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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냥이 Jun 07. 2024

영화 <원더랜드>: 나의 그리움이 너를 부를 때

이상향을 위한  이상적인 질문 

경이롭고 이상적인 파라다이스에서는 이별도 없고 눈물도 없고 행복한 삶만 존재할까? 어쩌면 우리의 이상향을 향한 질문 <원더랜드>. 6월 5일 개봉한 <원더랜드>는 블랙의 스크롤 화면이 다 올라갈 때까지 일어설 수 없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다. 영화는 태주와 정인, 바이리와 성준, 그리고 그녀와 딸과 할머니를 큰 축으로 원치 않는 이별을 한 그들이 선택한 원더랜드의 인공지능, 즉 死者와 화상통화를 하는 AI 서비스를 받으며 이별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을 그린다. 

   표면적으로 보면 박보검, 수지, 정유미와 최우식, 탕웨이까지 화려한 배우 캐스팅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게다가 성준이란 캐릭터인 공유의 특별출연은 영화 속 AI를 컨트롤하고 교감을 나누는, 매우 중요한 캐릭터다. 아무리 AI 기술이 발전하고 디지털 휴먼이 인간을 대체한다고 해도 인간은 금속성 재질이 줄 수 없는 온기를 그리워할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별을 맞은 이들은 그 이별에 대한 충격을 지연하고 어떻게든 그 존재를 잘 떠나보내기 위해 원더랜드의 서비스를 이용한다. 생전에 자신의 죽음, 곧 사후 세계를 설계할 수 있다는 상상력의 서사는 2022년 비슷한 시기에 TVN에서 공개된 이준익 감독의 웹드라마 <욘더>를 떠올리게 한다. 死者와의 화상통화가 일상화되고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안락사가 합법화된 우리의 근미래, 죽음과 사랑의 감정은 또 어떤 방법으로 인덱스화될까. 

   또 다른 주인공 최무성이 설계한 죽음 이후의 모습은 본인이 원했던 대로 디지털 장례식의 AI 캐릭터로 복원되어 조문객들을 유쾌하게 맞으며 대화한다. 그의 바람대로 하와이 같은 휴양지에서 휴가를 즐기듯 여유 있고 행복한 모습으로 자신이 떠나온 사람들에게 기억될 수 있다. 그러나 원더랜드 서비스는 정인이 설계한 우주인 태주처럼 다정하게 그녀를 챙기고 자신도 잊은 약의 위치를 알려주는 등 충실한 메이드처럼 돼버려서 혼수상태에서 깨어난 진짜 태주를 부정하고 시스템에 더 의지하는 부작용을 가져온다. 손주 진구를 복원한 정란은 가상의 공간에 깊이 몰입을 하며 무한한 아이템 지원을 하며 걷잡을 수 없이 생활고에 빠져들게 되고 아이템 마련을 위해 일하다 결국 과로사하는 비극적인 경우도 등장한다. 

  마치 영화 <Her>의 시스템 사만타의 다정함에 길들여진 호아퀸 피닉스처럼 식물인간이 된 남자친구 대신 화상통화 속 태주를 떠나보내지 못하는 정인과 그동안 손녀에게 엄마 역할을 했던 딸 바이리를 끊어내려는 할머니의 변화를 인지하며 시스템 충돌이라는 폭풍을 일으키며 결국 아이를 찾아내는 바이리의 모습 등 영화 속 다양한 인간 군상과 휴머노이드 자화상에 가슴이 시려온다. <원더랜드>가 재현하는 망자와의 감성적 교류, <욘더> 속 자신의 죽음도 설계가 가능한 안락사가 합법화된 미래, 이제 10년도 채 남지 않은 근미래를 기다리며 우리는 어떻게 사랑하고 어떤 이별을 해야 하는 걸까. 피부로 느끼며 체온을 교감하는 그런 사랑이 더욱 힘들게만 느껴지는 지금, 오늘도 게임 속 공간을 헤매다 잠드는 현대인들에게 <원더랜드>의 낯설고도 친숙한 이 장면들이 곧 다가올 우리의 미래가 될 것 같아 가슴이 아릿하다. 

   <욘더>가 우리가 꿈꾸는 그 가상세계의 허무함, 성장이 없고 멈춰있는 미완의 공간을 보여주며 ‘영원한 존재’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원더랜드>는 그 이상향을 만든 우리 스스로의 행복에 대해 다시금 묻는다. 네가 설계한 그 세계에 대해 만족하는가? 더 불행하지 않고 행복해질 수 있는가. 인간의 감성을 캐치하고 그 감성이 증폭된 캐릭터가 바이리처럼 사막의 폭풍을 뚫고 나오려 한다면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과연 원더랜드의 플래너들은 윤리적인 책임감을 떠나 의뢰인들을 보면서 보람과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영화는 무수한 질문을 남겨둔 채 끝난다. 공유와 바이리가 공항에서 만나 나누는 이야기 속에 어쩌면 해답이 있을지 모르겠다. 


   <원더랜드>는 2021년 촬영과 제작을 마쳤지만 코로나 상황으로 4년이라는 기나긴 잠을 깨고 관객과 만난다김태용 감독은 AI가 등장한다고 어려운 SF 판타지가 아닌 가족과 연인의 관계그리움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이미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진 시대진짜라고 믿었던 게 가짜가 되는 건 한순간이고 사본과 진본의 진위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닌사본의 가치가 진본을 뛰어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지 모른다


    문득 세기말이 오기 전 흥얼거렸던 노래 장필순의 ‘나의 외로움이 너를 부를 때’가 떠올랐다. 이 노래는 25년 뒤 ‘너의 외로움이 날 부를 때’란 제목으로 메타휴먼 아티스트를 표방하는 한유아의 노래로 다시 태어났다. 차갑게 식어버린 마음은 다시 커져만 가고, 그리운 얼굴은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있음을....‘그리운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있는 걸 믿고 있다’는 그 가사의 변화처럼 우리는 <원더랜드> 속 또 다른 그리움과 희망의 이야기를 다시 나눠볼 수 있지 않을까.          


#원더랜드

#나의그리움이널부를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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