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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바질 Jan 30. 2022

자영업을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것들

취업하기 전에 창업해보세요

  빵집을 차리기 전 회사를 다닌 적이 있었다. 1년이 조금 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는 유일한 회사 생활이기도 했다.

그때 내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는 것’이었다.

9시가 정식 출근 시간이었는데, 막내인 나는 암묵적으로 8시 30분에 출근해야 하는 룰 같은 게 있었다.

직급의 순서에 따라 출근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9시 전에 모든 팀원들이 출근을 마치면 맨 마지막에 부장님이 ‘음 모두 와있군..’하는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들어오시곤 했다.

(항상 출근하자마자 누군가를 방으로 호출하셨다. 선배들은 매일 아침 본인이 호출당할까 봐 긴장하곤 했었다. 막내인 내가 불리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퇴근은 급 순으로 한다.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회사가 많아져서 지금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라떼는그랬다.


  막내에서 사장으로 퀀텀 점프를 하면서, 가끔 일을 평균 ‘이상’으로 잘하거나 평균 ‘이하’로 못하는 친구들을 보며 내 회사 생활을 생각해보곤 했다.

그리고 한 2년쯤 됐을 때는 ‘아 내가 지금 회사에 취업하면 대표님이 아끼는 직원이 될 수 있겠다’라는 강한 확신을 가졌다. 그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 번째, 출근 시간보다 일찍 출근하는 건 ‘예열 시간’이 필요해서이기 때문이었다.

항상 30분 일찍 출근하는 직원이 있었다. 아르바이트는 시급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그 친구가 30분씩 일찍 오는 게 고맙기도 하면서 한 편으로는 부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친구는 일찍 오는 시간을 근무 시간에 포함시키지 말아 달라며, 본격 업무에 들어가기 전 ‘예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자기가 하는 일에 진심을 가져야지만 할 수 있는 말과 행동이었다. 그 친구에게는 아르바이트가 ‘그저’ 아르바이트인 게 아니라, 매일 자기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면서까지 ‘잘’하고 싶은 일이었다. 그리고 약 3년 간 수 십 명의 직원들을 보면서, 유독 다른 사람들보다 일찍 출근하는 직원들은 업무 퍼포먼스가 달랐다. 그리고 일을 대하는 태도도 달랐다. 우연히도 내가 가장 아끼고 믿을 수 있었던 직원들은 다 2-30분 일찍 출근을 했다.


  두 번째, 업무 공간에 있는 모든 것들,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거저 있는 건 없다.

빵집을 하다 보면 자잘하게 쓰게 되는 비품들이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게 페이퍼 타월.

샌드위치에 들어갈 재료들의 물기를 빼는 데에도 상당 양이 쓰이고, 튀김기의 기름을 제거하고 청소하는 데에는 어마 무시한 양이 쓰인다. 손 씻고 닦을 때도 필요하고, 그 외에도 자잘하게 물기를 닦을 때는 페이퍼 타월만 한 게 없다.

이렇게 얼마 안 하는 페이퍼 타월도 쓰다 보면 ‘아니 엊그제 주문한 것 같은데 또 주문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주 주문하는 비품 중의 하나가 된다.

돌이켜보면 이 ‘페이퍼 타월’ 같은 존재가 회사에서는 ‘A4 용지’인 것 같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패션 잡지를 만드는 곳이었기에, 시안을 위한 용도로든, 대행사의 협찬 리스트를 위한 용도로든, 마감 때 작성한 기사를 교정하기 위한 용도로든, 종이에 인쇄를 해서 볼 일이 많았다. 특히 대행사 협찬 리스트는 4-5p 화보를 촬영하는 데에 거의 200벌 가까이의 옷을 협찬하기 때문에, 대략 1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의 용지를 인쇄하는 일이 많았고 이는 나만 보는 게 아니라서 여유분으로 3-4개 정도는 더 뽑아놔야 했다. 그리고 이 리스트는 수정되는 일이 빈번했기에 여기에만 엄청나게 많은 용지가 쓰였다. 물론 회사라는 게 그런 것들을 일일이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쓰며 일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적어도 내가 회사에서 쓰고 있는 모든 비품들이 하늘에서 그냥 떨어진 게 아니라, 누군가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한다면 두세 개 쓰려던 것도 하나만 쓸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상사도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다.

내가 회사에 있을 때 어느 날 나의 직속 상사가 바뀌었다. 원래 상사분은 사실 나의 도움이 크게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시는 분이었어서, 배울 점이 많았지만 먼저 알려주시는 분은 아니었다. 그리고 바뀐 상사 분은 이 전 분보다 직급이 높으셨는데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저 자리에 올라갔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답답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어느 날은 ‘OO아, 이번에 내가 레트로 화보를 찍을 건데 괜찮은 시안 좀 찾아볼래?’라고 하셨다. 레트로라 하면 시대도 다양하고 스타일도 다양할 텐데, 어느 시대를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글쎄.. 한 7-80년대? 몰라 네가 보고 괜찮은 걸로 한 번 찾아봐줘’라는 식이였다. 본인이 찍으려는 화보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도 없이 ‘아무거나’ 찾으라고 하다니! 이 ‘모호한’ 업무 지시라니! 그래 놓고 내가 밤을 새워서 찾아가면 못마땅하다는 표정으로 ‘하암… 수고했어’라고 하셨다.

사장이 되어 업무 지시를 하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일들이 가끔 생기곤 했다. 내가 봤을 때 맛도 괜찮고 가격도 괜찮은 제품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손님들에게 눈길을 받지 못해서 이걸 어떻게 진열을 해야 할지 고민일 때가 있었다. 그걸 알아챈 직원이 ‘사장님 저거 어떻게 해야 잘 나갈까요?’라고 하길래 ‘글쎄요, OO 씨가 손재주가 좋으니까 어떻게 한 번 해봐요’라고 했다. (‘어떻게 한 번 해봐요’라니.. 몇 년 전 답답한 나의 상사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다니!) 그러자 직원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회의를 하더니 그 제품 주변에 눈에 띄는 홍보물을 직접 그려서 진열을 했고 반응은 즉각적으로 왔다. 매번 유통기한에 걸리던 제품이 이제 한 달에 한두 번 걸리는 정도가 되었다.

그렇다. 상사라고 해서 모든 일을 다 겪어본 것은 아니다. 이럴 때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직원이 있으면 그것보다 든든할 수가 없다. 당신이 상사가 됐을 때를 상상해보라.


  내가 말하는 것들을 관통하는 핵심은 ‘내가 이 회사의 사장이라면’의 마인드이다. 물론 정해진 월급을 받으면서 오너쉽을 갖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것 없이 일을 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대한 피로와 회의만 늘어날 수 있다. 마틴 셀리그만이라는 심리학자는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몰입’이라고 한다. 몰입은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을 하다 보면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는 상태를 얘기하는데, 하루의 대부분을 일하는 데에 시간을 쓰는 우리가 몰입을 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오너쉽’을 갖고 일하는 것이지 않을까. 이왕 하는 일, 즐겁게 몰입하면서 해보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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