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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릭 Mar 03. 2022

작은 불씨에서 불꽃으로

[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2020) 리뷰




화가인 마리안느(노에미 멜랑)는 밀라노에서의 결혼을 앞둔 귀족의 딸 엘로이즈(아델 에넬)의 초상화를 그리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외딴섬에 도착한다.



결혼 전 신부의 초상화를 먼저 신랑에게 보내는 풍속에 따라 백작 부인은 딸의 초상화를 원하지만, 엘로이즈는 초상화 모델이 되기를 거부한다. 딸의 태도 때문에 백작부인은 고심 끝에 산책 친구인 양 위장해 여성 화가를 불러들인 것이다.



영화는 일주일 남짓한 시간 동안 엘로이즈를 몰래 관찰해 그림을 그려야 하는 마리안느의 모습을 따라간다.






1. 첫 번째 초상화


영화에서 두 여성이 서로를 신뢰하고 사랑하게 되는 과정의 세부는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기존의 관습이 무너지고 전복되는 과정으로 대체된다. 두 사람이 처음으로 갈등하는 장면은 마리안느가 완성한 초상화를 엘로이즈가 혹평할 때다. 18세기 화가인 마리안느가 그려낸 엘로이즈는, 당시의 관습과 화법으로 초상화를 그렸다.


하지만, 그녀의 뮤즈는 두 뺨에 생기가 있는 초상화를 보고, ‘생기’와 ‘존재감’이 없다며 “늘 내 남편의 시선이네요”라고 일갈한다.


당대의 그림은 그림의 감상자인 이름 모를 남편의 평가를 다분히 의식하고 있다. 뮤즈로부터 평가절하당한 화가는 곧바로 분개하고, 자기 그림의 얼굴을 지워버린 뒤 떠나려 한다. 그런 화가에게 엘로이즈는 초상화를 한번 더 부탁한다.




2. 두 번째 초상화


두 번째 초상화는 시선의 교차로 이루어진다.


포즈를 취한 엘로이즈에게 마리안느는 그녀가 무의식 중에 내보이는 평소 행동과 표정을 하나하나 읊고, 엘로이즈의 얼굴은 상기된다. 하지만 엘로이즈는 이내 마리안느의 특징을 되갚듯 들려주며 자신 또한 마리안느만큼이나 면밀하게 상대를 관찰했음을 주지 시킨다.


뮤즈를 향한 화가의 시선이 당연시되는 권력이라면,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사실 화가 자신보다 더 많은 시간과 집중력으로 상대를 향한 시선을 유지하고 있는 쪽이 뮤즈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아로새긴다.


힘과 권력이 동등히 분산된 두 여성의 시선 아래서, 초상화의 탄생은 뮤즈와 창작자의 시간을 쌓음과 동시에 시선을 쌓으며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그들은 자유로운 연인이며 대상화되지 않은 서로의 협력자다.





낙태를 위한 약초를 찾는 세명의 여인



3. 신분


‘신분도 마찬가지다. 엘로이즈의 어머니가 밀라노로 갔을 때 그토록 황량했던 집은 낙원으로 변모한다.

영화는 하녀 소피를 포함해 세 여성이 서로의 자매가 되어준다는 사실을 자연과 일상의 풍경화로 대체한다.


이들에게 계급은 허울에 불과하다. 소피의 낙태를 돕기 위해 해변가와 들판에서 약초를 캐는 장면, 세 여성이 평면적으로 나란히 서 있는 부엌 장면은 신분이 사라진 것 같은 느낌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나타낸다.


영화 속 장면에서 엘로이즈는 요리를 하고 있고, 가운데 선 마리안느는 세 사람 몫의 잔에 와인을 따르고 있으며, 오른편의 소피는 앉아서 수를 놓고 있다. 계급에 충실한 영화였으면 하녀 소피는 요리를 하고 잔일을 하는 모습을 부각했을 것이다.  


참으로 소담하고 여성들의 연대를 다정하게 보여주는 장면이다.






4. 새로운 관점에서 본 오르페우스 신화


한편 주목해 볼 만한 것은 ‘오르페우스 신화’다.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오르페우스는 주체, 에우리디케는 객체다. 수동적으로 오르페우스에 의해 구원되어 저승에서 이승을 향해 걸어 나오다가, 오르페우스의 실수로 다시 지하세계로 끌려내려 간 에우리디케의 이야기. 전형적인 오르페우스 신화는 탄식과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하지만, 엘로이즈, 마리안느, 소피의 이야기에서 에우리디케는 객체가 아니다. 엘로이즈의 “여자가 뒤돌아 보라고 했다면?”이라는 질문을 통해 에우리디케가 오르페우스 신화에서 주체로 변모한다.





5. 낙원의 끝


하지만, 어머니가 밀라노에서 돌아오고 세명의 여성 주인공들의 낙원도 끝이 난다.


어머니가 밀라노에서 돌아옴과 함께 초상화 작업도 끝이 나고, 엘로이즈와 마리안느의 이별은 불가피하다. 엘로이즈와 포옹을 끝내고 서둘러 나오는 마리안느는 “뒤돌아봐”라고 말하는 엘로이즈의 환영을 본다. 여성이 결혼의 객체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의사를 피력함으로써 주체가 되고자 하는 엘로이즈의 의사가 반영된 장면이 아닐까 싶다. 이 장면에서 엘로이즈가 주체적인 에우리디케처럼 보이기도 한다.





6. 정리하며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은 뮤즈를 눈앞에 두고 그린 그림이 아니다. 마리안느의 기억을 통해 창작된 작품이다. 이 그림을 통해 지금은 함께 있지 않더라도, 나는 그 사람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작은 불씨에서 타오르는 불길이 되었던 한때의 기억을 그들은 어떻게 기억하며 살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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