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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손이 Jul 24. 2021

산이. 널 기억해

다섯 달을산 고양이

아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 우리 집에 5개월 된 아기 고양이 한 마리가 살았었다. 

그 아기 고양이는 남편 차 뒷좌석 박스에 담겨 우리 집에 왔다. 물론 난 반기지 않았다. 

"이걸 왜 가져와!!! 어떻게 키우려고!!!.". 

남편은 현장을 돌아다니다 어느 건물 안 계단에서 축 쳐져있는 고양이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단다. 


결국, 웅크리고 있어 마냥 털 뭉치 같은 고양이가 든 종이박스는 우리 집 현관에 놓였다. 그날 하필 남편은 야근이라 다시 회사로 향했다. 나와 단둘이 놓인 이 상황이 조금 무섭고 두려웠다. 박스를 살짝 열어 보니 여전히 웅크린 채, 넣어준 캔 사료는 입도 대지 않았다. 


그러다 한 시간 정도 흘렀을까. 걱정이 된 난 용기를 내 캔 사료를 손에 집어 고양이 입에 가까이 대줬다. 

잉? 뭐지? 먹는다. 그제야 먹는다. 아, 사람 손에 키워진 아이였구나. 그럼 길을 잃은 건가. 거긴 왜 있었지. 여러 생각이 드는 동안 사료 한 캔을 다 비웠다. 그리곤 힘이 났는지 허리를 세우고 다리를 펴고 꼬리를 들었다. 어머!!! 꼬...꼬리가 기네.... 어머!! 이쪽으로 오지 마~~~!


그 당시, 한창 임신 걱정을 하던 터라, 다른 곳에 마음을 쓸 여력이 없었다. 마침 고양이를 키우고 싶었다는 지인의 집으로 보내졌다. 며칠 지나지 않아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다. 여전히 평온하고 편안한 모습으로. 지인의 집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무서운 하악질이 시작돼, 도저히 키울 수 없었단다. 


이름은 오산시에서 데려왔기에, '오산'이라 지었다. 산이. 산이는 그렇게 우리 식구가 되었다. 산이와 함께 하는 일상은 걱정했던 거에 비해 별일이 생기지 않았다. 뭔가 대단한 걸 할 필요도 없었다.  


산이와의 달콤한 동거가 2달 정도 접어들 때였을까. 갑자기 하얀 토사물을 뱉어내던 산이는 범백 진단이 내려졌다. 작은 병원에서 큰 병원으로 옮기고, 입원도 몇 차례. 결국 산이는 여린 다리에 링거를 꽂은 채 무지개다리는 건넜다. 

그 마지막 새벽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당시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 밤낮을 남편과 교대하며 산이 곁을 지켰다. 잠시 눈 부치려고 침실로 들어간 얼마 후 남편의 "여보!!" 다급한 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남편은 서럽게 울고 있었고 산이는 딱딱해져 있었다. 

"왜 나 안 불렀어!! 산이가 나보고 가야지!! 나 보고 가야지!!"

금세 차가워진 산이를 안고 한참을, 한참을 울었다. 

한 생명이 내 눈앞에서 영원히 잠들다니. 처음 겪어보는 일이자 엄청난 슬픔이었다. 


그 뒤로 한참 슬펐고, 눈물이 났다. 튼튼한 어른 고양이를 볼 때면 산이 생각이 났다. 어른 산이가 궁금했는데. 산이가 고마웠다. 우리 집을 선택해준 것. 나를 만나러 와 준 것. 

그리고 미안했다. 처음부터 더 큰 병원으로 널 데려갈 걸. 좀 더 세심하게 살필 걸. 


산이야. 

지금은 몇 장의 사진으로 그때 그랬지. 하며 추억담으로 널 기억해. 

사실 잊고 살 때가 많지만, 텔레비전에서, 길을 걷다가 너랑 비슷한 아이를 보면 꼭 널 생각한다. 

잘 지내고 있지?

이제 어른 고양이로 자랐겠구나. 

부디 건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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