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딱 한 번만 선생님과 반 친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자고 권했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안다.
새로운 시작을 하려면 끝맺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Y에게는 공황발작을 일으킬 만큼 받아들일 수 없는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고통과 아무리 애써도 닿지 않는 마음이 서글퍼 몇 날밤을 눈물로 베갯잇을 적셔야 하는 힘듦도 있었지만 그 과거의 시간에 대한 마침표를 찍는 의식이라고 생각했으면 했다.
다만 결코 혼자가 아니라고 했다. 학교 교실 문 앞까지 같이 가주기로 한 것이다.
Y의 담임선생님께도 미리 상황에 대한 설명을 해둔 상태였기에 순적하게 이 마침표를 찍을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그런데!!!
Y의 교실 복도에 부착해 둔 우유팩 분리수거방법을 알리는 포스터에 모델로 나온 Y의 얼굴이 훼손된 것이다. 불과 한 달 전에 봤을 때만 해도 멀쩡했는데 다시 보아도 누군가의 의도적인 훼손임을 바로 알 수 있었다.
'아니!! 누가 도대체 이렇게까지!!'
방망이질대는 심장 탓에 차분하게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떨리는 손의 움직임이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피가 거꾸로 솟는다는 말이 이런 거구나 경험하고 있다. 크게 숨을 고른 후 포스터 사진을 증거로 찍어두고 담임 선생님께 누구의 짓인지 또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나쁜 범죄인지 지도해 주십사 당부하는 문자를 보내두었다. 그리고 제발 Y가 이것을 못 봤다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바람만 붙든 채, 얼른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채워졌다.
오늘은 Y가 전학 가는 날이라는 것을, 새로운 출발선 앞에 서는 시간임을 잊어선 안되니까!
마지막 인사를 마친 Y의 표정을 전혀 읽을 수가 없지만 이런저런 말을 걸 여유가 내겐 없다. 재빨리 손목을 이끌며 급히 학교를 빠져나가 전학 갈 학교로 Y를 데려다 놓았다.
교무실에서 전학수속만 마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가도 되지만, 그날 2교시부터 바로 수업에 참여하는 것으로 전학 절차를 서둘러 마무리했다.
홀로 나와서 남편에게도 Y의 포스터 얼굴이 훼손된 사실을 알렸다. 지금껏 큰 소리를 내지 않았던 남편이 이적지 이렇게 불같이 화내는 목소리를 들은 적이 또 있었나 싶을 만큼 단단히 분노하고 있었다.
내 대신 분노해 주는 남편이 든든하고 고마워서 눈물이 난다.
남편은 해당 학교 교장선생님께 이 일에 대한 시시비비를 가리겠다고 했지만, 우리의 분노는 그곳까지 닿을 수 없었다. 이제는 이전 학교라서 그런 걸까? 예상과 너무 달랐다.
이미 전학 간 Y를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할 이유도, 굳이 진심으로 위로해 줄 마음도 없는 듯하다.
심지어 Y의 얼굴을 훼손한 D, J는 담임선생님께 자기네들이 한 거라고 당당히 말하며 어떤 반성도 없어 보였다. 담임선생님의 중재로 진심으로 사과편지를 써오도록 하였으나, 오히려 Y와의 지난 관계에서 꼬투리 삼을 만한 빌미라도 찾아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는 것으로 사과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어쩌면 D, J는 서로의 관계를 더욱더 견고히 다지고 있는 듯 보였다.
사과편지의 내용까지 공유하면서..
Y 때문에 홧김에 그렇게 한 거다 Y가 왜 전학을 가는지 모르겠지만 전학 가고 나면 앞으로 안 볼 테니까 더 이상 Y 얘긴 안 하겠다 처음부터 Y랑 친하게 지내지 않았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차라리... 사과편지를 받지 말았어야 했다.
아니 분명 그건 사과편지가 아니었다. 처음부터 D, J에게 Y에 대한 미안함은 추호도 없었다.
그간 참아왔던 내 인내의 한계는 딱 여기까지다!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분노하는 시간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꿈속에서도 D, J를 향해 질주했다.
식음을 전폐하면서 스스로 무너뜨리는 분노의 칼은 먼저 내 몸에 생채기를 내면서 멈출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