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시작

by 온새결

다음 날 오전, 수호타워 1층 로비.

우진은 여느 때처럼 상담소 운영 준비로 분주했다.

우진이 테이블을 닦고, 따뜻한 차를 주전자에 채우던 중이었다.

어쩐 일로 홍보팀장 박지은이 그를 향해 걸어왔다.


“저기… 신부님…….”


그녀의 목소리는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 팀장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하하.”

“아, 네… 안녕하세요…….”


우진은 평소처럼 밝게 인사했다.

그런데 지은의 표정은 너무 어두웠다.


“어…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어요?”


우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은은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그에게 내밀었다.


“그게, 다름이 아니라요. 신부님 혹시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이 글 보셨어요?”


우진은 태블릿 화면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화면에 뜬 내용을 확인했다.

순간, 모골이 송연해졌다.

이용자 수가 수백만 명에 달하는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지은이 보여준 글은 그곳에 올라온 자신을 저격하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우진이 상담소에 앉아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함께 올라와 있었다.


-


제목: 지금 수호타워 1층 로비 점령당한 거 앎?

진영동 주민이거나 수호타워 근처 직장인이면 다들 알 거임.

수호타워야 우리 동네 랜드마크고, 점심 먹고 커피 한잔하러 다들 들르는 곳이잖아.

근데 언젠부턴가 1층 로비 제일 좋은 자리에 웬 신부 하나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음.

상담소인가 뭔가 차려놓고 거의 죽치고 앉아 있는데,

아니, 수호타워가 사유지이긴 해도, 사실상 광장처럼 모든 사람이 이용하는 공공장소 아님?

근데 저렇게 특정 종교가 대놓고 자리 잡고 상담 어쩌고 한다고?

이게 말이 됨?

결국 저것도 다 전도고, 포교 활동이잖아.

힘든 직장인들 붙잡고 얘기 들어주는 척하다가

“성당 한번 나와보세요”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이딴 토 나오는 소리 하려는 거 아님?

만약 당장 내일부터 웬 스님이 목탁 두드리면서 불경 외고,

목사님이 통성기도 한다고 스피커 틀면 어쩔 거?

이상한 사이비들이 무료로 상담해 준다고 부스 차리겠다 하면?

그것도 다 허락해 줄 거?

내가 알기로 천주교가 그렇게 깨끗한 집단도 아닌데.

진짜 더러운 범죄 사건 수십 년씩 덮어주고,

중세엔 마녀사냥이다 뭐다 하면서 사람들 죽이고 다녔으면서

이제 와서 사랑 타령, 위로 타령 진짜 토 나옴.

저 신부 앉아 있는 것도 볼 때마다 솔직히 좀 역겨운데

사람들 얘기 들어주면서 무슨 성인군자인 척,

X나 그냥 위선 아님?

사회생활은 해봤나 모르겠네.

공공장소에서 저런 특정 종교 활동 못 하게 다 같이 민원 넣어야 하는 거 아니냐?


-


댓글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하나같이 싸잡아 화면 속 우진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

우진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지은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이 글… 어제저녁에 올라오자마자 댓글 수천 개 달리면서 엄청 퍼지고 있어요. 저희 수호 쪽으로 항의 민원도 빗발치고 있고요…….”

“하…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우진은 진심으로 미안해했다.


“아뇨… 신부님이 죄송할 건 없죠. 저야 신부님 진심 아니까……. 그동안 상담소 반응 정말 좋았고, 신부님께서 성당 나와보라는 식의 말 한마디도 안 하신 거 잘 알아요.”


지은의 배려 깊은 말에도 우진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

“그래도 신부님… 더 이상 힘들 것 같습니다. 여론이 너무 안 좋아서… 정말 죄송한데, 아무래도 오늘까지만…….”


그런데 지은이 말을 끝맺기 전에, 우진이 수심 깊은 얼굴로 그녀의 말을 잘랐다.


“아니요… 지금 바로 접겠습니다. 그동안 배려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했습니다.”

“……신부님.”


지은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우진은 말없이 ‘쉼표 상담소’ 팻말을 뒤집어엎었다.


-


같은 시각, 『주간시사』 편집국장실.

하나가 자신이 밤새워 준비한 기사를 출력해 오 국장에게 건넸다.


“강준호 군 아버님께는 연락드렸어?”


오 국장이 서류를 넘기며 물었다. 그의 목소리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네. 어제 통화했습니다. 이번 주부터 기사 나갈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오 국장은 고개를 끄덕이곤 골똘히 하나가 쓴 기사를 검토했다.

“하…….”


그러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나가 작성한 수호그룹 고발 첫 번째 기사.

이것으로 본격적인,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될 게 분명했다.


“됐어. 이대로 내보내.”

“알겠습니다.”


하나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대답을 하고 꾸벅 인사를 했다.

그리고 국장실을 빠져나왔다.

문이 닫히고, 오 국장은 잠시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그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했다.


-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하나는 모니터에 띄워진 최종 원고를 다시 한번 읽어 내려갔다.

최악의 비전을 보게 된 후, 의도치 않게 알게 된 수호그룹 자회사들에서의 사건 사고들.

그리고 그룹 차원의 은폐 정황.

단지 수호타워의 붕괴 사고를 막고 싶었을 뿐인데, 일은 또 하나가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이제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까지 와버렸다.

하나는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인지 곰곰이 지난 몇 주를 곱씹었다.

그리고 앞으로 닥칠 일들을 떠올렸다.


‘취재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광고주들이 다 떠나갔어. 이 기사가 나가면 수호그룹 측으로부터 얼마나 센 압박이 들어올까…….’


회사는 또 얼마나 흔들릴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은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하게 될까.

하나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마우스 커서는 ‘송고’ 버튼에 가 있었다.

클릭 한 번이면, 이 기사는 편집부서의 기본적인 편집을 거친 뒤 이번 호에 대문짝만하게 실릴 것이며, 동시에 온라인상에도 등록될 것이다.

손이 떨렸다.

하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켰다.

그리고…


딸깍.



3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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