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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롱 Aug 10. 2023

너와 함께 한 시간 속에서

어쩌다 난생처음, 홈스쿨링!

 Y의 실종 스캔들 이후, 그날밤부터 침대에서 몸을 일으킬 수가 없다.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온몸의 통증세포가 내 몸뚱이를 장악해 버린 듯 어찌해 볼 도리가 없어 그냥 이대로 잠들 수 있기를 바라보며 고통에 신음하다가 뭔가가 번뜩이며 든 생각에 소스라치듯 놀라 번쩍 눈을 뜬다.

'지금 내가 아프면 안 돼! 어떻게 해서든 낫자! 나아야 해!!'

결의에 찬 의지를 다 끌어내 몸뚱이를 질질 끌고 병원에 가서 하루최대 복용 치를 초과해서 진통제를 꾸역꾸역 몸속으로 들이밀었다.

그런 와중에도 Y의 방문 앞을 늘 예의주시하며 슬며시 동태를 살피는 모양새가 마치 바닥에 배가 닿을 듯 말 듯 소리 없이 조심조심 경계심 가득한 고양이 같아 스스로도 우습기만 하다.

그런데, 아주 오래전부터 들어봄직한, 귀에 익숙한 멜로디의 한 노래가 계속해서 무한반복되어 흘러나온다. 어쩌면 지금 Y의 심정을 그린 노래일리라. 마치 애상곡처럼 말이다.




해 질 무렵 날 끌고 간 발걸음

눈 떠보니 잊은 줄 알았던 곳에 아직도 너에 대한 미움이 남아 있는지

이젠 자유롭고 싶어

시간은 해결해 주리라 난 믿었지

그것조차 어리석었을까

이젠 흘러가는 대로 날 맡길래

너와 상관없잖니

처음부터 너란 존재는 내겐 없었어

니가 내게 했듯이

기억해

내가 아파했던 만큼 언젠가 너도 나 아닌 누구에게 이런 아픔 겪을 테니

미안해

이렇게밖에 할 수 없잖니 정말 이럴 수밖에

너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길

너를 사랑할 수 없고

너를 미워해야 하는 날 위해


https://youtu.be/L9jftIhRB-Y




슬프거나 아프거나 당장 주체하기 힘든 감정 속에 빠지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점점 늪으로 빠져들어가 나중에는 빠져나오기 힘들었던 몇 차례의 경험이 있기에 Y를 이대로 둘 수 없다.

당장 학교에 갈 수 없다는 Y의 마음은 충분히 알겠고 홈스쿨링?!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분야이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고 했으니 한번 해보자꾸나!

窮則通(궁즉통)!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녹색창에 홈스쿨링을 검색해보기도 하고 독서모임 단톡방에 정중히 홈스쿨링에 대한 고견을 묻기도 하고 그리고 평소 속내를 스스럼없이 주고받는 선배맘 찬스를 구하기도 하며 2주간의 계획을 성글게나마 짜보았다.

일단 오전에는 같이 학교에 가서 위클래스 상담선생님과 면담을 진행해 보기로 했다. 작년에 또래상담사로 활동하였던 Y였기에 부모님껜 털어놓기 어려운 속내를 상담선생님껜 꺼내놓을지 모른다는 한가닥 희망이라도 놓칠 수 없어서였다. 이전에 그랬듯 Y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화해와 회복인 건지 아님 도망치듯 전학 가는 것인지 사실 제대로 판단이 서질 않아서다. 며칠 아니 몇 주간의 시간이라도 학교에 가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도록 도와주면 마음의 준비를 차곡차곡할지도 모르고 또 어떤 날은 한낮의 고양이처럼 웅크리듯 에너지를 축적하다 보면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를 되찾을지도 모른다는 바람을 간절히 붙잡고 있었던 거다.

면담결과는 예상대로였다. Y는 다시 교실로 돌아가 D, J를 마주 할 자신도 없고 마지막으로 그들이 원하는 대로 타 학교로 전학을 가겠다는 거다. 담임선생님께는 미리 준비한 교외체험학습신청서를 제출하고 숨을 크게 들이켜며 스스로 마음을 다잡아 본다.



 이제 시작해 볼까?

제 방에 있으면 물 먹은 솜처럼 축 처진 채 몇 시간이고 있을 것 같은 Y를 끌다시피 데리고 나와 무조건 자전거를 타고 달려보자고 했다.

지난 실종신고를 했던 날,  Y는 이 지역에 7년 차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마을까지 혼자서 내달렸다고 했다. 밤새 타들어가는 자식의 속마음은 알아주려고도 하지 않고 무조건 학교 가라고, 늦겠다고  등 떠민 엄마의 말이, 엄마의 손길이 얼마나 야속했을까, 오죽했으면 학교 반대편 방향으로 몇 시간을 내달려서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헤매다 겨우 집으로 돌아왔을까,  그날의 기억을 덮기 위해 오늘은 엄마와 함께 그 길을 달리기로 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무 말 없이 달리다 오르막길로 힘들어하면 중간에 멈춰 서서 시원한 물로 목을 축이고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로 가벼운 농담을 던지며 그렇게 두 시간을 더 달리다 보니 제법 멋진 여름날의 풍경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파란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하늘과 솜사탕을 든 아이 같기도 하고 몽글몽글 먹음직스러운 우유빵 같기도 한 제각각 형상을 그린 듯한 구름, 유혹적인 빛깔의 꽃과 녹음이 선명한 나무와 풀까지.. 내리막길을 달릴 때 피부와 와닿는 바람은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렇게 좋은 데 난 왜 이적지 Y와 단 한 번도 이런 시간을 가져볼 생각도 못한 것일까?

아이를 위해 나선 길이라고 생각했지만 사력을 다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 동안 거친 숨을 통해 내 몸속에 고인 쓰디쓴 맛의 항생제와 진통제가 혈액 안으로 빠르게 흡수되는 듯 어느새 통증도 잦아지고 있었다.

그렇게 아침이 되면 동네 아이들은 학교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가지만,  Y는 엄마와 함께 얼린 생수병 하나 챙겨 나와 **면으로 **리로 보물을 찾아 떠나듯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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