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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Dec 06. 2022

[AFTER WO] 11월 영상 작업 후기

[AFTER WO]

https://youtu.be/a0Ul9lJ53uk




달마다 영상을 찍는 건 습관이 되었다. 핸드폰 카메라를 켜고 영상을 찍을 때 쑥스러움도 점점 사라진다. 달마다 모아둔 영상을 보면 '우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가 무엇을 보고, 어떤 풍경을 담고 싶었는지 같은 것들이 담겨있고 각 영상을 찍은 이유는 없다. 그래서 영상을 모아서 편집하다 보면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싶은 고민은 여전히 하고 있지만, 중요한 건 그때의 감정과 생각, 시선이 더 중요하다고 마음먹기로 했다. 학부 4학년 때부터 시선을 포착하는 연습을 해오고 있고, 그걸 풀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이걸 계속하다 보면 나이 들수록 점점 둔감해진다는 감각들을 조금이나마 깨워 그 감각들을 오래 유지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영상을 잘 살펴보면 처음 시작은 단풍으로 살짝 물든 나무로 시작해 중간중간씩 점점 나무가 빨개진다. 이번 영상은 내 기준, 사소한 것들을 담았다. 가끔씩 철새가 날아간다든가, 풍선인지 뭔지 모를 것이 하늘에 날아다니고 길을 걷다가 까마귀 전용 홍시 하나가 남았든가, 공기는 찬데 햇빛이 좋아 밖에 널어놓은 빨래라든가, 건물은 공사 중인데 치과와 카페는 영업 중이라든가, 따뜻한 볕 아래 낯선 사람을 지켜보며 졸고 있는 집고양이라든가, 정해진 약속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서점 시 코너에 알록달록한 시집이 예뻐서 찍어 놓은 것과 같은 것들. 그리고 나와 함께 동행한 사람들은 내가 영상을 찍으면 잠깐 멈춰 서 나를 기다려주거나 영상을 왜 찍는지 궁금해한다. 나는 그들에게 이유를 설명하고, 또 같이 걷다가 내가 어? 하는 순간에 같이 그 순간을 봐주는 날들도 있었다.  

 

11월의 주말은 걷기 모임에 참여했다.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모여 한양 도성길과 광희문을 걸었다. 한양 도성길은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곳이라 지금도 가면 신이 나면서, 어릴 때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이 걷기 모임 끝나고 고모에게 전화해 어릴 때 우리 한양 도성길 근처 000에 가지 않았냐고, 남산 케이블카 근처 내려오는 길 기억나냐고 실제로 묻기도 했다. 11월은 복잡하고 풀리지 않은 감정 때문에 마음고생을 좀 했는데, 주말에 킬로씩 걷고, 탁 트인 서울 도심의 풍경을 보고, 점점 물들어가는 단풍 풍경을 보면서 단순히 '집-회사'가 아닌 기분전환이 필요했나 싶다. 풋살 게임도 하고 뒤풀이로 양꼬치를 먹고, 집에 태워준다는 차를 얻어 타  한강이 보이는 야경까지. 어쩌면 사적일지도 모르는 목소리를 음소거를 하려다가 소리를 살리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서 소리는 영상에 맞는 적정한 볼륨을 찾아 맞춰 소리를 살렸다. 덕분에 영상의 생생함이 살아난 듯하다.


한층 가까워진 팀원이 반려묘를 반려한다고 해서 놀러 갔다. 낯설지만 나를 궁금해하는 호기심 어린 시선, 엄마가 화장실에 가서 엄마를 지켜야 하는데 최애 장난감을 들고 있는 나 사이에서 엄마냐 장난감이냐 고민하는 눈빛, 졸린데 낯선 사람이 있어서 지켜는 봐야겠고 하지만 졸린 고양이. 털이 쪄서 몸집이 커 보이지만 실제로 만져보니 말랐던 고양이, 고양이의 마음을 사기 위해 츄르를 깠고, 그 결과 내 손가락까지 열심히 핥아먹는 고양이. 까슬까슬한 혀. 내가 짓궂은 장난을 쳐 속상해 끝방 가서 조용히 식빵 굽는 고양이. 집에 갈 때쯤 내가 다가가서 얼굴을 만져주니 화해의 손길을 받아준 고양이. 사랑 많고 다정한 고양이.

그리고 팀원네  집 근처엔 알고 보니 도심 뷰가 좋은 카페가 있었고 동네도 조용해서 생각 정리하기 딱 좋았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나도 집 근처에 생각 정리하기 좋은 카페나 산책로를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도 이번 달은 찍어둔 영상이 많은데, 이걸 다 쓸 수는 없어서 많이 잘랐다. 영상 올리기 전까지 영상을 살리네 마네 고민했고, 막판에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영상을 바꾸고, 글씨가 잘 보이도록 처음으로 글씨체를 바꿨다. 평소라면 4초가 될 것 같은 영상도 절반씩 자르고 잘라 2분 안쪽으로 맞췄다. 영상을 자르면서 마음에 드는 영상들을 모아 짧게 편집하는 것도 좋겠다고 다음 영상 소재를 얻었다. 가장 막막한 건 심심한 영상에서 나름대로 포인트가 될 만한 것들이 없을 때. 그게 바로 이번이 될 뻔했는데, 낮과 밤이 이어지고 단풍도 점점 물들어서 괜찮겠다 싶었다. 막막할수록 영상을 더 짧게 편집하고 싶어지고 조급해진다. 마음에 들진 않지만 어떤 방도가 생각나지 않을 때, 최선을 다해 오프닝과 엔딩을 만들고 영상을 업로드한다. 의도한 대로 되면 좋겠지만, 항상 그렇게 될 수 없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 다음 달엔 또 다른 우연이 이어지기를 바라면서 영상과 후기 작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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