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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시환 Jan 07. 2023

[AFTER WO] 12월 영상 작업 후기

[AFTER WO]

https://youtu.be/eaTNwQaLgfU




아주 오랜만에 12월이 기대가 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EBS 수능 언어에서 자작나무 숲 시를 읽은 뒤로 가고 싶었던 인제 자작나무 숲을 갔고, 크리스마스 어글리 스웨터와 크리스마스 소품샵에 들렸고, 크리스마스 이브와 당일은 5년만에 한국에 온 외국인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냈다. 무엇보다 운전을 하게 되면서 나의 세계는 더 넓어졌다. 운전석을 통해 바라본 새벽에서 아침으로 넘어가는 조용한 일요일 서울 도심, 한강, 고속도로와 소양강은 아름다웠다. 약 20년 동안 아버지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 잠만 잤던 내가 어리석어 보일 정도였다. 아버지만 이런 예쁜 풍경을 보다니 질투가 났다. 자작나무 숲에 갔던 날은 영하 20도를 웃도는 날씨였고, 출발 3일 전에 전국적으로 눈이 내려서 더 춥게 느껴졌다. 덕분인지 자작나무 숲은 그렇게 보고 싶었던 눈으로 둘러 쌓인 전경을 볼 수 있었다. 하얀 나무들이 자리 잡고 있어 영화 속 한 장면에 녹아든 것 같았다. 특히 오프닝이 그랬다. 소나무 잎에 얹혀진 쌓인 눈들이 햇빛에 조금씩 녹아 눈가루가 떨어지고 있었는데, 가루 덕분에 순간순간 반짝였다. 카메라에 담기가 어려웠다. 같은 색감을 위해 갑자기 어둡거나 밝아진 부분은 잘라내는데, 이번엔 그런 부분들이 영상을 살린 것 같아 그대로 담았다. 한참 눈가루를 바라보던, 눈이 반짝이는 지영이의 모습도 예뻐서 그도 찍어보았다. 오프닝 자체를 살리고 싶어서 바로 2022 Winter 가 나오지 않고 영상이 다 지나간 뒤에야 오프닝 자막이 뜬다.



2020년 10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생일 카페에 다녀오고, 자동 필름 카메라를 고민 없이 구매했다. 팬이 좋아하는 가수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빛나고 아름다웠다. 사진만으로 읽히는 애정과 사랑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인물 사진을 자주 찍어야겠다고, 부끄럽지만 내 사진도 많이 남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전 '어나니머스 프로젝트'에 다녀온 후, 다짐은 더 굳건해졌다. 남는 건 사진 뿐이라는데. 그 의미를 알 수 있는 전시였다. 남녀노소부터 반려동물까지 희노애락 중 희,애,락 위주인 사진을 보며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행복하게 웃을 수 있나, 즐거울 수 있나, 편안하고, 아무런 걱정 없을 수 있나 싶은 사진까지. 풍경이 전부라고 생각했던 나는 풍경에 인물이 존재함으로써 사진이 조금 더 풍성해진다고 생각했다. 인물이 가득한 사진전에서 생면 일면식 없는 사람들의 삶과 감정이 고스란히 내게로 들어왔다. 나도 자연스럽고, 자유롭고 생동감 있는 인물이 되고, 또 그 모습을 담는 사진가가 되고 싶다. 이 감정을, 전시를 오래 오래 담고 싶어 이번엔  망설임 없이 도록을 샀다.


빔프로젝트에 나오는 사진들은 음악이 나오는데 곧이어 음악이 나오지 않는 까닭은 빛과 그림자, 사진과 사람에 집중하기 위함이다. 어떤 영화를 봤을 때, 어느 순간 음악이 안 나오곤 했는데 더욱 그 장면에서 시각적으로 집중할 수 있었던 기억이 있다.


외국인 친구와 서울 곳곳을 돌아다니며, 가장 보고 싶었던 Christmas lights를 보러 신세계 백화점 본점에 갔다. 크리스마스 당일엔 추웠는데도 모든 사람들이 이 크리스마스 쇼를 보기 위한 것처럼 다들 백화점 앞, 그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 들었다. 아쉽게도 버스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어서 전체 모습은 못 찍었지만, 확실히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엔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 연인과 함께 가고 싶었던 서울시청 광장 스케이트장은 외국인 친구와 갔다. 수많은 연인들이 스케이트를 빌리고, 캐롤이 크게 들리는 광장에서 손을 잡고 스케이트를 타며 그들만의 사랑과 추억을 쌓는다. 나는 그 사이를 '지나갈게요'하며 가르고. 온종일 캐롤이 울려퍼졌다. 어딜 가도 캐롤이 들려서 친구에게서 "크리스마스 영화를 찍는 것 같이"라는 얘길 들었다. 한겨울 밤에서 깨어나는 건 다름 아닌 다음 날 출근이었다.


마지막으로 기차. 크리스마스 어글리 스웨터를 사러 모였다. 카페 바로 옆에 크리스마스 소품 가게가 보여 크리스마스를 좋아하는 우리는 바로 소품 가게로 나섰다. 기차를 보자마자 나는 영화 '캐롤' (2016, 토드 헤인즈)이 생각났다. 백화점과 캐롤 집에 있는 기차는 캐롤과 테레즈가 결국 다시 만날 운명이라는 것을 단번에 떠올렸다. 가게의 기차도 계속 돌고 돈다. 학부에서 영문 에세이를 쓸 때 영화에서 영감 받아 기차를 인생으로 비유했었다. 정류장에 사람이 내리고, 타는 건 내 인생에서 사람이 오고 간다고.  계속 같은 기차를 타고 나와 같은 여정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나와 다른 목적지를 가진 사람들이 정류장에 내리고, 또 새로운 사람들이 기차를 타면서 계속 그렇게 만남과 이별을 겪는다고. 나는 가게의 기차를 보면서 지나간 사람들을 생각하고,  앞으로 만날 사람과 캐롤과 테레즈 같은 운명 같은 사랑을 기대해본다.


소리는 음소거를 할까하다가 12월은 역시 크리스마스고, 한 해를 보내고 맞이하는 다음 년도를 기대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어서, '잘가'라는 목소리가 잘 어울려서 그대로 넣었다. 이번 영상은 최초로 아끼는 사람이 나오고, 아끼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온다. 애정하는 사람들 덕분에 12월을 이렇게 기대하며 보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로도 아주 오랜만에  들뜬 기분으로, 매일을, 크리스마스 분위기와 그 자체를 즐겁게 보냈다. 함께 보낸 시간을 영원으로 만들고 싶었다.  




촬영 : Galaxy Note 22 Ultra

편집 : Vl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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