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택은 이름에서부터 시작된다.
요즘 본인 이름 한자로 쓰지 못하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이를 두고 상식이니 상식이 아니니 논란이 뜨겁다. 하지만, 내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자가 쉬워도 너무 쉽기 때문에. 이걸로 엄마께 내 이름 왜 이렇게 쉬운 한자냐고 가벼운 짜증을 냈던 적이 몇 번 있는데 그럴 때마다 엄마는 내게 '집안 어르신이 지어주신 이름이야.'라고 하신다. 그럼 난 할 말이 없어 입을 꾹 닫고 만다. 어떻게 된 게 이 놈의 K-유교에서는 벗어날 수가 없어요.
만약 내가 아들이라면 어땠을까? 의문에 대한 정답은 곁에 있다. 남동생 이름은 어렵고, 복잡하고, 그 뜻은 굉장히 멋있으니까. 동생뿐이랴, 언니도 마찬가지다. 둘 다 내가 따라 쓰기도 어려운 한자다. 첫째라서, 아들이라서 얻은 혜택은 이름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람들은 그러겠지. '에이, 아니겠지. 네가 오버해서 생각하는 거겠지.' 팍씨, 진짜 가만 안 둬.
'화'와 '선'을 놓고 한자 키를 눌렀을 때 1번으로 나오는 한자, 化善. 내 이름. 쉬운 한자라도 의미가 좋았으면 이렇게 두고두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될 '화' & 착할 '선'>. 착하게 되라니. 의미는 좋지. 너무 뻔하며, 그 시대가 바라는 '여성상'이 들어있어서 머리 커지고 이름의 뜻을 알았을 때부터 달갑지 않았다. 더욱이 언니와 나는 이름에 똑같이 '화'가 들어가도 한자는 다르다. 내가 좋아하는 동사 '빛나다.'는 언니 이름에 있다.
빛날, 곧을
될, 착할
어질, 무거울
셋의 이름을 나란히 두면, 차이가 명확히 보인다. 봐라, 이래도 내가 오버하는 걸까? 그렇다고 내가 언니와 동생을 탓하는 게 아니다.
어른이 문제라는 거다. 태어난 순서와 성별에 차별을 두고 어쩌면 평생 불려야 할 이름을 가볍게 생각했던 당시 내 이름에 관여했던 어른 모두가 문제. 혹자는 고심해서 만들어줬겠지, 설마 그랬겠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닐걸? '착함.'은 나만의 것이 아니잖아. 모든 어린이들에게 할 수 있는 '착하다.'라는 말을 이름에 담았다는 것 자체가 반증한다고 본다. 어린이에게 '그래, 착하게 자라렴.'이라고 하지 누가 '그래, 빛나면서 곧게 자라렴.' 그럴까. '빛나면서 곧은 나'와 '어질면서 무겁게 진중할 나'는 나만의 것이 될 수 있지만 '착한 나'는 누구나 될 수 있다.
무지는 변명이 될 수 없다.
지금이 2022년이니까 내가 이름에 가타부타 뭐라고 말이라도 하지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당사자에게 얼마나 서운한 일인지 짐작도 못 했을 거다. 집안 어르신이 만들어주신 이름이니 그저 '예.'하고 받아왔겠지. 그래도 이름 받았을 때 한 번, 출생 신고할 때 한 번. 적어도 두 번은 생각해봤어야 한다. 내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는지, 이름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측해봤으면 좋았을 텐데.
개인적으로 이름은 무척 중요하고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한 사람의 가치관과 신념을 결정지을 수 있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이름은 불려지는 것이다. 내 입으로 이름을 말하는 것보다 남들이 부르는 횟수가 더 많다. 그러니깐, 타인에게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는 1차 인지 수단이라는 것인데, 지금까지는 그랬던 적이 없을지라도 앞으로는 첫인상에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이름을 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최근에는 좋은 뜻의 한글 이름도 많고, 작명소에 가서 직접 이름을 짓는 등 이름에 정성을 다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여전히 곳곳에서는 꼬장꼬장하고 융통성 없는 집안 어르신들은 굳이 자신들이 해주겠다며 촌스럽게 지어주시는 경우가 왕왕 있다. 노인네들은 제발 손 떼고, 부모님은 투쟁이라도 해서 좋은 이름을 자식에게 주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마음에 안 들면 개명이라도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텐데, 앞서 말한 것처럼 K-유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이라 이 또한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니 내게 남겨준 유산이라 생각이 드니 쉽게 바꿀 마음조차 들지도 않는다.
그리고 난 착하지 않다. 뭐, 이름에서라도 착하게 보여야지. 어쩌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