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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븟 Jul 25. 2021

해피투게더

채널이 지나치게 많다. 티브이를 보다 늘 그렇게 말해버린다. 숱하게 많은 채널 중 볼 게 없는 기분이기도 하다. 그래도 채널을 넘기는 일이 요긴할 때가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그렇다.







그날도 자정이 훌쩍 넘도록 도통 눈이 감기지 않아서 애먼 리모컨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래로 향한 화살표 표시를 누르고 또 눌렀다. 스포츠 화면에서 여행지로 우주로 총잡이가 등장하는 어느 사막으로 빠르게 넘겨가며 일종의 수면제 역할을 할만할 걸 찾고 있었다.


예를 들면, ‘형사 콜롬보’


잠이 드는데 그만한 것도 없었다. 최첨단 장비를 장착한 인물이 번쩍번쩍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수사물에 길들여진 탓에 1960년대의 탐정물은 지나치게 느긋했고, 나는 이야기 속 범인을 쫓다가 깊은 잠에 들고 말았다. 두 번씩이나... 하지만 정작 필요한 순간, 나는 콜롬보를 찾을 수가 없었다.







TV 화면에 포청천이 등장하자 중국어가 들려왔다.


리모컨 버튼을 몇 번 더 누르자 높다란 언성이 튕겨 나온다. 훠궈에 대한 어느 중년 여성의 불만이었다. 몇 번인가 먹어본 적이 있는 음식에 별다른 흥미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귓가에 스친 언어의 감정에 채널을 고정하고 말았다. 마음 깊숙한 곳에서 솟아오른 분노처럼 들렸다.


프로그램의 끄트머리만 겨우 본 탓에 전체 내용을 요약할 처지는 못 되지만, 대략적인 설명을 덧붙이자면 해산물 훠궈를 두고 하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말을 빌리면, 훠궈란 본래 맑은 물과 가스레인지 하나만으로 '바다 자체를 맛보는 요리'인데 해버렸다고 했다.







카메라는 그녀의 말에 부연설명이라도 보태듯 훠궈를 먹는 풍경 찬찬히 담아내기 시작했다.


커다란 냄비를 올린 화구 주변으로 사람들이 빙 둘러앉는다. 끓는 물에 접시 째 한 가득 준비해둔 해산물을 담근다. 조개도 새우도 꽃게도 생선살 등등...


단, 그걸 건져먹는 타이밍은 제각기 다르다.


미식가라면 숨죽이며 지켜보다 식감이 질겨지기 전에 젓가락을 들어 부드러움을 맛본다. 그런 일과는 무관히 끈한 소스 하나로 천하통일을 이루는 이도 있다. 그저 북적이는 자리가 마냥 즐거운 이도 보인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떠드는 만담꾼도, 안주가 절실한 애주가도 빠지지 않았다. 강아지 한두 마리도 덩달아 주변을 맴돈다. 


이름 모를 프로그램은 '훠궈는 사람을 한자리에 모이게 한다'는 말만 남긴 채 유유히 끝나버렸다.







그런데 제 나름의 허기에 쫓기던 이들이 냄비를 중심에 두고 둥그렇게 원을 그리던 그 장면 나의 머릿속에서 아름다운 색으로 드러나 시작했다.


'도무지 어디서 배웠다고 말하기도 머쓱한 몸 재간도, 특수 부대 출신인양 물살을 가르는 노련한 몸놀림도, 둥둥 튜브에 몸을 싣고 물장구를 치는 작은 발도 모두 쓸어안은 파랑.'


(전으로 나의 상상이지만...) 나는 어쩐지 그들이 드넓고 유연한 바다를 맛 본  아니었을까 했다.


'바다를 맛본다'는 그녀의 말이 떠오르며 그것은 정령 속 깊은 화냄이었나, 그렇게 되묻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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