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고 덜어내기
펜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아울러 숨까지 멈춘다. 이게 뭐라고 부들부들 떨며 긋는다. 맞다. 난 그림 초보다. 모든 초보는 공통점이 있다. 넘치는 의욕과 그에 비례한 시종일관 힘주기. 누군가 손에 힘을 빼는데만 3년이 걸렸다 했다. 힘 빼기가 그리 어려운 거겠다.
아픈 손을 보며 실소가 났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여행 중 동생에게 헤드업 수영법을 알려줬다. 수영을 배워도 머리를 물 밖에 내놓고 못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내 동생도 그렇다. 그때는 답답해하며 줄곧 외쳤더랬다. '힘을 빼. 힘주니까 가라앉잖아'
그랬다. 긴장해서 잔뜩 들어간 힘이 도움이 되긴커녕 몸을 물 밑으로 잡아당기는 거다. 마치 그리는 내 손에 뺄 수 없던 힘처럼. 필요 없는 힘을 잔뜩 주고 부들부들 긋는 내 모습이 동생의 모습과 겹쳐졌다.
아이러니다. 잘하고 싶다면 힘을 빼고 비워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거 몰라서 못할까? 안다 생각하지만 정작 마주하면 어느새 긴장한다. 선이 틀어져 망치고 물에 빠질 거 같다. 움켜쥔 힘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는다. 자신이 못 미더운 거다.
그리보면 힘 빼고 리듬을 타는 건 고수만의 여유일까. 누구나 알려주지만 처음엔 절대 안 되는 거. 별 거 아니라고 스스로 체득해야 비로소 움켜쥐던 힘이 빠진다. 그렇게 비워도 괜찮다는, 오히려 비워야 더 낫다고 깨닫는 것이 모든 배움에는 필수일 거다.
그리는 건 쓰는 것과 꽤 닮았다. 욕심껏 채우면 흉하다. '하나도 버리지 않겠어'라며 잔뜩 움켜쥐면 전부를 버려야 한다. 맥락과 주제를 벗어난 문장을 쳐내듯 강조와 생략할 곳을 나눠야 한다. 나만의 관점이, 해석이 필요한 거다. 사실 강조가 아닌 생략이 더 어렵다. 그게 안목이고 기술이겠다.
이거 회사에서도 본다. 일명 '선택과 집중'되겠다. 문제는 고르는 안목보다 버릴 것에 대한 태도다. 단호히 버리라는 사람? 없다. 대신 비중을 줄이라 한다. 비중만 줄인다고 딱 그만큼 일도 배분되던가. 실무를 등진 이들이 두드리는 계산기란 늘 이 모양이다. '선택'이란 모두 움켜쥐고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다수인데? 집단지성? 글쎄다. 자율과 독립이 보장될 수 없는 곳에선 모을수록 하향 평준화된다. 대면 관계 속에 솔직한 의견? 쉽지 않다. 아무리 수평관계를 외쳐도 영향력과 그에 따른 눈치가 있기 마련이잖나. 설상가상으로 방향과 결정은 늘 실무와 거리가 먼 이들이 한다. 이즘 되면 조직이라는 태생적 문제지 싶다.
그러니 혼자든 여럿이든 배우는 과정과 시간은 마찬가지다. 인간은 자신이 멈추지 않는 평생을 배운다. 그렇다면 배움의 기술이 삶에 힌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삐끗해도 끝장나지 않는다는 거. 내 기준으로 비울 것들을 찾는 거. 움켜쥐는 것보다 덜어내는 방법을 배우는 거. 그렇게 살아온 흔적을 지우고 돌아가는 거. 내가 사는 동안 익혔으면 하는 삶의 기술이다.
좋은 그림, 나쁜 그림은 없다. 단지 내 맘에 드는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만 있을 뿐이다. 마주하며 흡족질 때는 모든 걸 빽빽이 채운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히 생략되어 꼭 필요한 것만 남았을 때다. 그 사람의 해석이 고스란히 와 닿는 그런 그림이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때 삶도 마찬가지일 거다.
표지 그림을 그릴 때 내게 인상적인 것은 과연 뭐였을까? 그림만 보면 알 수 없다. 베로나로 들어설 때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언덕 위로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었더랬다. 그런데 그림은? 전혀 아니다. 주변을 동일하게 채워 넣은 탓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