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화. 선전포고

by 온새결

둘 사이에 정적이 흘렀다.

우진의 마지막 질문 때문이었다.

선우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그저 우진의 얼굴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우진은 그런 선우를 보며 조용히 심호흡을 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나와의 약속을 깨고 충동적으로 물어버린 것에 순간 후회가 몰려왔다.

아이들에 대한 걱정 때문에 결국 실수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런 우진에게 선우가 물었다.

우진은 제대로 된 답변을 바로 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다.


“저는 그냥… 선우 씨가 혹시라도……”

“혹시 뭐.”


선우가 칼같이 말을 잘랐다.


“…….”


그런데 우진이 그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신은 그냥 돌아가서……”


선우는 카페 문을 열고 나가면서, 그런 우진에게 마지막 말을 툭 던졌다.


“기도나 하고 있어.”


딸랑.


문이 닫히고 선우의 모습이 사라졌다.

어쩐지 불길한 예감이 우진의 온몸을 휘감았다.


-


다음 날 오전, 『주간시사』 편집국.

하나는 책상에 앉아 수화기를 귀에 댄 채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통화 연결음만 지루하게 반복될 뿐이었다.


“안 받아?”


옆자리에서 태수가 모니터를 보며 물었다.


“네. 이상하네요. 홍보팀이고 공장 대표 번호고, 담당자 개인 번호까지 다 돌려봤는데 아무도 안 받아요. 직원이 없을 시간이 아닌데…….”


어제 회사로 돌아온 후, 하나는 곧바로 강준호 군 사건 기사 마무리 작업에 들어갔다.

기사를 발행하기 전, 마지막으로 수호테크 측의 공식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하기 위해 어제 저녁부터 계속 연락을 시도했지만 통 연락이 닿지를 않았다.


“메일은?”

“여러 차례 보냈는데 읽지도 않는 것 같아요. 답변 없고요.”

“그럼 뭐… 의도적으로 씹는 거네.”


태수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말했다.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요…….”


태수는 잠시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하나에게 말했다.


“그럼 한 번 더 방문해. 가서 직접 공장장 면담 요청하고, 안 만나주면 정문에라도 대고 외쳐. 강준호 군 사건 관련해서 입장 없으면 이대로 기사 내보낸다고.”

“하… 네, 알겠습니다.”


하나는 노트북과 카메라를 가방에 넣었다.

취재 수첩도 잊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태수에게 물었다.


“선배 쪽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어요? 부실시공 건.”

“아… 나?”


태수가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정보공개청구는 일단 신청해놨고… 수호건설이 지은 오피스텔이랑 아파트 입주민 카페 잠입 취재 시도 중인데, 쉽지 않아. 보안들이 꽤나 철저하네.”

“역시… 그래서요?”

“여러 방면으로 방법을 찾고 있지. 일단 우리 회사 사람들부터 전부 어디 사는지부터 조사하고 있어. 수호건설 아파트 사는 사람 있으면 좀 접근해 보려고.”


하나가 끄덕였다.

그러더니 태수에게 말했다.


“혹시 뭐 나오면 저한테도 꼭 알려주셔야 해요?”

“어쭈, 짜식이 아주 지가 상사야?”


태수가 장난스럽게 받아쳤다.


“에이, 뭘 또 그렇게… 그러면, 저 갔다 옵니다!”


하나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씩씩하게 사무실을 나섰다.


“저 자식……. 조심해, 인마!”


하나의 등에 대고 태수가 소리쳤다.


-


오후 2시, 수호테크 공장 앞.

예상대로였다.

정문 경비는 더욱 삼엄해져 있었다.

하나가 『주간시사』 기자임을을 밝히자마자, 경비원은 거칠게 출입을 막았다.


“공장장님, 오늘 외부 일정 있으셔서 미팅 불가합니다. 돌아가 주십시오.”

“아니 정말 잠깐이면 돼요! 5분만, 아니 1분이면 된다니까요!”

“가세요, 얼른!”


경비원은 하나를 거칠게 밀치고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정문 닫고 경비실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하나는 어이없다는 듯 굳게 닫힌 정문을 노려봤다.


‘피하는 게 확실하군. 이대로 가야 하나…….’


그렇게 하나는 공장에서 잠시 떨어져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지났을까.

공장 안쪽에서 검은색 고급 세단 한 대가 부드럽게 미끄러져 나왔다.

하나는 직감했다.

황만수 공장장의 차일 것이다.

그녀는 득달같이 차 앞으로 달려 나갔다.


끼익!


차가 급정거했다.

운전기사가 창문을 내리고 하나에게 쏘아붙였다.


“뭐야!”


하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뒷좌석 창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공장장님! 황만수 공장장님 맞으시죠! 저 아시죠? 『주간시사』 이하나 기자입니다! 강준호 씨 사망 사고 관련해서 공식 입장 듣고 싶습니다! 말씀해주시죠! 혹시 고의적으로 기계 안전 센서 꺼두신 게 사실입니까? 공장장님!”


그런데 차 안은 조용했고, 짙게 선팅된 창문 너머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차가 그런 하나를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몇 미터 가지 않고 차가 잠시 멈춰 섰다.


스르륵.


그러더니 뒷좌석 창문이 천천히 내려갔다.

하나는 얼른 다시 차로 뛰어갔다.

안에는 예상대로 황만수 공장장이 앉아 있었다.

그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있었다.


“이미 다 끝난 일인데,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요? 언제는 공단 사람들 인터뷰나 한다며?”


하나는 당황하지 않고 준비해 온 질문을 쏟아냈다.


“강준호 씨 사망 사고 관련해서 입장 분명히 밝혀주십시오, 공장장님! 안전 점검 일지 조작하신 거 맞죠? 3개월 전에도 같은 라인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 있었던 거 맞죠?”


황만수의 눈썹이 꿈틀했다.


“진짜 한번 해보겠다는 거요?”


하나는 그의 협박성 발언에도 굴하지 않고, 준비해 온 질문을 쉼 없이 던졌다.


“준호 씨 아버님께 사고 직후 8000만 원에 합의 제안하셨죠? 그게 정당한 보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 이 사람이 진짜……”


황만수의 얼굴이 순간 짜증으로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는 이내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고 차분하게 말했다.


“이하나 기자님, 잘 들으세요. 해당 사건은 이미 종결된 사건으로, 회사 내부 조사 결과 작업자 본인의 부주의로 인한 안타까운 사고인 것으로 결론이 났습니다. 유족이신 아버님과 약간의 오해가 있어 지금 일이 조금 꼬인 것뿐이에요. 그 부분은 저희가 원만하게 소통해서 잘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 없습니다. 김 기사!”


스르륵.


창문이 다시 올라갔다.

차는 부드럽게 앞으로 나아갔다.

하나는 멀어지는 차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원만하게 소통? 잘 마무리?’


황만수의 뻔뻔한 답변에 헛웃음이 나왔다.

하나는 다시 한번 굳게 닫힌 공장 정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취재 수첩을 꺼내 무언가를 빠르게 적기 시작했다.

그녀의 눈빛은 더욱 결연해져 있었다.



3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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