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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una Apr 17. 2021

3-2. 퇴사하겠습니다..
그런데 태풍은 왜?

퇴사 전까지 나를 괴롭혔던 태풍과 딜레이.

퇴사를 결심했다. 이제는 내 회사 사람들과 가족들에게 말하면 된다. 일단 우리 회사의 경우, 퇴사할 날에서 최소 2개월 전에는 담당 팀장-그룹장-매니저 이런 순서로 스케줄 체크해서 사전에 메일을 보내고 미팅방 예약해서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다른 회사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는 이런 방식이었다.


내가 이 회사를 다니면서 좋았던 점들 중 하나는, 내 담당 상사분들이 정말 착하고 좋으신 분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퇴사 통보할 때 이분들에게 정말 감사했다는 마음과 내 퇴사 통보를 잘 정리해서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다들 방에 들어오자마자 나에게 걱정하는 얼굴로 'ゆんちゃん、どうした ー?(윤 짱, 무슨 일이야~?)'라고 말할 때, 난 이미 울 것 같았다.


어쨌든, 내 퇴사 의사와 고마움을 최대한 울지 않도록 정말 노력했다. 하지만, 마지막에 '이러한 이유로, 정말 죄송하지만 몇 월 며칠에 퇴사하겠습니다'라고 말하려는 순간, 내 팀장님은 이미 울고 있었다. 오히려 내가 더 당황해서 휴지 주고 달래는 상황이 되었다.

팀장님이나 그룹 팀장, 매니저님께서 다 같이 하시는 말씀은 



타국에서 정말 힘들었을 텐데, 이렇게 잘 말해줘서 고맙다,

네가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힘들 때마다 언제든지 연락해 줘,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마무리했으면 좋겠어.



등등... 정말 다 좋은 말씀들 해주셨다.

매니저님과는 퇴사 준비과정(기숙사 정리, 남은 유급휴가, 마지막 출근일/퇴직일 등)을 알려주시고 그렇게 퇴사 통보는 잘 마무리되었다.


회사 쪽 일은 잘 마무리되고, 이제 남은 건 가족들에게 말해야 한다. 나는 일본에 있으면서 좀 더 일본 생활에 익숙해지고 싶기도 했고, 여행도 가고 싶어서 한국에 자주 가는 편도 아니어서 자주 가족들이랑은 카톡으로 연락했다.


그런데, 퇴사하겠다는 말은 직접 만나서 말씀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아, 티켓을 예매하고 한국 가는 날만을 기다렸다. 근데, 나는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 타려고 하면 날씨 운이 더럽게 안 좋은' 사람이란 걸.......

팀장님께서 주신 과자!! 어느 나라 과자인지 까먹었네...




2019년의 일본은 특히 태풍의 연속이었다. 내가 기억하기로, 태풍이 9,10월까지 와서 내 퇴사하기 직전까지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모른다.


어쨌든, 나는 이왕 한국 온 거 유급 써서 2박 3일 지내고 갈까 생각하고 예매했는데, 내가 한국 온 다음날 바로 태풍이 도쿄를 지나간다는 소식과 진짜 규모도 큰 파사이 태풍이라고 이미 며칠 전부터 태풍주의보가 뉴스에 나왔고 우리 회사도 태풍에 의한 지연이나 결항 등 정말 오피스가 난리였다. 그렇게 난 2박 3일은 꿈도 못 꾸고 1박 2일로 짧은 시간을 한국에서 보내야만 했다.


내가 너무 짧게 한국에 있는다는 사실이 부모님은 아쉬웠는지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아침부터 고깃집 갔다. 고기 먹으면서 나는 나름 긴장하며 퇴사 결정을 부모님한테 말했는데,,


나:... 사실은 한국 온 이유 있어서 온 거야.

아빠: (고기 먹으면서) 뭔데?'_'

나: 나 몇 월 며칠에 퇴사하고 한국 올 거예요.

엄마: 퇴사하고 뭐 하려고?

나: 영어 배우고 싶어요.

아빠: (쌈 만들면서)아~그래? 잘 정리해서 와.

엄마: 너 원래 영어 하고 싶었잖아. 잘 됐네.

나:..... 그게 끝이야? 1년 만에 본 딸내미한테?

아빠, 엄마: 응.^^



.... 이런 쿨한 반응이었다면 나 왜 왔니.


정말 짧게 한국에서 지내고 공항을 갔는데, '비행기 타다가 죽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비행기였다.

게이트에 기다리고 있었는데, 옆 게이트에 LCC 항공편은 이미 결항이라고 뜨며 정말 망했다 이 생각밖에 안 들었다.

내가 가는 편도 결항이 되겠구나...

한국 가는 것도 비밀로 하고 온 건데.... 회사에서 전화 오면 난 이제 죽었다

퇴사하기 전까지 나 왜 이러니....


오만 잡생각이 드는데, 갑자기 게이트에서 탑승 시작하겠다고 안내방송이 나왔다. 걱정 반 의심반 마음을 안고 기내에 들어가고 어느샌가 나는 피곤했는지 졸려왔다. 그런데... 잠시 꾸벅 졸고 일어나서 정신 차리고 보니 비행기가 거의 파도치는 듯이 움직였다. 창가 쪽이라서 창문 밖을 보니 하얀 배경뿐이었다. 태풍 영향으로 기내가 대단히 흔들릴 것 같다는 아나운서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른다.


참고로 나는 비행기 흔들리는 거 정말 무서워하는 편이다. 어떻게든 이 악물고 견디거나 잠에 취해 자버리는 편인데, 이번 비행은 정말 너무 흔들렸다. 내가 너무 무서워하는 걸 옆 할머니께서 보시더니 내 손잡아 주면서 "괜찮을 거야"계속 다독여주시면서 사탕도 주셨다... 정말 착륙하는 순간까지, 이 할머니가 아니셨으면 난 못 견뎠다...... 잊을 수 없는 끔찍한 비행이었다.


태풍이 이렇게 끔찍한 존재일 줄 상상도 몰랐다.


다행히 회사에서 전화도 안 오고 나는 불려 나가지 않았다. 태풍 오기 전에 미리 옆방 동기랑 같이 과자에 냉동식품, 편의점 식품 등 먹고 싶은 거 다 사서 먹으면서 텔레비전에 들려오는 긴급 대피령과 태풍 주의보 뉴스를 보며 창문 흔들리는 소리와 함께 하루를 지냈다.


지상직 일을 하면서 느꼈던 점은, 태풍이 오는 날의 대응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정말 지옥은....... 태풍 끝나고 난 후의 대응이다....


내 근무 시작은 태풍 오고 난 다음날의 오후였다. 일단, 텔레비전을 켜니 전철, 버스 다 지연된 상태였고 나리타, 하네다 공항은 사람들로 붐볐다. 인스타그램에서 내 동기들이 올린 사진들 보고 난 직감 했다. '오늘 근무도 망했구나'라고.

인스타에 올라온 스토리 사진들.. 난 죽었다.



2019년에 태풍이 몇 번 왔는지 찾아보니 발생한 게 29번이고 일본에 상륙한 게 5번이었다. 진짜 지금 생각해도 태풍은 정말 싫다. 그렇게 내 마지막 근무일로부터 2달을 남겨놓은 채, 태풍은 정말 나의 악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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