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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아재의 좌충우돌 콜로라도 생활적응기

4화. 미국에서의 의식주(衣食住)-주(住)..알몸으로 태어나 집도 구함

아재의 학창 시절만 해도 새 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가정형편 조사(경제적 여건 상중하, 부모님 직업, 학력 등등)를 하였었다. 그때 항목 중 늘 변함없이 존재하던 게 바로 주거형태, 자가인지, 전세인지, 월세인지 그런 것을 기입하곤 했었는데 21세기의 오늘의 대한민국에서는 어떤지 모르겠다.('라테'시절의 아재는 이러했음)

일단 자가라는 것을 당당히 기입할 수 있었던 게 그리 오래되지 않았단 것, 우리 집이 생겼다는 걸 부모님께서 얼마나 좋아하신지는 어렴풋이 기억에 남는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기숙사(혹은 생활관)등을 떠돌아다니며 생활한 뒤 대학 졸업 후 첫 직장(군대)에서의 생활 또한 BOQ(Bachelor Officer Quarters, 독신자 간부 숙소-장교)에서 수년을 보냈기에 학교 및 직장생활 간 거주에 대한 고민은 딱히 할 게 없었다. 다만 알아서 제공된 숙소(생활관과 간부숙소)의 상태가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는 게 결정적인 흠.


아내를 만나고 사회로 나온 후 30이란 나이가 넘어 본격적으로 주거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었던 것 같다. 상기했듯 그동안은 어디에 어떤 집을 얻거나 사야 되는 고민 없이 제공된 관사에서 그냥 그러려니 하며 지내면 되었지만, 사회에서 직장을 가지고 생활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그런 혜택이 없기 때문에 집을 알아보는 게 최우선 과제가 되었던 것이다.


가장 먼저 아내와 함께 살던 곳은 원룸촌이 밀집한 지역의 단칸방에서 시작했었다. 4층 규모의 빌라에 1층은 주차장으로 이뤄졌고 2,3층은 각 4개의 원룸이, 4층은 주인집이 살던 그런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원룸 빌라 구조에서 1년이 좀 안되게 지냈던 것 같다.

다음으로 이사 간 곳은 방 두 개의 아파트, 이때부터 나의 공간이 다시 생겨났는데 그전 원룸에서는 대부분의 가전용품들(냉장고, 세탁기, 레인지 등등)이 구비되어 있어 몸만 들어가서 살았다면 이때부터 냉장고도 구입하고 세탁기도 구입하면서 살림이 하나둘씩 늘어갔던 것 같다. 여기서 첫째가 태어나 미국으로 가서 생활하지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그렇게 생활하다 이곳 미국 콜로라도로 오기 전까지 살았던 곳은 나에게 우리 집이라는 첫 기분을 느끼게 해 준 부모님의 아파트로 다시 들어가 1년 정도 지냈었다. 내가 학교생활, 직장 생활하는 동안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기신 부모님께서 다른 곳에 집을 사서 옮겨가시면서 세를 놓고 있던 것을 첫째가 들어서고부터 아파트 비울 테니 들어가서 살라고 하시던 것을 거절하다 애가 나오고 나니 좀 큰 데서 편하게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그동안 많아진 살림살이를 들고 이사했었다.


이렇게 한국에서의 주거는 크게 관사-원룸-투룸-부모님 댁에서 지냈다면, 미국으로 온 2017년부터는 오롯이 나와 아내의 집에서 지내고 있는 중이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하여 어떻게든 나의 공간에서 생활하던 습관 때문이었는지, 아내는 처가 어르신들의 집에서 지내면서 천천히 집을 알아보자고 하던 것을 월세라도 좋으니 빠른 시간 안에 집을 구해 나가자고 하여 이곳 미국(콜로라도)으로 온 두 달여 만에 단층의 방 두 개에 주차장이 연결된 랜치 하우스(Ranch-style house)를 계약하여 구입하게 되었다.

미국 콜로라도로 이사와 첫 자가소유

이것이 이번 생에서의 첫 자가가 되었다. 물론 대출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명의는 나와 아내의 명의지만 실제적인 소유는 모기지(Mortgage) 회사라 해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첫 집을 가지게 된 것이다. 전체 면적에서 나의 소유는 방 하나 정도였을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이 집에 우리 꺼는 여기서 여기뿐이고 나머지는 대출회사의 것이라는 이야기를 아내와 종종 하곤 하였다.

당시 집을 살 때 주변에서는 뭘 그리 급하게 집을 구하냐, 지금 집값이 얼마나 오르고 있는데 집을 구하냐 그런 말들이 많았었는데, 나에게 집은 거주하는 목적이 크지 부동산 투자의 목적은 거의 없기에 나중에 집값이 오르든 떨어지든 신경 안 쓰고 지금 살만한 집을 아내에게 보고 구하라 했던 것이다. 아내와 집을 보러 다니다 귀찮아져서 마음에 드는 집이 생기면 정하고 알아서 계약하라고 맡겼었다.


이렇게 미국 콜로라도에서의 첫 집을 장만하고 둘째가 태어나고 알뜰살뜰 모은 종잣돈이 생겨 조금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그동안 미국 생활(엄밀히 콜로라도 생활이지만)을 하면서 집에 대한 욕심이 생긴 게 있는데 이번에는 아내에게 그 요구사항을 말해주고 이에 맞는 집을 찾아보라고 했었다. 그 욕심은 다름 아닌 주차장이 2개 정도는 되는 것 그 하나였다.

차고가 한대 정도의 주차장에서는 자가정비를 하기에는 다소 공간이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았기에 다음에 알아보는 집은 차고가 최소 두대 규모의 공간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2020년 겨울 지금의 집을 아내가 알아보고 정하여 나중에 계약을 할지 말지 나와 함께 와서 구경해보고 나는 차고가 두 개니 충족되었고 별다른 불만이 없었기에, 아내가 마음에 드는지 재차 확인하고 아내가 마음에 들면 계약하라고 이번에도 전적으로 맡겼었다.


처음 집을 살 때는 집을 구하는 게 우선 목적이었다면, 두 번째 집을 옮길 때는 앞으로 십여 년 애들 독립 때까지는 지낼 공간을 구하던 거라 처음보다는 꼼꼼히 주변 환경이라든지, 치안, 직장에서의 거리 등 고려사항이 좀 더 많아져 집을 옮길까 하는 생각을 가진 후부터 집을 구할 때까지 거의 4개월 정도 소요되었던 것 같다.

아내가 골라온 집을 계약만 하는 콜로라도아재

원룸에서 시작하여 어느새 이층 규모의 넓은 집으로 오기까지 적은 수입을 알뜰히 아껴가면서 모아 온 아내의 공이 큰 것 같아 고맙게 느끼는 중이다.

집이 조금씩 넓어지고 커지면서 구성원들도 하나씩 늘어갔다. 방이 늘어나는 만큼 거기에서 생활할 가족이 늘어나는 마법인 것인지.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 벌 걸친 것도 모자라 이렇게 추위와 더위, 비, 바람을 막아주고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공간을 가지게 된 것에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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