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랑!
맑은 방울 소리와 함께 카페 문이 열리고, 작업복 차림의 선우가 들어섰다.
그는 잠시 두리번거리다 창가 자리에 앉아 있다가 자신을 보고 일어서는 우진을 발견했다.
선우는 천천히, 절뚝이는 다리로 우진에게 다가갔다.
차가운 얼굴로, 경계심을 잔뜩 뿜어내며.
“당신 뭐야?”
첫마디부터 가시가 돋쳐 있었다.
우진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답했다.
“와주셨군요. 감사합니다. 일단 앉으시죠.”
선우는 우진을 노려보며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내 이름… 어떻게 안 겁니까?”
그 질문에 우진은 당황하지 않고, 하나와의 통화를 떠올리며 준비된 답변을 했다.
“저와 함께 일하는 기자분이 알려주셨습니다. 지선우 씨에 대해서요.”
“기자……?”
선우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기자와 신부가 왜 나에 대해서……?’
그는 목소리를 낮춰 되물었다.
“당신… 박 반장하고 아는 사이야?”
“네?”
우진에겐 생소한 이름이었다.
‘박 반장이 누구지……?’
그때 선우가 쏘아붙였다.
“당신 아까 박기영 그 인간이랑 나랑 있던 거 다 봤잖아.”
그제서야 우진은 고해성사를 한 그 사람의 이름이 박기영이라는 것을 알앗다.
‘아, 그분 이름이 박기영이었구나……!’
우진은 딱 잘라 말했다.
“아… 단언컨대 그분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아닙니다. ‘저희’는 수호그룹 관련 일을 조사하고 있어요. 그러다 박주환 군의 어머니를 만났고… 선우 씨 얘기를 들었어요.”
오늘 또 다른 사람의 입에서 주환의 이름이 나왔다.
선우는 그 사실이 너무 화가 났다.
“그래서… 내가 지선우라는 것은 어떻게 알았는데?”
“그건… 방금 말씀드렸듯 저는 어떤 기자분을 돕고 있는데, 그 기자분이 알려주셨어요.”
“…….”
선우는 우진과 함께 있던 하나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사람인가…….’
그러나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자신이 지선우라는 것을 알고 있단 말인가.
선우는 현재 ‘김민수’라는 가명으로 행사 기획 회사에 취업해 수호타워로 파견되어 있는 상태였던지라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현재로선 자신의 본명을 아는 사람은 분명 없어야 했다.
오늘 만난 박기영을 제외하면.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혼란스러우신 거 이해합니다. 다 설명드릴게요.”
우진이 설명을 시작했다.
“저는 지금 『주간시사』라는 언론사와 함께, 수호그룹 계열사들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산업재해 문제들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선우는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우진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의 눈빛에는 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
우진은 말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3년 전 수호건설 현장에서 발생한 안타까운 추락 사고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돌아가신 박주환 군의 어머니와 만나게 된 겁니다.”
선우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우진은 담담하게 말을 계속했다.
“아실지 모르지만, 비단 선우 씨 사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현장에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고 있어요. 그런데 언제나 수호그룹 측에서는 책임을 회피하며 사건을 조용히 덮고 있는 모양이더라고요.”
우진은 선우의 표정을 살피며 잠시 숨을 골랐다.
그러나 선우의 표정에서는 감정을 읽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간시사』에서 현재 수호그룹의 이러한 행태를 고발하는 특집 기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선우 씨…….”
우진은 침을 한번 삼키고, 진심을 담아 선우의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선우 씨와, 돌아가신 박주환 씨의 억울함을 세상에 알리고 싶습니다. 더 이상 수호그룹이 이런 비극을 반복하지 못하도록 막고 싶습니다. 혹시 『주간시사』와의 인터뷰에 응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희가… 선우 씨를 돕겠습니다.”
그런데 선우의 반응은 싸늘하다 못해 얼음장 같았다.
“하!”
우진의 진심 어린 제안에도 불구하고, 그는 코웃음을 치며 우진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빛은 냉소와 불신으로 가득했다.
“돕는다고? 당신들이?”
“선우 씨, 저희는…….”
선우가 우진의 말을 잘랐다.
“3년 전에는… 어디서 뭘 하다가 이제 와서?”
“…….”
“그리고 뭐 특집기사? 그런 종이 쪼가리 몇 장 뿌려진다고 뭐가 바뀌는데?”
선우의 목소리가 점점 날카로워졌다.
우진은 그런 선우에게서 깊은 불신과 절망을 느꼈다.
그렇지만 어둠에 빠져 있는 이에게 손을 내밀지 않을 수 없었다.
“선우 씨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주환 군 어머님께 지난 3년간 이 사건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들었어요. 선우 씨가 어떤 고통을 받으셨는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선우 씨의 불신은 당연합니다.”
우진은 다시 한번 힘 있는 어조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다를 수도 있습니다. 『주간시사』는 꽤나 독자들에게 신뢰를 받고 있는 규모가 있는 주간지예요. 그런 회사에서 지금 회사의 명운을 걸고 이 일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저도 힘 닿는 데까지 도울 거고요. 천주교에는 선우 씨 같이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돕는 단체가 있습니다. 선우 씨가 도와주신다면 분명 이번엔 바뀔 수…….”
“신부라서 그런가, 순진하기 그지없군.”
“네……?”
선우가 도발적으로 말했다.
“3년 전에도 2년 전에도 당신 같은 사람이 찾아왔어. 『주간시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파급력 있는 매체에서 찾아왔었고, 당신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유력한 청년 정치인도 찾아왔었지. 기자는 대단한 특종이라도 잡은 것처럼 달려들어 내 인터뷰를 따갔고, 그 정치인은 내 손을 잡고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억울함을 풀어주겠다며 수호건설 본사 앞에서 1인 시위까지 했었어. 그런데 그 결과가 뭐였는지 알아?”
“…….”
“그 신문에서는 산재 피해를 입은 노동자들을 오직 보상금 몇 푼 더 뜯어내려고 경제를 망치는 시정잡배 사기꾼으로 그린 기사가 나왔고, 그 정치인은 어느 날 공천받고 국회 들어가더니 연락이 안 되더군. 오히려 사무실에 찾아간 나를 내동댕이쳤어.”
선우의 말을 듣고, 우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한심하긴… 이런다고 수호가 바뀔까, 사람들이 바뀔까, 세상이 바뀔까?”
“선우 씨…….”
“이런다고 해도 당신들은 아무것도 바꿀 수 없어.”
선우의 마음은 이미 굳게 닫혀 있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마지막 경고야. 나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갖지 마.”
그는 우진을 내려다보며 마지막 말을 뱉었다.
우진이 다급하게 그를 불렀다.
“잠깐만요, 선우 씨!”
선우가 멈칫하며 돌아보았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우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결국 참지 못하고 가장 직접적이고 위험한 질문을 던졌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우진은 숨을 한번 크게 들이쉬었다.
“혹시… 수호그룹에 복수심 같은 것을 품고 계신 건 아니죠?”
순간, 선우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이전의 냉소나 분노는 온데간데없고, 차갑고 단단하게 굳어버린 얼굴로 우진의 얼굴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31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