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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Aug 05. 2022

신새벽, <파도는 연습이 없이 밀려온다>

이별 직전에 대하여

COPYRIGHT. 우시환


우리의 연애는 솟구치는 분수 같았지


아무런 고백을 들은 적 없지만

깊고 아주 깊은 곳 슬픈 파랑을 끌어와

커다랗게 몸을 뒤집으며 소리 지르지


사랑의 뒤편도 멀쩡하기를 바라는 바보는 아마도 나뿐인 듯해


점점 불시착하는 너의 감정을 난 절반으로 나누고

위험하지 않은 번역으로

난파되어 밀려드는 조각들을

끌어안고 맞추고


먼 곳 수평선은 멀쩡히 그곳에서 우두커니 지켜보고만 있어

우리의 가장자리는 늘 안부를 모른 채

서두르고 출렁이지


고요를 훔치지 않은 건 연습이 부족해서일지도 몰라

바람의 행적은 누구라야 볼 수 있는 건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너에게서 멀어지는 연습이 될까


그저 바라보고 서서 침묵으로 견뎌야 하는

같은 모습이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얼룩으로 물들어가는 젖은 모래



신새벽, <파도는 연습이 없이 밀려온다>, 문파 2020 겨울호



파도는 시작점이 어디인지 모를 곳부터 무한히 물결을 만든다. 규칙적이고 반복되는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 나에게로 밀려오는 파도의 모습은 안정감을 준다. 해변가에 앉아 가만히 파도만 봐도 마음이 개운해지듯이, 어딘가 간지러운 구석이 씻겨 내려가듯. 그렇게 이 시는  파도의 형태를 '연애'로 은유한 것이 인상 깊다. 솟구치는 분수처럼 한없이 좋은 연애 초창기, 깊고 아주 깊은 곳 슬픈 파랑을 끌어와 커다랗게 몸을 뒤집으며 소리 지르지는 서로를 알아가며 비슷한 코드뿐만 아니라, 다른 점과 서운한 점까지 주고 받으며 점점 깊어지는 관계를 볼 수 있다. 연애는 우리가 잘 맞는다고 시작해 여러 이유로 이별을 결심하곤 한다. 이 시는 이별의 직전, 혹은 이별에 다가가는 모습에 집중한다.


사랑의 뒤편도 멀쩡하기를 바라는 바보는 아마도 나뿐인 듯해 


화자인 '나'는 이별 앞에 있다. 우리 관계에 걱정이 없다면 멀쩡하길 바란다는 표현을 쓰지 않을 테다. 사랑의 뒤편은 당연히 이별일까? 아님 흔히 말하듯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일까? 나는 이 시를 읽고 사랑의 뒤편은 이별의 위기든 권태기든 사랑을 하고 있든 '우리 관계를 유지하는 능력' 혹은 '관계를 회복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관계를 꾸려가는 건 혼자가 아니라, 둘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 속에서 우리 관계는 '나'만 남았다.


점점 불시착하는 너의 감정을 난 절반으로 나누고

위험하지 않은 번역으로

난파되어 밀려드는 조각들을

끌어안고 맞추고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는 아픔을 고스란히 받아들여야 

너에게서 멀어지는 연습이 될까 


가장 무서운 관계의 무너짐은 조용히 오는 것이다. 평소처럼 똑같아 보이지만 상대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해 바뀐걸 나만 아는 행동과 말투에 상처를 받지만서도, 애써 핑계를 대며 불안함을 감추며 상대의 모습에 의미부여하고 혼자 퍼즐처럼 맞춰보기도 한다. 그것에만 집중한 채, 우리 관계에서 더 큰 그림을 못 보고 결국 오답이 정답이 된다. 그렇게 서서히 무너지는 관계를 직면하게 된다.


그저 바라보고 서서 침묵으로 견뎌야 하는 

같은 모습 같지만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는 

 


 

얼룩으로 물들어가는 젖은 모래 


마지막 두 연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첫번째는 헤어질 결심을 해야한다. 이미 지난 관계를 정리할 것이냐, 내가 상처를 받아가면서 관계를 유지할 것이냐는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파도는 규칙적으로 물결을 만들지만, 가까이서 보면 똑같은 물결은 없는 것처럼 처음에 사랑했던 사람이 이별 앞에서도 같은 모습이지만, 미묘하게 다른 행동과 말투는 나만 알듯이. 두번째는 관계의 의미는 변한다. 헤어진 직후에도, 한 달, 세 달, 1년, 몇 년후에도 달라진다. 나에게로 오는 파도부터 저 먼 수평선까지 점점 객관적으로 관계를 바라볼 때, 상대는 매번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나는 그 모습을 마주할때마다 여전히 연습이 없이 오는 파도에 속절없이 젖는 것처럼 여러 번 같은 이별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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