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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븟 Jun 27. 2021

슴슴함의 재미

평양냉면을 좋아하면 흔히 최애라는 수식어가 붙는 집이 하나씩은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의 경우는 조금 달랐다. 모든 평양냉면을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비교적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이라서 오랜만에 겪는 선택 장애가 어리둥절하기도 했다.







우리가 평냉이라고 부르는 것은 집집마다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기본적으로 육수 맛이 달랐다. 소와 돼지와 닭이 들어가는 비율과 끓여내는 방식이 다르니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메밀면 역시 두께와 함량이 같지 않아서 식감과 향이 동일하지 않았다.  사이의 균형을 조율하듯 마지막에 올라가는 고명도 매한가지이다. 


센 맛에 그 정도의 미세한 차이를 두면 별반 다르게 느껴지지 않는 미묘함이었겠지만, 슴슴한 바탕은 재료 본연의 맛을 확연히 드러내며 '개성'이라고 불러도 좋을 걸 만들어낸다. 


그래서일까. 소위  평양냉면 마니아를 자처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선호하는 명확한 이유가 있기 마련이었다. 누구는 극강의 담백함에 은은히 퍼지는 메밀향이, 누구는 소 육향이 진한 육수를 개운히 들이키는 순간이, 누구는 돼지고기 베이스의 육수에 총총 올라간 파를 씹는 재미가 좋다고 말한다.


자신의 미뢰에 닿는 곳을 최고의 평냉집으로 친다. 물론 예외적이 인간인 나는 미세한 차이를 고루고루 즐기는 일을 예찬하며, 그걸 '슴슴함의 재미'라고 부른다.







사는 곳을 벗어나 조금 먼 동네를 갈 때면 나는 그 동네 이름에 평양냉면을 붙여서 검색해 볼 때가 많다. 세상에는 굳이 티브이에 나오지 않아도 깊은 맛과 나름의 멋을 간직한 가게가 많기 때문이었다.


지난달 나는 볼일로 잠시 부평에 들렀다 곧바로 발길을 돌리자니 어쩐지 그냥 빈손으로 가는 기분이 들어 습관처럼 그것을 찾았다. 역시나 한 군데 정도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곳이 있었다. 부평 시장 인근에 자리 잡은 하얀 간판이 걸린 집이었다. 때마침 여름을 알리는 이른 더위가 나를 마중했고 나의 갈증은 커져만 갔다.


딱히 점심도 저녁아닌 시각, 비교적 널찍한 홀에 드문드문 손님이 보였다. 문가에 자리를 잡고 평양냉면을 주문했다. 쨍하게 높은 채도를 등지고 그것이 등장했다. 곱게 간 고춧가루가 한 숟갈 올라가 있는 평냉을 들이마시니, 시원함 뒤에 칼칼함이 슬쩍 맴돌았다. 일반적인 기준에서 매운맛이라고 하기는 멋쩍었지만, 무던한 바탕을 파고드는 기세가 심상치 않아서 나는 매운 평냉이라고 별명을 붙여두고 싶었다. 한 점 올라간 껍질의 식감이 살아있는 돼지고기 편육까지 한 입 베어 물고 나니 어쩐지 어깨가 으쓱했다.





인천, 부평의 해민면옥




평양냉면을 파는 곳은 대개 노포이지 나는 그것에서 세월을 눈치채지 못했다. 도리어 투명함에 감탄하는 일이 더 많았다 - 슴슴한 바탕에 기대어 그릇을 음미하고 나면, 내가 누구인지 일러주는 섬세한 여운이 감돌았다. 


글을 쓰다 멈칫하게 만드는 모호한 '좋은 콘텐츠'라는 것이 만일 만천하에 친절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면 나는 그것이 평양냉면의 형상을 하고 있을 것만 같다. 







여담이지만, 내가 요즘 브런치에 빠져드는 이유도 그런데 있는지도 모르겠다. 본래의 자신을 찾으려 작정한 듯 솔직함을 비기로 흰 여백을 그려내는 글을 읽다 보면 유일무이한 필력의 자화상이 눈앞에 펼쳐졌다.


역시나, 슴슴한 건 여러모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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