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한 장면 같다는 것

by 시옷


평화롭고 화사하다. 매주 토요일, 오전 11시의 미술시간은 내가 가장 아껴서 음미하는 순간이다.


화방 앞으로 흐르는 하천의 물결의 하늘거림과 당장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햇살. 속살거리는 선생님의 조곤조곤한 말씨와 화방에서 은은하게 베어나오는 단내음. 사각거리며 빠르게 뭉툭해지는 연필의 질감, 흘러내리지 않게 꽉 동여맨 나의 앞치마. 수업이 끝나고 화방 앞 빵집에서 사먹는 3,200원의 소금빵과 역까지 걸어가면서 느끼는 생경한 풍경들. 이 모든 것이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이 모든 게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순간들이라 매번 다른 세계로 끌려가 여행을 하고 돌아온 것만 같이 느껴지곤 한다. 화방으로 들어가는 순간부터는 기존의 너와 내가 정의하던 '나'의 그 모든 것은 흩어지고, 새로운 나를 마주하게 된다. 쓱싹쓱싹 그림을 그린다. 정적을 두려워하는 내가 즐기는 온전한 나만의 고요이다. 그리고 어쩌다 종종 이 순간, 영화같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표현인가.

무언가를 뭉뚱그려서 칭송할 때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찬란한 표현이다.


그와의 술자리는 늘 즐거웠다.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생각해낼 필요없이 마음이 평온했다. 이토록 성숙하고 충만함을 느낀 대화를 한 게 얼마만인지,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그가 핸드폰을 확인한다. 시계는 9시 27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리고는 갑자기 제안했다. 9시 30분까지, 딱 3분만 아무 말 하지 않고 조용히 있어보자고 말이다.


뭐지?

처음에는 웃겼다. 그리고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3분이 참으로도 길더라. 그런데 조금 더 지나니 묘했다.

주변 소리가 이토록 크게 들린다는 사실이 조용히 있어보니 새삼 와닿았다.

초마다 절절하게 느껴지던 그 3분간의 시간 속 정적을 두려워할 필요없다고, 침묵이 말하는 듯 하였다.

일순간 영화같다고 느껴졌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그저 그 곳에 존재하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마치 찬란하던 화방의 내가 사랑하던 그 모든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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