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같이 깊은 오빠의 품
큰오빠는 내게 친구 같기도 하고, 때로는 견고한 울타리 같기도 했다. 한 번도 동생들을 혼낸 적 없고, 자기가 가진 용돈을 아낌없이 동생들에게 나누어 주던 사람이었다. 언제나 자기 자신보다 가족을 먼저 생각하며, 묵묵히 우리 곁을 지켜주는 그가 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늘 든든했다. 우리 가족에게 단단한 바위가 곁에 서 있는 것처럼, 오빠는 내 삶에서 큰 버팀목이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 큰오빠는 자연스럽게 우리 집안의 기둥이 되었다. 아버지의 강한 성격과 가부장적인 무게를 묵묵히 감당하면서도, 동생들을 챙기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집안의 크고 작은 문제들을 스스로 짊어지면서, 그는 한 발짝 물러서고 가족을 위해 자기 자리를 지키는 아는 듯했다. 그 덕분에 나와 동생은 친정집에 갈 때마다 늘 마음 편히 머물 수 있었다. 남편과 제부도 큰오빠를 형님처럼 따르고 좋아했다. 그들이 형처럼 의지하고, 믿고 따르는 모습을 볼 때면, 흐뭇하고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오빠는 가족에게 든든한 울타리일 뿐만 아니라, 우리 가정 모두의 든든한 중심이었다. 우리가 시골에 내려간다는 소식을 들으면 오빠와 올케언니는 미리 음식을 준비해 우릴 기다렸다. 그리고 남편과 마주앉아 술을 마시며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이 너무 보기 좋았다. 시골에 내려가 오빠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은 나에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다. 오빠는 나와 비슷한 마음과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 속내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 주었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내게 큰 힘이 되었다.
우리의 대화는 남들이 알 수 없는, 가족만이 공유할 수 있는 고민과 아픔을 나누는 특별한 시간이었다. 오빠는 내 말을 허투루 넘기지 않고 언제나 진지하게 들어주었고, 함께 있으면 어떤 이야기를 해도 괜찮을 것 같고,
늘 내 편이 되어 얘기를 들어줄 사람이라는 든든한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남편과 다퉜을 때는 달랐다. 오빠는 늘 나를 응원해주던 사람이었기에 당연히 내 편을 들어줄 거라 생각했지만, 우리 부부가 싸워 얘기하면 남편의 입장을 대변하며 내게 따끔하게 조언했다. 그는 자신이 장남으로서 짊어져야 했던 삶의 무게와 어려움을 진지하게 이야기하며, 남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라고 했다. 그 순간, 내 입장을 몰라주는 그가 조금 서운했지만, 진심 어린 말은 내가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마음을 돌아보게 해주었다. 항상 오빠의 말은 단순한 조언을 넘어, 내 삶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그 울림은 지금도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