예기치 못한 만남으로 흐트러졌던 마음을 애써 다잡으며, 그는 다시 냉정한 ‘김민수’로 돌아와 있었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헉, 헉… 저기……!”


고개를 돌린 선우의 눈이 커졌다.

며칠 전 상담소에서 마주쳤던 그 신부였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선우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잠깐 얘기 좀 해요.”


선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아까 박기영과 함께 있던 자리에서 눈을 마주친 그 사람.

왜 자신을 찾아온 건지, 선우는 어쩐지 찝찝했다.


“뭡니까?”


선우가 차갑게 물었다.

우진은 숨을 고르며 다시 한번 정중하게 말했다.


“저는 진영동성당 주임신부 차우진이라고 합니다. 잠시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정말 잠깐이면 됩니다.”

“할 얘기 없습니다.”


선우는 차갑게 말을 끊고 돌아섰다.

값싼 동정이나 위로를 들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그때, 등 뒤에서 들려온 우진의 목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그러지 마시고, 이야기 좀 하시죠… 지선우 씨.”

“……!”


선우의 몸이 그대로 굳었다.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느낌.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돌려 우진을 바라보았다.

우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흔들림 없는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뭐야, 당신……?”


선우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경계심이 최고조에 달했다.


‘어떻게 내 이름을… 설마 박 반장이랑 아는 사람인가? 그 인간이 신부한테 나에 대해 떠든 건가?’


머릿속이 순식간에 복잡해졌다.

그리고, 자신의 계획에 차질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우진은 그런 선우의 동요를 읽은 듯,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겁니다.”

“일하는 중인 거 안 보입니까?”

“기다리겠습니다.”


우진은 품에서 자신의 명함을 꺼내 선우에게 내밀었다.


“일 끝나고 꼭 와주십시오. 저기 사거리에 있는 카페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렇게 말한 우진은 더 말하지 않고 돌아서서 조용히 멀어져 갔다.

선우는 찬 바람이 불어오는 광장 한편에서, 손에 들린 작은 명함과 우진이 사라진 방향을 번갈아 보았다.

‘차우진 신부…….’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가야 할까, 무시해야 할까.


-


잠시 후, 약속한 카페 안.

우진은 창가 자리에 앉아 핸드폰 화면을 거듭 확인했다.

하나가 보낸 문자 메시지.


[신부님! 김민수 그 사람이 지선우 씨였어요! 지선우 씨 사진으로 얼굴 확인했습니다.]


그때, 전화가 걸려 왔다.

하나였다.


“신부님! 문자 보셨어요?”

“아, 하나 씨. 네… 봤습니다.”


우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조금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제 목표가 명확해졌어요! 조사할 것도 많아졌고요. 만약에 수호타워에서 그 사람 만나면…….”


그때 우진이 하나의 말을 잘랐다.


“안 그래도… 만날 예정입니다.”

“네?! 그게 무슨 소리예요? 언제 만나는데요?”

“곧이요. 방금 제가 그 사람한테 얘기 좀 하자고, 카페에서 기다리겠다고 하고 온 참이에요. 물론… 올지 안 올지 확실하진 않습니다. 저는 올 거라고 믿지만요……”

“아니, 이렇게 준비도 없이 갑자기 보자고 했어요?”


하나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묻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요.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쩌실 생각인데요? 설마…….”

“네. 솔직하게 물어보려고 합니다.”

“뭘요?”

“혹시 수호그룹에 대한 복수심이 있는지 말이에요.”

“하… 그런데요 신부님. 만약 그럴 계획이 있다 치더라도 그런 사람이 그걸 솔직하게 말할까요?”


하나의 목소리에 답답함이 묻어났다.


“확신할 수는 없죠. 그래도 직접 묻고…….”

“신부님, 자칫하면 경계심만 잔뜩 높여서 아예 접근조차 못 하게 될 수 있어요. 물론 지금도 썩 친근한 상태는 아니지만, 일단 인터뷰 요청을 하면서 약속만 잡아 주실 수 있어요? 제발요.”

“인터뷰요?”

“네. 『주간시사』에서 대대적으로 수호그룹 산재 관련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하면서, 주환 씨와 선우 씨의 억울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고 싶어 하는 기자가 있다고 말해주세요. 저희가 돕겠다고요.”


우진은 잠시 망설였다.

그의 마음은 여전히 급했다.

당장이라도 선우를 만나 그의 마음을 묻고, 만약 안 좋은 마음을 품고 있다면 그 마음을 돌리고 싶었다.

하지만 하나의 목소리에는 그럴 수 없을 거라는 냉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될까요? 시간이 없는데… 그렇게 되면 수호타워 붕괴는…….”


우진의 초조한 목소리를, 하나가 단호하게 끊었다.


“신부님!”


우진은 순간 멈칫했다.


“네… 하나 씨.”

“제가 말씀드렸죠. 저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엔딩을 바꾼 적이 없었다고요.”

“네… 그랬었죠.”

“전 언제나 무턱대고 사고를 막으려고만 했어요. 그리고 그 결과는……. 그런데 이번엔 정말로 그렇게 되면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러니까 신중하게 움직이고 싶어요. 이번만큼은 더더욱 말이에요. 아이들 때문에 걱정되고 초조하신 거 너무 잘 알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도 우리… 조금만 더 신중하게 다가가요. 지선우 씨가 정말 제 비전에 나온 사고를 일으키는 당사자인지 아닌지도 아직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잖아요.”


하나의 진심 어린 설득에 우진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그녀의 말이 맞았다.

마음만 앞서서는 안 된다.

과거 하나가 겪었던 실패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


“……알겠습니다. 하나 씨 말대로 할게요.”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일단 그분 만나시면 무조건 돕겠다고 말씀해주세요. 꼭… 꼭 인터뷰 약속 잡아주시고요.”


통화가 끝났다.

우진은 잠시 눈을 감았다.

충동적으로 선우에게 달려갔던 자신의 행동이 조금 후회되었다.

하나의 말처럼,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다가가야 했다.

그때였다.


딸랑!


카페 문이 열리는 소리.

우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은… 지선우였다.

작업복 차림 그대로였다.

선우는 우진을 찾는 듯 두리번거렸다.

우진은 그런 선우의 모습을 보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30화 끝.


31화부터는 브런치북 <이번엔 엔딩을 고칠 수 있을까 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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