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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손이 Jun 26. 2021

나는 아빠를 모른다

-아빠와 달 착륙

결혼을 하면서 고향인 대전을 떠났다. 짧게는 한 달에 한번, 길게는 서너 달에 한 번씩 남편과 아들과 함께 대전 아빠 집에 간다. 언제나 그랬듯 저녁상을 물리고 TV 앞에 모였다. 마침 화성 탐사의 역사에 대한 내용으로 우리가 미처 몰랐던 우주 화성에 대해 풀어내고 있었다. 

한참을 보던 아빠가 말했다.      


그 뭐냐, 처음 달에 사람이 갔을 때 말이야. 그걸 테레비에 중계해준다고 했어. 우리 마을에 테레비있는 집이 별로 없었거든. 그때는 뭐 다 흑백였지. 그거 보려고 마을에서 텔레비 있는 집에 찾아다녔어. 엄청 신기했지.    

  

순간 멈칫했다. 겉으론 “아~ 그랬어?”라고 답은 했지만 마음은 움찔했다.      

‘엥? 우리 아빠가 그런 데 관심이 있다고? 그걸 보고 싶어서 텔레비전 있는 집을 찾아다녔다고??.'


달 착륙과 닐 암스트롱 그리고 지난해 칠순을 맞은 우리 아빠. (계획했던 칠순 해외여행도 코로나 19로 접어야 했던 우리 아빠) 뭔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한때나마 궁금해하고 신기했다는 아빠의 말이 너무나 생소하게 느껴졌다. 

한참 후, ‘처음 달에 착륙한 사람은?’하면 구구단 외우듯 자동적으로 나오는 ‘닐 암스트롱’과 최초의 달착륙이 정확히 언제였는지 검색해봤다.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떠나, 7월 20일에 달에 착륙(어느 블로그에 찾아보니, 1969년 7월 21일에 TV로 봤다고 한다) 뭐 어쨌든 간에. 아빠가 1951년생이니까, 아빠 나이. 18, 19살.... 와........

19살이면 그럴 수 있을 거 같다. 전 세계인이 주목하는 일에 아빠도 관심이 있을 수 있지. 

그런데도 흑백 TV 속 달에 착륙한 닐 암스트롱의 첫 발자국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숨죽여 바라보는 19살의 아빠가 너무나 낯설다. 


난 아빠를 모른다. 

사실 다 안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아빠는 회사와 술. 그뿐이었다. 

내가 무엇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는 건 아빠는 술을 좋아한다는 것. 떠올리고 싶지 않은 어린 시절 기억 중에 대부분은 술 마시는, 술에 취한 아빠가 있다. 꼭 그런 날에 우리 집이 아주 시끄러웠다. 

풀린 동공과 휘청거리는 몸짓, 코끝을 찌르는 알코올 향.... 평소 단정한 아빠가 아닌 전혀 다른 모습을 하고선 집에 들어서면 내 심장은 쿵쾅쿵쾅 요동쳤다. 잠든 척 눈은 꼭 감았지만 잠들 수 없었다. 


아빠는 시골마을, 넉넉지 못한 형편의 둘째 아들로 자랐다. 자신이 키가 작은 이유가 어릴 때 지게질을 하도 많이 해서 그렇다고 하신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 초등학교도 겨우 졸업했단다. 성인이 될 무렵 혈혈단신 맨몸으로 도시에 나섰고, 직장을 다니다 결혼을 하고 우리 삼 남매를 낳았다. 


아빠는 한 직장에서 꽤 오래 일을 했다. 40년 가까이 일하고, 정년퇴직 후 또 그곳에서 일했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혹은 자판을 두드리는 일이 아니었다. 기름때를 묻히며 몸으로, 힘으로 일을 하는 곳이었다. 특별한 취미생활도 없었던 아빠는 퇴근 후 술 한잔이 위로였는지도 모른다. 땀에 기름에 범벅이 된 몸을 샤워한 후, 시원한 맥주 한잔, 소주 한잔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게 좀 과해서 문제였지만.      


난 아빠를 모른다. 아빠는 자식들에게 다정하게 말하는 법, 마음을 표현하는 일도 모두 서툴다. (심지어 하나뿐인 손자에게도) 그저 묵묵히 회사를 다니며 우리를 키워준 것으로 뒷바라지해준 것으로 그 마음을 짐작해보는 것뿐.  

아빠를 모르고, 아빠를 오해하고, 아빠를 미워하기도 하지만, 사실 측은하고, 안쓰럽다. 

가난한 형편에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던 아빠의 어린 시절이, 더 큰 꿈을 펼치고 싶었겠지만 배움의 끈이 짧아 평생 몸으로 부딪혀 돈을 벌어야 했던 젊은 시절이, 애교도 없고 살갑지 못했던 세 남매를 둔 가장으로서의 어깨 무거웠던 시절이, 마음 기댈 곳 없이 하루아침에 혼자된 노년 시절이......     


난 아직 아빠를 모른다. 

뭐 모른다고 사랑할 수 없는 건 아니다. 

이해할 순 없지만 사랑은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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