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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릭 Apr 06. 2022

저마다의 입장이란

[영화]빛과 철(2020)


영화 <빛과 철>은 두 남자의 교통사고를 둘러싼 진실을 추적한다. 그 과정에서 영화 속 인물들의 고백과 배경이 하나씩 드러난다. 영화는 진실의 실체보다는 거기에 도달해가는 과정에 도사리고 긴장감들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 이면에는 진실을 얻으려는 자가 견뎌내야 하는 무거운 과정들이 버티고 있다. 진실에 다가서는 자와 그 주변인들이 감내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진실이 과연 있긴 한 건지 무겁고 알 수 없을 뿐이다.








희주(김시은)에게 지난 1년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막막함과 절망이 한꺼번에 몰아친 시간이었을 것이다. 예상치 못한 교통사고로 남편은 세상을 떠났고, 남편의 과실로 일어난 그 사고로 맞은편에서 달려오던 차량의 운전자는 뇌사상태에 빠져 있다. 오빠 내외는 희주를 감싸듯 받아주지만 그조차도 희주에게는 부담이고 짐이다.


공장의 주방에서 일하는 영남(엄혜란).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일 할 뿐이다. 그에게 지난 1년은 한숨과 희망과 원망과 용서가 뒤섞인 시간이었으리라. 1년 전 차 사고로 의식불명 상태가 된 남편. 더구나 남편의 잘못이 아니라 중앙선을 넘어 온 상대 차로의 운전자 때문에 이 지경이 됐다. 기약 없이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 사춘기에 접어든 딸을 보살피며 영남은 그저 더 나은 시간을 기다릴 뿐이다.


한 공장에 있으니 어차피 만날 운명이었을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식당에서 희주와 영남이 마주치고, 희주는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지만 영남은 따뜻함을 건넨다. 그리고 희주의 일상에 영남의 딸 은영이 끼어든다. 그리고 은영은 뜻밖의 고백을 한다. 차라리 죽기를 원했던 아빠와 자살을 준비한 한 남자가 교통사고로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애써 모른척 하려고 했지만 희주, 영남, 은영 세 사람은 이미 장례식장에서 마주친 사이다. 알면서도 모른 척 하는 것도 잠시, 희주와 영남은 두 사람은 각자의 입장을 반복하며 서러움과 증오를 쏟아낸다.






영화 말미에 고라니가 갑작스럽게 나온다.

뭐지, 현실인가? 현실에서 벗어난 것만 같다.


이 장면이 말하는 것은 ‘사건의 진실’은 알 수 없다는 것만 같다.  우리가 겪어야 하는 것은 그날의 진실이 아니라 그것을 좇는 과정에서 느끼게 되는 고통이다.


‘빛과 철’은 철저히 남겨진 자들의 이야기다.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희주와 영남은 불편한 마주침 대신 이제는 끝난 사고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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