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개. '왜냐하면'
몇 년 전이었다. 동네에 있는 도서관에서 글쓰기 관련 강좌에 교육생으로 참가했다. 이름만 들으면 알 수 있는 유명 작가들의 글을 필사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필사는 글쓰기의 습관을 기르는 좋은 훈련과정이다. 다만 교육 시간 속에서 같은 방식의 반복과 글짓기로 이어지지 않아 개인적인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있었다.
필자(이하 송쌤)는 이십 년 가까이 한글 놀이 방식을 수집하고 연구했다. 한글이 가지고 있는 여러 특징을 활용한 퀴즈 방식의 놀이 들이 대부분이다. 오지랖이 발동했다. ‘한글 놀이의 다양한 방식들이 글쓰기 훈련과정으로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목적은 문장력을 높이는 글쓰기가 아니라 일반인들이 글을 쓸 수 있게 유인하는 다양한 놀이적 방식을 제공하는 글 놀이터 역할을 하는 것이다. 비유를 들자면 나이 어린 놀이 세계 입문자들에게 놀이 방법과 규칙은 아직 이르다. 이 시기에는 놀이터, 놀이기구, 장난감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글쓰기 입문자들에게 문장력, 문법, 띄어쓰기 등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기만 하다.
지금부터 스무 가지의 글놀이 방식을 제공해 볼까 한다.
공적인 행사나 모임에 참석하여 말하는 기회가 일반 사람들보다 많은 편이었다. 그때마다 반복적으로 느끼는 문제는 말 잘하는 사람들만의 놀이터였다. 어느 모임에 가서 문제 제기했더니 다음 모임 때 대안을 직접 만들어 오라고 했다. 말을 꺼냈으니 책임을 져야 했다.
참가자 모두가 골고루 말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A3 종이에 어린 시절 추억을 그림으로 그린 후 한 사람씩 3분 정도로 발표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다음 모임에서 시도해 보았다. 삶과 멀리 떨어진 주제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던 사람도 자신들이 경험한 추억을 발표하는 자리에서는 모두 수다쟁이가 되었다.
글쓰기나 글놀이도 마찬가지이다. 특정한 주제나 낯선 방식에서 뇌는 당황한다.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면 글을 만들어 내기 어렵다. 이럴 때 가장 좋은 소재 역시 추억이다. 추억을 글로 쓰라고 하면 주눅으로 꽁꽁 얼었던 뇌가 눈 녹듯이 녹아 제 기능을 찾는다.
추억을 어떻게 글로 옮길 것인가! ‘왜냐하면’ 방식을 빌리기로 했다. 과거 시기를 특정하고 결과를 먼저 적고 ‘왜냐하면’을 징검다리 삼아 원인을 나중에 적는 방법이다. 송쌤은 과거를 연령대별로 특정해서 먼저 해 본다.
① 10대 전 : 세 살 때 이마를 크게 다쳤다. 왜냐하면! 초가집 마루에 있는 의자에 올라가다가 떨어져서 장독에 머리를 부딪쳤기 때문이다.
② 10대 : 중학교 때 연애편지를 보냈는데 딱지를 맞았다. 왜냐하면! 그녀는 나보다 더 멋진 놈을 좋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③ 20대 : 대학교 방학 때 막노동을 했다. 왜냐하면!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직접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④ 30대 : 2003년 대구에서 의성으로 이사를 했다. 왜냐하면! 집사람이 우기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⑤ 40대 : 2008년 땅을 샀다. 왜냐하면! 의성에서 정착하기 위해 집터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⑥ 50대 : 한국농어촌공사 비상임 이사가 되었다. 왜냐하면 2005년 농촌 현장 활동가 출신이 비상임 이사가 되는 것이 상징성과 의미가 있다고 마음을 먹었기 때문이다.
이제 당신 차례다. 과거의 특정은 연령대가 아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등 학창 시절로도 가능하다. 나이가 어리다면 시기를 좁히면 된다. 누구라도 최소 다섯 개 이상은 적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