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
어찌어찌 그가 외국인이라 그런지 우리는 친구로 남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우리는 종종 연락을 했지만 결국 완전히 헤어지게 되었다.
“아무도 자기가 곁에 두고 싶은 남자에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을 거야”
그는 그래도 항상 이유는 알려주었다. 나를 그저 조용히 떠나가고 멀어진 사람들과는 달랐다. 내 장문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반응하고 저렇게 내 문제도 알려주었다.
그래 내 조울증의 화법이 너희들을 상처 주었구나. ’ 솔직함이 중요하다고 생각해 내가 하고싶은 말을 필터없이 이야기하고 네가 틀렸다는 걸 굳이 알려주는 자존심 상하게 하는 화법. 그래야 내 속이 후련해지거든.말이란 게 그렇게 중요했구나. 알고는 있었어. 단지 이렇게까지 나를 각성시키진 못했거든.
근데 난 또 내가 너에게 상처라는 영향을 준거에 희열을 느껴. 내가 얼마나 타인의 감정을 무시하고 통제하려고 했는지. 그래야만 나의 위대한 세계가 굳건하니까
나는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믿었고 타인에게도 진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동안 몰랐다. 모두 점점 그저 나를 멀리했기에. 알고는 있었다. 그저 이렇게 직접 들어본 적이 없어서 모른 채 한 것일 수도. 그들은 나에게 상처주기 싫어서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 수도.
그는 나의 연락을 모두 차단했다. 그는 나의 조울증으로 상처받고 나의 일관되지 않은 모습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을 테니까. 나는 그 앞에서는 왠지 모르게 자아가 거대해졌다. 나는 그에게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욕망대로 지속적으로 행동했다. 그가 날 좋아한다는 확신이 있었기에. 내 멋대로 해도 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는 도저히 나라는 사람의 혼란을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통제된 세계에 산 사람이니까 더더욱.
그와 만남과 헤어짐은 온전히 나의 조울증을 인정하는데 기여했다. 그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와의 짧은 관계는 15년 이상 나를 괴롭혀온 양극성 장애를 비로소 돌아보게 만들었고, 2년간 애써 무시했던 조울증의 호전을 알리는 신호탄이 되었다. 물론 나는 치료되려고 노력은 했다. 그러나 그냥 조울증이란 타이틀을 또한 즐겼던 거 같다.
나는 항상 작가가 되고 싶었다. 근데 글을 쓰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작가의 자유로운 삶을 동경했는지도 모르겠다. 물론 동경으로 꿈을 꾸고 이루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는 내 이야기를 쓰는 게 자존심이 상했다. 나를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가식을 떨거나 나를 포장하진 않았다. 단지 내 이야기를 풀어내기 싶지도 그럴 의지도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성공하고 내가 원하는 삶에 이르러서, ‘그때 그 어려움이 저를 성장시켰어요.’ 그렇게 회고를 하는 걸 원했기 때문이다. 마치 유명인의 회고록이 담긴 다큐멘터리 영화처럼.
하지만 그의 만남은 결국 내 조울증을 인정하게 만들고 내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제야 나는 내 이야기를 쓸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 이야기는 영웅의 일대기도 위인전도 영화도 아니었다. 그냥 나의 삶 그 자체였다. 모두의 삶은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자기들만의 이야기가 있다는 것을 다는 비로소 받아들였다. 나는 글을 써야만 했고, 그것이 나의 치유의 길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그와의 이별로 무너지거나 자존심에 타격을 입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그와의 연애를 실패했을까 그런 생각도 되풀이해서 하지 않는다. 예전이었다면 나는 이미 우울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대신 여전히 그를 생각한다. 그라면 이렇게 했을 거라고. 그는 자신의 상처 입은 감정을 돌보고 결국 훌훌 털고 일어날 거라고. 나 같은 건 후련히 잊고 행복할 거란 걸. 나 역시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나도 그래야 한다고 그런 생각이 든다.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하나를 실패했다고 모든 걸 포기했던 거 같은 그런 과거의 나는 없다.
지금, 솔직히, 나는 내일이라도 다시 방콕으로 가고 싶다. 여전히 그를 우연히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대와 미련, 그리고 그와 다시 잘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남아있다.
조울증은 여전히 나를 위한 희망차고 아름다운 영화 한 편을 뚝딱 만들어내곤 한다. 이 이별은 그저 내가 작가가 되기 위한 하나의 우주의 거대한 가르침이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나는 더 살라고 보내준 선물이 아니었을까. 그와 재회하면 뭔가 또 다른 인생의 챕터가 열릴 것만 같은 그런 느낌.
하지만 이제는 깨닫는 것이 있다. 방콕에서의 미완의 여행을 완성하는 것은 그가 아닌, 오직 나 자신이라는 것을. 다시 방콕에 간다면, 그를 찾는 대신, 이루지 못했던 계획들을 좇기보다는, 해야 할 것, 유명한 곳을 가는 대신 그곳에서 진정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행복한 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그것이야말로 나만의 완결의 여행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