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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손이 Jul 05. 2021

'섬집 아기'를 불러도 이제 울지 않아

-마음속에사는 어린 나

난임으로, 조금은 힘들게 아이를 가졌다. 태동이 느껴질 무렵 배에 손을 대고 내 일상을 공유하며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토닥토닥 노래도 불렀다. 왜 그 노래였을까. 그때 자주 부르던 노래가 ‘섬집 아기’였다. 노래를 부를때마다 눈물이 났다. 울먹거리면서 불렀다. 아마 내 어린 시절과 겹쳐져 그랬나보다. 


누구나 마음속에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산다고들 한다. 나도 그랬나 보다. 그 아이가 아직 울고 있나 보다. 

아무렇지 않게 잘 살다가, 그저 툭, 가볍게 툭. 

바람 한 줄기, 냄새 한 모금, 말 한마디, 그냥 마음에 툭, 살짝 스쳐도 가슴 저리면 

그 아이가 떠올랐다.  나를 봐달라고, 나를 안아달라고, 나 괜찮다고 해달라고. 아이가 얘기하는 거 같다.      


그냥 난 내가 불쌍했다. 안쓰러웠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참 못났다 싶다. 겉으론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하고 응원하면서, 정작 ‘내가 더 불쌍해, 내가 더 아파’ 했으니 말이다.  

    

밑천 하나 없이, 많지 않은 아빠 월급으로 다섯 식구가 살아가려니 빡빡했다. 뭔가 항상 부족했다. 그게 당연하다 여겼다. 나이는 어렸지만 알았다. 뭘 사달라 떼를 쓰지도, 갖고 싶은 걸 말하지도 못했다. 초등학교(나는 국민학교를 다녔다^^)를 들어가니, 내 '없음'이 보였다. 용돈은 생각도 못했던 터라, 학교 끝나고 문방구에 들러 군것질을 하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그때는 100원이면 충분했다. 무려 100원이면 입도 즐겁고 마음도 즐겁게 하굣길을 걸어갈 수 있었다. 수줍은 난 그 100원을 달라는 말을 못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그래도 단짝 친구는 꼭 있었다. 

"오늘 우리 집에 놀러 올래?" 

그 친구네 집은 넓고 좋았다.  실컷 놀고 난 뒤에 그 친구가 물어본다. 

"나도 네 집에 놀러 가도 돼?." 

가슴이 덜컹. 마지못해 "으... 응..." 대답한다. 

결국은 데려가진 않는다. "할머니가 오셨네.""아빠가 일찍 끝났네..."등 온갖 그럴듯한 핑계를 댄다. 자격지심이었다. 초대할 수 있는 집이, 맘껏 보여주고 싶은 집은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스스럼없이 누군가를 초대할 수 있다는게 부러웠다. 


내 안에 어린아이가 산다. 그 아이는 수줍고 여리다. 부족했고, 아팠고, 소심했다. 말이 아닌 마음으로 이야기하는 게 편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을 안고 사는 듯 긴장했다. 내가 사랑을 받고 있는지, 나의 존재가 축복받을 만한지,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지. 어느 누구도 말해주지 않아 애매하고 모호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데도 불안했다. 


우리 삼 남매가 무척이나 안쓰럽고 불쌍했던 어린 시절의 한 때. 사실 동네 친구들과 산과 들을 뛰어다니며 놀러 다니느라 우리가 어떤 처지에 놓여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래도 그때 우리 삼 남매를 바라보던 동네 어른들의 시선과 표정은 생생하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 시절의 어린아이가 자꾸 떠오른다. 맘껏 울지 못하고, 화내지 못하고, 붙잡지 못했던 아이가 있었다. 사랑받기만 해도 모자랄 때, 쓸모없는 짐짝이 된 듯 내 존재가 별 의미가 없어보였다. 누군가에게 부담스런 존재같았다. 그 불쌍한 아이가 지금의 나에게 보이지 않을까, 그 어두운 냄새가 배어 나오진 않을까. 전전긍긍, 표정과 마음을 쿨한 척 숨기며 세상 당당한 모습으로 살았다. 


'섬집아기'를 부르면 그때 그 아이가 생각났다. 

다행히 아들을 낳은 뒤, 신기하게도 이 노래를 불러도 울지 않는다. 아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자장가로 수도 없이 불렀던 노래. 말을 트기 시작할 무렵 아들이 가사를 외워버려 깜짝 놀랐던 그 노래. 왜 그 노래를 자장가로 불렀는지 모르지만, 난 이제 울지 않는다. 


어른이 된, 엄마가 된 나는 내 안의 어린 소녀에게, 그토록 갖고 싶어 했던 마론인형을 사주고 싶다. 새 박스 그대로, 거기에 갈아입힐 수 있는 인형의 화려한 드레스까지 말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긴 머리를 살살 조심스레 빗어주며 귓가에 따뜻하게 속삭이고 싶다. 

사랑한다고 

네가 태어나 너무나 기쁘다고 

네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다고 

미안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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