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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len Apr 09. 2017

삶의 기술

비우고 덜어내기


누구나 초보


펜 잡은 손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 아울러 숨까지 멈춘다. 이게 뭐라고 부들부들 떨며 긋는다. 맞다. 난 그림 초보다. 모든 초보는 공통점이 있다. 넘치는 의욕과 그에 비례한 시종일관 힘주기. 누군가 손에 힘을 빼는데만 3년이 걸렸다 했다. 힘 빼기가 그리 어려운 거겠다.

아픈 손을 보며 실소가 났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다. 여행 중 동생에게 헤드업 수영법을 알려줬다. 수영을 배워도 머리를 물 밖에 내놓고 못하는 사람들 의외로 많다. 내 동생도 그렇다. 그때는 답답해하며 줄곧 외쳤더랬다. '힘을 빼. 힘주니까 가라앉잖아'

그랬다. 긴장해서 잔뜩 들어간 힘이 도움이 되긴커녕 몸을 물 밑으로 잡아당기는 거다. 마치 그리는 내 손에 뺄 수 없던 힘처럼. 필요 없는 힘을 잔뜩 주고 부들부들 긋는 내 모습이 동생의 모습과 겹쳐졌다.


망치지 않아!! 죽지 않는다고!!!


아이러니다. 잘하고 싶다면 힘을 빼고 비워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이거 몰라서 못할까? 안다 생각하지만 정작 마주하면 어느새 긴장한다. 선이 틀어져 망치고 물에 빠질 거 같다. 움켜쥔 힘이 나도 모르게 자리 잡는다. 자신이 못 미더운 거다.

그리보면 힘 빼고 리듬을 타는 건 고수만의 여유일까. 누구나 알려주지만 처음엔 절대 안 되는 거. 별 거 아니라고 스스로 체득해야 비로소 움켜쥐던 힘이 빠진다. 그렇게 비워도 괜찮다는, 오히려 비워야 더 낫다고 깨닫는 것이 모든 배움에는 필수일 거다.


선택과 집중!?


그리는 건 쓰는 것과 꽤 닮았다. 욕심껏 채우면 흉하다. '하나도 버리지 않겠어'라며 잔뜩 움켜쥐면 전부를 버려야 한다. 맥락과 주제를 벗어난 문장을 쳐내듯 강조와 생략할 곳을 나눠야 한다. 나만의 관점이, 해석이 필요한 거다. 사실 강조가 아닌 생략이 더 어렵다. 그게 안목이고 기술이겠다.

이거 회사에서도 본다. 일명 '선택과 집중'되겠다. 문제는 고르는 안목보다 버릴 것에 대한 태도다. 단호히 버리라는 사람? 없다. 대신 비중을 줄이라 한다. 비중만 줄인다고 딱 그만큼 일도 배분되던가. 실무를 등진 이들이 두드리는 계산기란 늘 이 모양이다. '선택'이란 모두 움켜쥐고 비중을 조절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도 다수인데? 집단지성? 글쎄다. 자율과 독립이 보장될 수 없는 곳에선 모을수록 하향 평준화된다. 대면 관계 속에 솔직한 의견? 쉽지 않다. 아무리 수평관계를 외쳐도 영향력과 그에 따른 눈치가 있기 마련이잖나. 설상가상으로 방향과 결정은 늘 실무와 거리가 먼 이들이 한다. 이즘 되면 조직이라는 태생적 문제지 싶다.


덜어내는 기술


그러니 혼자든 여럿이든 배우는 과정과 시간은 마찬가지다. 인간은 자신이 멈추지 않는 평생을 배운다. 그렇다면 배움의 기술이 삶에 힌트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한 번 삐끗해도 끝장나지 않는다는 거. 내 기준으로 비울 것들을 찾는 거. 움켜쥐는 것보다 덜어내는 방법을 배우는 거. 그렇게 살아온 흔적을 지우고 돌아가는 거. 내가 사는 동안 익혔으면 하는 삶의 기술이다.

좋은 그림, 나쁜 그림은 없다. 단지 내 맘에 드는 그림과 그렇지 않은 그림만 있을 뿐이다. 마주하며 흡족질 때는 모든 걸 빽빽이 채운 그림이 아니다. 오히려 적절히 생략되어 꼭 필요한 것만 남았을 때다. 그 사람의 해석이 고스란히 와 닿는 그런 그림이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볼 때 삶도 마찬가지일 거다.




표지 그림을 그릴 때 내게 인상적인 것은 과연 뭐였을까? 그림만 보면 알 수 없다. 베로나로 들어설 때 시선을 사로잡은 건 언덕 위로 솟은 사이프러스 나무들이었더랬다. 그런데 그림은? 전혀 아니다. 주변을 동일하게 채워 넣은 탓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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