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닉스(2020) - 전쟁이 만들어낸 서글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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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닉스>의 넬리(니나 호스)는 자신을 증명하며 영화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얼굴을 감싼 붕대를 풀어 자신을 증명했던 넬리는 영화의 엔딩에서 팔에 새겨진 숫자로 다시 한번 자신을 증명한다.
수용소에서 겨우 살아남은 넬리(니나 호스)는 자동차를 아고 국경을 건너고 있다. 그녀의 얼굴은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지니고 있다.
아우슈비츠에서 만신창이가 된 얼굴의 수술을 앞둔 넬리는 의사에게 ‘예전처럼 되고 싶다’고 말한다. 의사는 과거와 절대 같아질 수 없다며 성형을 통해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조언한다.
성형을 한 뒤 넬리는 우연히 피닉스라는 가게에서 수용소로 끌려가기 전 남편인 조니(로날드 제르필드)를 만나게 된다.
조니는 넬리에게 제안을 한다. 아내의 유산을 챙기려면 아내가 살아 있어야 한다고. 당신이 내 아내처럼 꾸며서 수용소에서 살아 돌아온 것으로 하자고. 그렇게 돈을 찾게 되면 보수를 주겠다고. 넬리는 무슨 생각이었을까? 남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에 대한 원망을 내비치지 못한 채 그저 슬프고 다정한 눈빛으로 조니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진짜 아내는 가짜 아내가 되어 진짜 아내인 척 연기를 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조니는 그녀에게 ‘에스더’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넬리의 모든 것들을 흉내내게 한다.
조니는 대체 넬리를 조금도 알아보지 못하는 걸까. 글씨체를 연습시키고 아내의 것과 비슷한 느낌을 주는 원피스를 입혀 걸음걸이를 봐주면서 눈앞의 그녀가 넬리와 이렇게 비슷한 수 있는가, 한치의 의심도 없단 말인가.
조니의 모습은 관객으로 하여금 비극적 감정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에게 과거란 그저 아내라는 존재와 함께 완전히 잊어야만 하는 기억이다.
오랜 세월을 함께 한 아내이기에 얼굴이 바뀐 들 몸짓, 목소리, 습관 어느 하나만으로도 바로 그녀임을 눈치채겠지만 조니의 방어기제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의 기억으로 재구성한 가짜 넬리의 모습이 점점 진짜에 가깝게 완벽해질수록 그것을 무시하려는 조니 내적 갈등과 죄책감은 서서히 커져간다.
무능력에 사로잡힌 조니의 모습과 행동은 슬픔과 동시에 비웃음을 자아낼 뿐이다.
레네의 입장에서는 어이가 없다. 넬리가 자신의 돈을 찾을 생각은 뒷전이고 자신을 고발해 수용소에 넘긴 조니를 도와 재산을 넘길 생각이라니. 그 돈은 유대인을 위한 것이지 독일인 남편을 위한 것이 아닌데 말이다.
넬리의 눈빛과 표정이 슬퍼서일까, 영화 내내 슬픔이 느껴진다. 다만, 영화가 슬픈 가장 큰 이유는 피해자 넬리가 그 피해를 호소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녀가 행복했던 과거를 복원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결국 조니의 행각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또 그녀의 불행이 개인적인 사건, 사고가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 자행된 만행에서 비롯되었기에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만일 그들이 전쟁을 겪지 않았다면, 조니 같은 인간상은 큰 문제 없이 살아갔을 것이다.
넬리의 아내 연기는 조니의 친구들을 만나며 끝이보이기 시작한다. 조니의 계획은 성공할 기미가 보인다.
하지만 과연 성공할까? 넬리가 추억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면서조니는 천천히 깨닫는다. 그녀가 바로 아내임을. 당신의 목소리가 정확히 당신의 신체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그 순간에 그의 눈앞에 넬리의 오른쪽 팔에 새겨진 수감번호가 스쳐 지나간다.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세계는 이전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다. 하지만 예전의 자리로 거슬러 돌아가려는 넬리의 모습이 인상깊다. 감독은 한 사람의 삶과 그가 머무를 세계에서 일으키는 불화를 주시한다.
이상 영화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